'리얼돌'이 '세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
[경향신문]
사람의 전신을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법원은 통관을 보류한 세관당국과 리얼돌 수입업체의 재판에서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관세청은 아동·청소년이나 특정 인물을 형상화한 리얼돌은 “관세법에서 규정한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며 지난 2일 항소를 제기했다. 관세청은 설령 최종심까지 가서 지더라도 관련 법령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해당 수입업체의 리얼돌을 제외한 다른 업체의 리얼돌 수입제품의 통관은 불허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세관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또 관세청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9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논란 여전···“관련 법령 미비”
리얼돌 통관 논란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리얼돌 수입업체가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한 인천세관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수입통관 보류 처분이 적법했다고 판결했으나, 2심 재판부는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 결과는 2019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관세청은 이에 동일 제품에 대해서만 통관을 허용하고 나머지 리얼돌의 수입은 통관을 불허했다. 관세청의 리얼돌 통관 현황을 보면, 세관당국은 2016년 이후 대법원 판결이 난 2019년까지 수입 신고된 267개 리얼돌 제품 중 대법원이 수입을 허용하라고 최종 판결한 1개를 제외한 266개에 대해 통관을 불허한 바 있다.
잠잠했던 리얼돌 논란은 올 들어 재점화됐다. 또 다른 리얼돌 수입업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4일 리얼돌 수입 통관을 보류한 김포공항 세관장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이번에도 관계부처의 제도가 정비될 때까지 수입 통관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10일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허용 기준을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관련 부처의 제도 및 법령 개정사항과 계류 중인 법원판결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최종적으로 수입업체의 손을 들어줘도 리얼돌의 국내 허용기준 등 관련 법령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과거처럼 동일 제품에 대해서만 통관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관세청의 리얼돌 통관 보류 조치는 관세법 제234조(수출입의 금지)에 따른 것이다. 해당 조항은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풍속을 해치는 서적·간행물·도화,영화·음반·비디오물·조각물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물품’에 대해서는 수출입을 금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조항에 의거해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규정돼 통관이 보류된 물품은 아직까지 리얼돌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통관이 보류된 리얼돌은 ‘보세화물장치기간 및 체화관리에 관한 고시’ 제4조에 따라 6개월간 보관된다. 이 기간이 경과된 경우 수입금지물품에 해당돼 폐기된다. 이번 소송이 제기된 리얼돌의 경우 재판이 완료될 때까지 보관하며, 재판 결과에 따라 통관을 허용하거나 또는 통관 보류를 유지하다가 장치(보관)기간이 경과하면 폐기 조치된다.
관세청은 또 관세법 제237조(통관의 보류) 등에 따라 국민 보건을 해치거나 위협할 우려가 있는 물품에 대해서도 통관을 불허하고 있다. 또 다른 관세청 관계자는 “모조 성기를 비롯해 마약과 불법의약품, 인체에 해로운 음식,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설비 등 237조에 의거해 통관 보류되는 제품의 종류만 수천 가지에 달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특정인 형상 리얼돌 규제 추진
논란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아동·청소년과 특정인 외모를 본뜬 리얼돌을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대표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아동·청소년과 특정인을 본따 리얼돌을 제작하거나 수입, 수출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형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제작과 판매, 소지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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