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에 코로나19..커지는 '식량위기 그림자'

박상영 기자 2021. 2. 1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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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케냐의 한 지방 도로에서 주민들이 사막메뚜기떼를 뚫고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다. 사막메뚜기는 1㎢에 8000만마리가 모일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공.


코로나19 유행에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곡물 가격이 2014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생산과 물류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이상기후로 생산량까지 줄며 곡물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수출제한 등 각국이 식량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선다면 수입 의존도가 높은 빈곤국은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식량가격지수를 보면 1월 가격지수는 전월보다 4.3% 오른 113.3으로 집계됐다. 지수는 지난해 5월 91.0에서 6월 93.1로 오른 뒤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UN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2021년이 기근 팬데믹으로 비극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지난 1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국제곡물 수급동향 및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5월 초까지 필요한 곡물 물량을 보유했고 9월까지 사용할 물량은 계약을 완료한 상태지만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경우 국내 식품물가와 사료가격에도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이상기후에 코로나19까지 덮친 곡물 시장

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기상이변을 가장 먼저 꼽는다. 잦은 가뭄과 폭염, 한파 등의 기상이변으로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실제 동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는 열대저기압으로 장기간 비가 내리면서 사막 메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막메뚜기 떼가 줄어들지 않으면 조만간 350만명이 더 굶주림에 시달릴 것으로 FAO는 추산했다. 적도 부근의 서태평양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올라가고, 동태평양 해수 온도는 낮아지는 라니냐 현상이 지속되면서 주요 곡물수출국의 생산과 수출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라니냐 현상으로 아르헨티나의 2020년 10월~2021년 9월 대두 생산량 추산치를 11% 낮췄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는 점도 식량가격 상승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이동 제한으로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농작물의 파종·수확 중단 등 생산 차질을 겪고 있으며 항만 운영도 중단돼 식량보급이 어려워졌다. 식량 확보가 어려워지자 아르헨티나는 지난 1월 11일부터 옥수수 수출한도를 제한했고 러시아는 2월 중순부터 소맥 수출쿼터제와 수출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 농무부는 최대 식량소비국인 중국이 가격상승 억제를 위해 비축분을 늘릴 것으로 보고 곡물 수입량 추산치를 종전보다 3배 많은 220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부연구위원은 “중국과 미국·호주 등 주요 식량 수출국과의 갈등 격화도 수급여건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플로리다 플로리다시티에서 한 농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판로가 막힌 토마토를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식량민족주의 확산…국가별 ‘K자 회복’ 고착화

바이오연료 수요와 글로벌 유동성 과잉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다. 파리협약 재가입을 약속한 바이든 행정부가 바이오연료 생산 확대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주원료인 옥수수·대두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미국 농무부는 2020~2021년 에탄올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옥수수량이 50억 부셸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 내 옥수수 수확의 약 40%가 에탄올 생산에 투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헤지펀드 등 투기자금도 농산물 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대두와 옥수수 선물옵션의 순매수포지션은 1월초에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식량가격 상승세가 글로벌 식량위기 상황으로 발전하면 글로벌 경기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 심리 위축은 물론,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금리가 높아져 민간부문의 자금조달 비용 증가와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식량확보 쟁탈전에 동참하면 국제 사회 공조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UN은 “2008년 식량위기가 반복된다면 중동·아시아·남미 등지에서 대규모 정변이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산하 식량안보위원회는 보통 매년 한 차례 열리지만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식량안보 상황 등을 감안해 2월에 이어 연내 두 차례 더 개최될 예정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동제한으로 인도적 구호활동이 쉽지 않은 가운데 식량자원민족주의가 확산될 경우 빈곤국일수록 사회·경제적 타격이 커지면서 국가별 ‘K자 회복’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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