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목줄'에 묶여..시골개의 하루를 보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1m짜리 개 목줄을 오른쪽 발목에 '딸깍' 채웠다. 평소 반려견 똘이(7살, 몰티즈)를 산책할 때 쓰던 거였다. 반대쪽 동그란 손잡이 부분은 개집 옆에 박힌 큰 못에 고정했다. 그 상태로 발을 뻗으니 줄이 팽팽해 움직일 수 없었다. 꽤 잘 묶인 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빙빙 돌아봤다. 두 걸음도 편치 않았다. 옴짝달싹, 1m짜리 자그마한 반원 안에 갇혀버렸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단 걸 곧 깨달았다.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보이는 건 얼어붙은 강과 지평선, 들리는 건 바람 소리 뿐이었다.
왼편엔 멍순이(믹스견, 3살, 수컷)가 날 보고 있었다. 까만 눈망울을 빛내며 꼬릴 흔드는 녀석, 놀아달란 뜻이었다. 1m 30cm 남짓한 쇠줄에 묶인 녀석도 나 같은 처지였다. 개집을 중심으로 원 하나도 다 그리지 못하는 좁다란 반경. 그게 멍순이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이고 삶이었다.
짧은 줄에 묶인 개의 하루를 그리 보내고 있었다.
계기가 있었다. 여행 갔다가 우연히 바깥에 묶인 개를 봤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순했다. 다음 날, 비가 세차게 왔으나 녀석은 그 자리서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발이 땅에 붙은 듯 떠날 수 없었다. 언제 봐도 같은 모습이던 그 개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염없이 날 보던 모습이.
그건 어떤 하루일지 상상이 안 갔다. "멍멍아, 오늘 하루가 어땠니?"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개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을 대신해 어떤 삶인지 작게나마 전하고 싶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 8일 오전 강원도 인제를 찾았다. 멀리까지 간 건 섭외가 쉽지 않아서였다. 개의 곁에서 목줄에 묶일 작정이었는데, 이를 허락해 줄 보호자를 찾기 어려웠다. SNS로 수소문 한 끝에 집에서 180km 떨어진 이곳에 오게 됐다.
2시간 40분을 차로 달렸다. 구불구불한 길 끝에 경치 좋은 동네가 나왔다. 짹짹 지저귀는 참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곳. 파란 하늘은 높고 쨍했고, 솜 점퍼 안으론 세찬 칼바람이 파고들었다.
옷을 두껍게 입지 않은 건, 명보영 수의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털이 촘촘한 개가 느끼는 추위가, 아마 사람이 깔깔이를 입은 것과 비슷할 겁니다." 너무 따뜻했다간 추위를 느끼는 게 다를 것 같아, 적당히 감내키로 했다.
개 보호자의 집을 먼저 찾았다. 문을 똑똑, 두세 번 두드리니 인상 좋은 한 남성이 나왔다. 그는 "추운데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했다"며 날 반겨줬다.
이어 개를 소개해줬다. 이름은 멍순이. 암컷이냐 물었더니 수컷이란다(나의 '성 고정관념'을 반성했다). 어릴 때 지인이 줘서 데려왔다고. 생각보다 많이 커져서 바깥에서 키우고 있다며. 산책은 지난해 가을에 한 뒤 못했다고 했다.
덩치는 큰데 다리는 짧고 귀는 쫑긋하며 입은 길쭉하고 등은 까만데 눈은 더 까맣고 동그란 매력적인 아이. 처음 마주친 멍순이 모습에 그리 빨려 들어가듯 반했다.
쇠줄(줄을 자꾸 끊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에 묶인 멍순이는 날 보더니 난리가 났다. 큰 몸을 펄쩍 점프해 내 몸을 감싸더니, 그대로 직립보행을 하며 트위스트를 추었다. 쪼그리고 앉아 쓰다듬으니 얼굴을 핥아주고 아주 난리였다. "아구 반가워", "아이 예뻐", "귀여워"를 남발하며 멍순이의 체온을 온몸으로 느꼈다. '널 만나고 싶었어, 행복하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옥시토신이 콸콸 분비된달까.
멍순이와 친해지려 멀리서 가져온 선물을 꺼냈다. 누르면 삑삑 소리가 나는 분홍색 강아지 인형이었다. 녀석은 장난감이 마음에 드는지 입에 덥석 물었다. 신나서 쇠줄 끄는 소리와 '삐익, 삐익' 소리가 뒤섞였다. 멍순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형, 나 완전 개신남!" 녀석 얼굴이 그랬다.
멍순이의 반김은 30분이 다 되도록 그칠 줄 몰랐다. 잠깐 그러다 말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헥헥 흥분하며, 우주의 온 기운을 모아 날 반가워했다. 이따금씩 마운팅(붕가붕가)도 했는데 너무 좋고 흥분해서 그런 거였다. 앞발 두 개로 내 다릴 꽉 감싸는데, 그 힘이 장난이 아녔다.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래요. 이해해주세요.' 겨우 거리를 둔 날 빤히 보는 멍순이 표정이 그랬다. 그래서 눈빛으로 나도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다 이해해 멍순아. 많이 심심했을 것 같아.'
개 줄에 묶이니 무시무시한 강원도 추위가 금세 엄습했다.
정오가 가까운 데도 기온이 영하 6도를 찍었다. 고지대라 바람이 흡사 누가 얼음을 끼얹는 것처럼 얼얼했다. 가만히 있으니 더 추워서 입이 얼어붙는 듯했다. 귓불은 빨개져 얼얼했고, 단화를 신은 발은 감각이 무뎌졌다. 애써 움직이려 했지만 무용지물. 앉았다가 일어나거나,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걸로는 추위가 도저히 가시질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웅크리게 됐다.
바깥에 강제로 묶인 건 처음이었다. 추워서 둔해진 오감을 뚫고 두려움이 곤두섰다. '극한 추위에 죽을 것 같아도 피할 수 없고 그걸 알릴 수조차 없다면'. 무서운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대로 '냉동인간'이 되어 200년 뒤에 깰 것 같아 엉거주춤 다시 일어났다. 좁은 공간이나마 움직였다. 애써 걸으며 열을 내볼까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멍순이 물그릇을 봤다.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꽁꽁 얼어 있었다. 얼음을 부수고 가져온 물을 꺼내 채워줬다. 멍순이가 벌컥벌컥 마셨다. 목 말랐던 거였다.
점심 시간. 멍순이 보호자인 할머니께서 쇠그릇에 밥을 담아왔다. "멍순아, 밥 먹자"란 말 한마디에 녀석은 좋아서 난리가 났다.
뽀얀 색깔의 국엔 흰 쌀밥이 말아져 있었다. 그게 뭐냐 물으니 할머니는 "북어 머리랑 밥을 국에 말았다"고 했다. 그걸 붓자마자 멍순이는 밥그릇에 코를 박고 냠냠 쩝쩝 맛나게 먹었다. 다 먹고도 아쉬운지 '댕그르르, 댕그르르르', 큰 그릇을 돌돌 굴리며 놀았다.
찬 바람을 많이 맞아선지, 멍순이 먹방을 보고도 입맛이 안 났다. 몸이 으슬으슬, 강한 바람에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보온 도시락을 꺼냈다. 아내가 "오늘은 묶여 있으니 밥도 못 먹겠다"며, 이른 아침 일어나 싸준 거였다.
흙과 돌이 섞인 찬 바닥에 털썩, 엉덩이에 찬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점심 메뉴는 김치 스팸 볶음밥, 그리고 반숙 계란 후라이가 그 위에 얹혀 있었다. 한 숟갈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는데 추위와 싸우느라 맛있지만은 않았다. 따뜻하던 밥이 잠깐새에 식어 표면이 딱딱해졌다. 멍순이 밥도 그랬을 터였다.
어떻게든 열을 내고 싶어 억지로 다 먹었다. 점퍼를 끝까지 채워도 온몸이 추워 소화가 안 됐다. 대개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밥을 먹었으니. 체할 것 같아 제자리 뛰기를 또 했다. 발을 움직일라치면 당기는 힘에 되돌아왔다. 불편했다. 그러니 즐겁지도, 땀이 나지도 않아 이내 그만하게 됐다.
체험한 지 두 시간째. 오후가 되어 앉은 곳에 해가 비추니 추운 게 다소 가셨다. 할머니께서 집에서 긴 양말과 빨간색 점퍼와 바지를 가져다줘서 겹겹이 껴입었다.
힘들었던 촉각이 조금 가라앉은 뒤엔 지루함을 견디는 싸움이 시작됐다.
같은 풍경만 계속 바라보니 너무 무료했다. 나뭇가지 모양, 강에 남은 물줄기의 양, 근처의 돌 크기마저 외울 정도가 됐다. 적막한데 꼼짝할 수조차 없으니 심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한 30분쯤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면 고작 5분 지나 있었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웅크린 몸을 좌우로 들썩거렸다. 살아 있음을 알리는 몸짓이랄까. 그러나 그건 그뿐이었다. 몸서리칠 만큼의 지루함이었다.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일부러 멍순이를 보지 않았다. 녀석은 평소 홀로 있었으니까. 스마트폰도 꺼내지 않았다. 멍순이에겐 그런 다채로운 놀 것조차 없으니까. 바람 소리, 새 소리,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무언가를 덮은 비닐이 흔들리는 소리뿐.
오랜 시간 끝에 차도 위로 노부부가 산책하며 지나갔다.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려 빤히 바라봤다. 그건 꽤 오랜만에 느낀 변화였다. 옆을 보니 멍순이도 빤히 보며 꼬릴 흔들고 있었다. 그 맘을 알 것 같았다.
할 게 없고 움직일 수 없으니 무기력해졌다. 오후 4시, 체험한 지 네 시간 반쯤 지나니 들썩이는 것조차 귀찮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마저, '끄응'하고 큰 힘을 들여야 했다. 멍순이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내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도, 내 작은 움직임 하나에 다시 벌떡 일어나 꼬릴 흔들었다. 절박하고 끈기 있는 몸부림은, 홀로 버틴 멍순이의 시간을 짐작케 했다.
해가 지기 전 멍순이를 산책시켜야겠단 생각을 했다. 녀석이 매일 바라본 세상 너머에, 더 크고 재밌는 냄새를 풍기는 공간이 널려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발목에 묶인 개 줄을 푸는 순간, 하늘로 치솟을 것처럼 홀가분했다. 걸어 다니는 것뿐인데, 로켓 부스터를 달고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자유를 만끽하는 건 그리 소중한 것이란 걸.
멍순이의 목줄에 묶인 쇠줄을 풀어버렸다. 녀석은 낌새를 차렸는지 벌써 신이 나서 난리였다. 힘차게 들썩이는 멍순이를 진정시키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산책 리드줄에 연결해 바닥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멍순이의 들뜬 표정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러고 싶었어, 정말 너무너무 좋아, 미칠 만큼 행복해, 그렇게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으니. 서너 달 만에 하는 산책이니 오죽했을까.
줄은 늘 팽팽했다. 멍순이가 날 산책시키는 듯. 녀석은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난리를 치며 동네를 헤집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줄을 조금 늘여서 걸어도 공간이 넉넉해 좋았다. 냄새를 킁킁대며 맡고, 소변을 보며 마킹을 하고, 오래 참았던 산책을 풀었다. 하도 잡아당기는 탓에 추웠던 내 몸에도 열이 올라 땀이 흘렀다. 그리 한 시간 동안 여기저기 누비며 산책을 했다.
비로소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우린 둘 다 살아 있구나,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스쳤다. "천천히", "옳지", "이쪽으로", "잘했어"하며 멍순이와 얘기하고 기쁘게 눈을 맞췄다. 천방지축 날뛰던 녀석은 이내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네가 맘껏 다니는 걸 정말 보고 싶었어,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멍순이도 그런 맘을 알아준 것인지.
1시간은 너무 짧았다. 멍순이의 벅찬 호기심을 다 풀어주기에는. 가만히 앉아 있던 시간에 녀석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을까. 저 너머엔 뭐가 있을지, 힘껏 달리면 어떤 기분일지. 그 모든 걸 얼마나 경험하고 싶었을지. 그러니 목줄을 다시 묶을 땐 싫다며 몸부림을 쳤고, 내 손도 같은 속상함으로 적잖게 떨렸다.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달랬다. 그리고 나도 목줄을 다시 발목에 묶었다.
조금 떨어져 같은 시간을 또 보냈다. 멍순이는 한참이나 나를 빤히 바라봤다. 삼킬듯한 눈망울, 살랑거리는 꼬리의 의미를 알았다. 또 나갈 거라는 기대와 언제 나갈 수 있냐는 물음. 그걸 채워줄 수 없기에, 반대편을 바라보며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보지 않아도 먹먹히 다 들렸다. 조르는 듯 움직이며 내는 쇠사슬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그래도 산책 다녀온 뒤에야 멍순이는 처음으로, 바닥에 누워 꾸벅꾸벅 졸았다. 고작 세 살인데 오죽했을까. 넘치는 기운을 그나마 좀 쓴 것이리라. 그러나 작은 몸짓만 보여도 다시 벌떡 일어나 내게 '끼잉낑' 소릴 내며 찾았다. 헛된 희망이 더 힘들까 싶어 숨죽여 웅크렸다. 그러면 비로소 잠잠해졌다가, 훌쩍거리는 소리만 내어도 다시 내게 달려와 귀를 젖혔다.
오후 5시가 넘으니 해가 서서히 떨어졌다. 아침엔 왼쪽이었고, 낮엔 머리 위였으며, 이젠 오른편에 길게 뻗은 산이 품어줄 듯 가까워졌다. 하루 내내 같은 자리에서, 해가 궤적을 그리는 걸 다 보는 건 처음이었다. 멋진 풍광이 지겹고 지겨워 눈을 감았다. 옆으로 웅크리고 잠시 누웠다. 다시 일어나니 5분이 지나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팔굽혀 펴기를 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고, 복싱 원투 자세를 했다. 그러니 또 5분이 지났다. 그놈의 5분, 미칠 듯 느리게 가는 시간.
저녁이 되니 컴컴해졌다. 해가 떨어지니 기온은 더 떨어졌다. 영하 7도, 칼바람은 더 날카로워졌다. 발가락이 추위에 욱신거렸다. 꼼지락거리니 감각이 이미 무뎠다. 일어서니 맨바닥인 듯 신발 감촉이 안 느껴졌다. 두텁게 입은 옷도 차가워졌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 춥다, 그 생각만 남았다. 돌돌 말아 죽은 듯이 있다가, 멍순이가 걱정돼 방향을 틀었다.
얼어붙은 두 손을 뻗어 녀석의 몸을 매만졌다. 흠칫 놀랄 만큼 차가웠다. 일어나 두 팔과 다리로 몸을 감싸 안았다. 남은 온기라도 줄 요량이었건만 이 녀석, 놀자는 줄 알고 또 신이 났다. "야, 멍순아. 집에 들어가 인마, 추워." 속상해져 녀석을 다그쳤다. 간식으로 유인해 집에 집어넣었더니 다시 나왔다. 엉덩이를 밀어 넣었더니 낑낑 버티며 안 들어갔다. 제발 말 좀 들으라고 한동안 씨름을 했다. 결국 내가 졌다.
추위보다 더 힘든 게 외로움이었구나. 그 절절한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외워버릴 듯 익숙해진 풍경조차 보이지 않았다. 낮의 지루함마저 사치였을 길고도 깜깜한 밤. 가끔 오가던 차 불빛도, 사람도 다 멈추고 가로등 불빛 하나만 위로하는 적막한 밤. 울어도 누구 하나 대답 없는 외로운 밤. 그리 긴 어둠을 견디고 일어나면, 또다시 펼쳐지는 똑같은 광경.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틀 안에서, 또 하루를 견뎌야 하는 1m의 삶.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가 와서 곁에 머물러 주었을 때, 목이 팽팽해지도록 쇠줄을 당기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오려 했던 거라고. 그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몸짓이 온 마음으로 다 이해가 됐다.
작별 인사를 할 때쯤엔 복잡한 생각에 괴로웠다. 떠나면 홀로 남을 녀석을 또 어쩌나. 내일 또 날 기다리면 어떡하나. 괜히 찾아와 몰랐던 삶을 알게 해줬나. 쉬이 닿기 힘든 헛된 희망을 심어준 걸까. 그걸 다시 잊기까진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싶어서. 쓰다듬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고, "또 올 게"란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멍순이와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발목에 묶인 목줄을 풀고 여전히 묶인 멍순이를 바라봤다. 너무나 살 것 같지만 홀가분하진 않은, 반쪽짜리 자유에 숨이 막혔다. 불안한 눈빛으로 날 보는 녀석에게 고백했다. "오늘 정말 힘들었어. 끝날 걸 아는 체험이라 견딜 수 있었어. 언제 마칠지 몰랐다면 아마 못했을 거야. 나 혼자 떠나서 정말 미안해." 그런데도 해맑게 꼬릴 흔드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차갑고 굳어버려 엉망이 된 얼굴을 멍순이는 몇 번이고 핥아줬다. 온통 얼어버린 세상에서 따뜻한 건 그 혓바닥의 온기뿐이었다. 딱딱한 찰흙 반죽처럼 뻣뻣한 몸을 일으켰고, 마침내 하루 내 갇혀 있었던 1m 반경을 벗어났다. 온종일 눌러둔 '일시 정지'가 풀린 느낌이랄까. 제자리서 발을 재빠르게 굴리고, 제대로 기지개를 켰다. 이제야 몸 전체에 피가 도는 것 같았다.
너무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움직일 수 있는데 움직일 수 없어서, 그래서 너무 추운데 피할 수 없어서, 생각은 다채롭게 뻗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어느 순간엔 그마저 다 익숙해져서, 그러니 너무 무기력해져서. 흑백사진처럼 단조롭기 짝이 없었던 하루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기억. 그건 멍순이와 산책했던 1시간뿐이었다. 칼바람에 털이 휘날리게 뛰다 돌아봤을 때 웃고 있었던 녀석의 얼굴, 그건 차마 잊지 못하겠다.
헤어진 뒤 천천히 걸었다. 뒤돌아봤다. 멍순이는 날 보고 있었다. 다시 돌아서서 걸었다. 또 뒤돌아섰다. 멍순이를 봤다. 녀석도 날 보고 있었다.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뒤돌아서니, 여전히 날 보고 있었다. 차에 올라탔다. 천천히 도로를 달렸다. 멍순이 집 앞을 지날 땐 창문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날 보고 있었다. 계속 그러고 있었다. 사라진 뒤에도 그랬으리라.
횟집에 묶여 앉지도 못하는 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차도 변에 묶여 있는 개, 공장서 이불 한 장 없이 묶여 있다가 새끼를 여덟이나 낳은 개, 고물상 앞 짧은 줄에 묶여 남은 밥을 먹으며 사는 개, 제주 컨테이너 앞 귤밭 쪽에 묶여 비바람이 불어 집이 날아가도 쳐다도 안 보다가, 짖으면 주인에게 맞는다는 개까지.
불법도 아니라 뭐라 강제할 수도 없고, 개들은 원래 바깥에서 그리 키우는 거라 여기니 설득은 어렵고, 그러나 마음이 쓰여서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고, 그런데 주인이 있으니 돌보고 산책하는 것마저 눈치 보이는. 추산도 안 되는 그런 수많은 개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들의 삶에선 어떤 문제가 생길까. 명보영 수의사(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는 "흙에서 생활하면 진드기, 벼룩, 심장사상충 등에 더 많이 노출돼 질병에 취약하고, 혹서기엔 열사병, 혹한엔 동상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체구가 작고, 나이가 3~4개월 이하로 적으면 버티기 힘드니 바깥서 키우면 안 된단다.
심리적인 부분도 마찬가지. 명 수의사는 "계속 묶여 있으면 사람과의 사회화, 다른 동물과 접촉이 한계가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며 "그러면 지속해서 짖거나 헝겊 등을 물어뜯는 강박 행동, 한 곳을 빙빙 도는 등의 정형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줄을 당장 다 풀어서 집안으로 데리고 오자는 건 아마 현실 방안이 아닐 게다. 각자 키우는 환경에도 사정이라는 게 있을테니. 다만 개들 삶을 최대한 생각해 배려하자는 거다.
이를테면 행동반경은 넓힐 수 있다. 명 수의사는 "같은 공간이라도 1m 짧은 줄에 묶이는 것과, 3m, 5m, 10m 길이가 많이 달라서 사회화에 도움될 수 있다"고 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저희가 (짧은 줄을) 긴 줄로 바꾸는 걸 하는데, 초기만 해도 없어서 철물점에서 제작했었다"며 "지금은 긴 와이어 줄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실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개 와이어 줄'을 검색하니, 10m짜리 줄도 1만원 정도 금액이면 살 수 있었다. 묶으면서도 도르래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게 많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산책. 주인이 안 하거나 사정상 어렵다면 주변에서 산책시켜줄 수 있다. 명 수의사는 "제일 신경 쓸 수 있는 건 하루 10분이라도 가능하면 산책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7일, 이형주 대표와 함께 서울 송파구를 찾아 단풍이를 산책시켜봤다. 일주일 만에 산책하는 녀석은 신이 나서 난리가 났다. 이 대표는 "산책하는 날이면 단풍이가 새벽 6시부터 우릴 기다린다"고 했다.
정책적으로 필요한 건 '중성화'다. 단풍이만 해도 벌써 2~3번은 새끼를 낳았다고. 그렇게 나온 새끼들은 돌아다니다 유기견이 되거나, 또다시 짧은 줄에 묶여 생을 보낸다. 그래서 경기도나 제주도 등 일부 지자체에선 '시골 개 중성화 사업'을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설득하는 작업 역시 쉽지 않은 편이란다.
시골 개와 반려견은 다를까. 전자는 마당서 짧은 줄에 묶어 키워도 되고, 후자는 집에서 애지중지 아껴야 할까. 어쩌면 오래도록 그리 여겨졌을 수 있으나, 다 똑같은 개라는 걸. 사람이 좋아 귀를 젖히며 꼬릴 흔들고, 맛난 간식을 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산책하면 세상의 별난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하는. 적어도 하루 내내 지켜본 멍순이는 분명 그랬다. 그런 생각이 많아진다면, 너의 삶을 더 아껴주는 이도 많아질 거라고.
에필로그(epilogue).
멍순이와 헤어지기 전 보호자에게 이리 부탁했다.
"선생님, 제가 하루 묶여 있어 보니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가만히 있으니 춥고, 할 게 없으니 심심하고, 시간도 너무 안 가고요. 그런데요. 그러다 산책하니 정말 살 것 같더라고요. 멍순이도 난리가 났었어요. 신나서 펄쩍펄쩍 뛰고, 활짝 웃고요. 개들도 웃거든요.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멍순이 산책 가끔이라도 시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주시면 진짜 감사할 것 같아요."
가만히 듣던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허리가 나아지면 꼭 산책을 많이 시켜주겠노라고. 멍순이가 당기는 힘이 좋아서 지금은 못 하는 거라고 말이다.
전화를 끊은 뒤 날 빤히 보는 녀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멍순아, 내가 너 대신 말씀드렸어. 너 오늘 보니까, 누가 오면 마냥 꼬리 흔들고 좋아하더라고. 그럼 다들 잘 모르잖아. 평소 네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말이야. 근데 넌 그걸 다 표현하긴 서툰 것 같아서. 그래서 오지랖 좀 부렸어. 잘했지? 네가 좀 더 행복했으면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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