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김씨는 올해도 '무직자'로 설을 맞았다

유환구 2021. 2.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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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경영 악화되자 3~6개월 쪼개기 계약 성행
최저임금 받는데 마스크·손소독제까지 직접 구입
'코로나 산재 1위' 불명예.. 재난지원금도 못받아
취약계층 돌보는 '필수노동자.. 공공역할 강화해야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던 60대 요양보호사 김모씨는 작년 말 '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씨뿐 아니라 전일제 보호사 5명 중 3명이 한꺼번에 잘렸다. 재작년 다니던 센터에서도 1년이 안돼 구두로 "그만 나오시라"는 해고 소식을 들어야 했다. 김씨는 "재정상의 이유라고 하더니 곧바로 새 요양보호사 채용 공고를 내더라"며 "너무 억울해 건강이 나빠져 입원까지 했다"고 말했다.

노인성 질환을 앓는 어르신들의 신체·가사활동을 돕는 요양보호사는 '코로나 시대' 가장 고통 받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돌봄 노동의 특성상 밀접 접촉이 불가피해 감염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데다 코로나로 인해 고용 여건 또한 급격히 악화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서다. 근로복지공단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산재처리현황'을 보면 지난달까지 근로와 감염 간의 연관성이 인정돼 산재로 승인받은 134건 중 요양보호사는 29건으로 가장 많아 '산재 1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원래도 불량 일자리였는데... 엎친데 덮친 코로나"

요양보호사는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서 국가자격제도와 함께 등장한 직업이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를 보면 요양보호사 수는 총 44만4,525명에 달한다. 이 중 38만명 정도는 노인들의 집을 직접 찾는 방문요양보호사고, 나머지는 요양전문시설에 근무한다.

사실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대표적인 '불량 일자리'로 꼽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코로나는, 말그대로 '엎친데 덮친격' 이었다.

우선 가뜩이나 불안했던 고용이 더 불안해졌다. 요양보호사는 원래도 1년 계약직이 대부분이었다. 평균 연령이 이미 60세로 정년에 임박한 나이라 정규직보단 계약직이 당연시됐다. 급여 역시 대부분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진은정 전국요양서비스노조 부산경남지부장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직업임에도 경력이 10년이 넘어도 급여가 올라가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자 '1년'이란 관행마저 깨졌다. 코로나 여파로 입소를 꺼리거나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경영이 어려워지자 직원을 줄이거나 해고를 쉽게 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요양보호사 신모(66)씨는 "지난달에 요양기관 취업을 알아보는데 3개월 계약을 하자고 했다"며 "3개월이면 막 업무가 익숙해질 시점인데, 나중에 재계약이 안되면 또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재가요양보호사 근본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긴급생계비 지원을 전체 재가요양보호사로 지급 대상자를 확대할 것, 일회성 지원이 아닌 전체요양노동자 위험수당 10만원 지급, 근본적 대책을 위한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뉴스1

"마스크 한 장 못받았다"... 재난지원금서도 소외

재가(방문)요양보호사들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업체에 소속돼 계약서를 쓰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용직 노동자나 다름 없다. 진은정 지부장은 "업체들은 돌봄을 받는 노인들의 '숫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기 때문에 노인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터지니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 △나이가 많다, △교회를 다닌다 등 각종 이유를 들어 요양보호사를 안 받겠다거나 교체를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재가요양보호사 이모(63)씨는 "과거에는 하루에 3시간씩 두 집을 방문해 한 달에 13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수입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 거 같다"고 했다.

마스크나 손소독제 등을 직접 구입하는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일을 할 때 땀이 많이 나 하루에 여러 장의 마스크가 필요한데 최소한의 방역물품 지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정부가 올해 초 지급한 3차 재난지원금에는 '돌봄 서비스 노동자' 9만명에게 생계지원금 5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38만명에 달하는 재가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여기서 제외됐다.


정부 자금으로 어르신 돌보는 '필수노동자'

문제는 요양보호사들이 나랏돈을 받고 일하는 '공공노동자'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민간 요양기관에 소속돼 움직이지만, 요양비의 85%는 국가가 지원한다. 정부가 투입한 자금으로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관 운영을 민간에만 맡겨두면서 경쟁이 과열되고, 노동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사를 파견하는 요양기관만 전국에 1만개 이상이 난립하고 있다.

사실 돌봄 노동에서 국가의 역할을 되찾자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돌봄 서비스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는 사회서비스원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의무 설치하는 '사회서비스원법'이 그것이다.

실제로 서울과 경기 등 일부 지자체에는 2019년부터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돼 한층 개선된 돌봄 노동이 지원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현욱 서울사회서비스원노조 지부장은 "2019년에 서울서비스원이 생기면서 유일하게 월급제를 시행하고 근무 여건 개선이 이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민간 요양기관들의 강력한 반대로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행인 점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국가재난상황에서 취약계층인 노인 돌봄을 떠안고 있는 요양보호사를 '필수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10월 요양보호사들을 만나 "돌봄과 같은 대면 서비스는 코로나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노동"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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