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방문 256회, 1.8일당 1회꼴..박양우 장관이 문체부에 남긴 유산
세종청사노조 최초로 수여한 '최고의 장관상' 끝내 고사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장관 공식 현장방문 256회. 이 횟수는 박양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0일 임기를 마칠 때까지 남긴 기록이다. 박 전 장관은 재임기간은 2019년 4월3일부터 2021년 2월10일까지 만 698일이다. 그는 2.7일당 1회꼴로 현장을 찾아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했다.
박양우 전 장관의 근무일을 주말과 국경일을 뺀 466일로 계산하면 1.8일당 1회꼴로 현장을 방문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무의미한 숫자다. 그가 주말도 없이 일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임명되자마자 쉼없이 일해야 했다. 강원도 고성 일대에 대규모 산불이 번졌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대책본부'가 취임 이튿날인 2019년 4월5일에 강원도 문화재·문화시설의 산불 피해 현황과 피해 복구를 위해 편성됐다. 박양우 장관은 주말인 7일 속초시 한화리조트설악 등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점검한 뒤 관광시설 복구 특별 융자를 곧바로 실시했다. 또한 문체부 및 정부부처의 워크숍 등의 행사를 피해지역에서 진행해 빠른 회복을 유도하기도 했다.
박양우 전 장관은 취임식때 강조한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을 재임기간 내내 실천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문체부 출신인 그에게 지시한 "블랙리스트 사태로부터의 정상화"를 실천하는 방안이기도 했다. 박 전 장관은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참여정부시절 문화관광부 차관을 지내기까지 줄곧 문체부에 몸을 담은 정통 관료출신이다.
지난 10일 오전 세종시 문체부청사 기자실을 찾은 박 전 장관은 "만 11년 1개월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직원들의 사기가 끝없이 떨어져 있어서 우려가 컸다"며 "블랙리스트 사태로 내상을 입은 문화체육관광의 생태계를 조속히 회복하려면 현장을 찾아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양우 전 장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다가 목소리가 메이고 눈물을 훔친 적이 여러 차례다. 2019년 6월11일도 그랬다. 그는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을 찾아 블랙리스트 내부고발자 김진이씨의 증언을 듣던 도중에 눈가를 매만지면서 감정을 추스렸다. 그는 이 자리에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과 사회적 기억사업을 약속했다.
장관이 현장을 방문한다는 것은 직원들이 물밑에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박양우 전 장관은 "장관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이렇게 하겠다'고 보고하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며 "책임은 당연히 장관인 내가 질 테니까 일하는 여러분이 결정하라고 한 셈(웃음)"이라고도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는 일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문체부 현원 2787명 중 17.3%에 해당하는 483명이 승진했다. 이 가운데 5급 이상은 192명이다. 이제 문체부는 국·과장급 이상 공무원이 정부부처 가운데 평균연령이 낮은 곳 중에 하나가 됐다.
재임기간에 일어난 일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박 전 장관은 공무원노조가 인정한 최초이자 최고의 장관이다. 그는 지난해 12월17일 세종청사공무원노동조합연합회가 중앙부처 장관을 대상으로 최초로 선정한 '최고의 장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세종청사노조는 Δ공무원 조직문화 개선 노력 Δ노사상생 기여 Δ정책수행 실적 등 세 가지 기준으로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은 '최고의 장관상' 감사패를 여러 차례 고사하다가 받았다. 다만 보도자료 배포 등을 통해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기를 간곡히 양해를 구했다. 이런 행동에는 앞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리로 재임하던 2019년 12월에 '안정감이 높다'는 이유로 박 전 장관을 일을 잘하는 장관 4명 중 하나로 꼽은 일이 작용했다. 이런 호명이 개인적으로 영광임에 분명하지만 다른 부처를 이끄는 장관들에 대한 배려와 예우 때문에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박양우 전 장관은 한류의 지속 확산을 뒷받침할 '한류지원협력과'와 소관 분야 통계 분석을 통해 정책 생산·집행을 지원하는 `정책분석팀'을 지난해 신설했다. 2021년도 문체부 예산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1399억원) 재외 한국문화원(902억원) 한국어 진흥기반 조성·확산(892억원) 장애인 예술활동(207억원) 등이 대폭 늘어나 지난해 대비 5.9% 증액된 6조8637억 원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그는 재임 기간동안 잘했던 일보다 부족하고 미흡했던 일이 먼저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모두가 악전고투해야 했다"며 "종교·관광·문화예술·콘텐츠·체육 등 문체부 소관 분야가 코로나19에서 온전한 회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온전한 회복도 현장과 계속 소통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중시하는 자세가 문체부의 좋은 전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더 나아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의 모든 부처 중에 가장 강한 부처가 되어 달라. 문체부는 국민정신행복부이자 경제부처, 국제통일부"라고도 말했다.
박 전 장관은 기자실을 떠난 뒤 문체부의 모든 부서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문화의 시대에 개인의 삶은 겸손하게, 직무 수행은 당당하게 밀고 나아가달라"는 격려와 함께 부서별로 추진 중인 정책과 현안 등에 대한 조언이 뒤따랐다.
이날 그가 문체부 직원들에게 가장 자주 건넨 말은 "가면서도 일 시켜서 미안합니다"였다. 이제 문체부는 신임 황희 장관이 제시한 문화뉴딜을 통해 코로나19로 침체된 문화체육관광업계를 되살리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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