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항모 11척' 미국, 한국처럼 경항모에 눈길 돌린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1. 2.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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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 한·미 해군의 경항모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도 경항모 6척을 추가 확보하는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

해군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는 ‘경항모, 무엇이 궁금하셨나요’의 내용 중 일부다. 해군 경항모 보유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미국도 경항모를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10만t짜리 핵추진항공모함 11척을 운용중이다. 승선 인원 6000여 명, 함재기 80여 대, 수십년을 항해할 수 있는 연료를 지닌 원자로…. 중소국가 공군력과 맞먹는 전투력을 지닌 미 핵항모는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런 핵항모를 11척이나 보유한 미국이 경항모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경항모 건조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는 상황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한국과 같은 듯 다른 美 경항모 논리

미국의 경항모 필요성에 대한 논리를 살펴보면,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눈에 띤다.
미 해군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가 호위함정들과 함께 지난달 15일 인도양 해역을 항해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미 해군 연구소 뉴스(USNI)와 디펜스뉴스 등에 따르면, 미 해군은 △핵항모 운용비 부담 △해군 운용개념 및 항공작전 변화 △군사과학기술 발전 등을 경항모 연구 배경으로 꼽고 있다.

핵항모는 전투력 측면에서 최강이지만, 건조 및 유지비도 매우 높다. 니미츠급 항모 조지 워싱턴호 건조비는 7조원, 유지비는 연간 3000억원에 달한다.

최신형인 제럴드 포드호 건조비는 16조원이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16척을 만들 수 있는 비용이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은 당초 소요에 못미치는 11척 체제로 운용한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핵항모가 빈번하게 작전에 투입했고, 이는 정비 소요 증가로 이어졌다. 
해군이 최근 공개한 경항모 상상도.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등 20대의 함재기를 탑재한다. 해군 제공
핵항모가 중국 DF-21 대함 탄도미사일의 주요 표적이 된 것도 영향을 미친다. 핵항모가 대함 탄도미사일에 피격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핵항모보다 작은 경항모는 대함 탄도미사일 탐색기에 탐지될 확률을 낮추면서 회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무인기술의 발달로 함재기의 무인화가 가능해진 것도 10만t이 넘는 핵항모의 필요성을 낮춘다.

지난해 여름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이 공개한 ‘2045년 전투력’(Battle Force 2045)에 경항모 개념이 포함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거론되는 형태는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에 F-35B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를 탑재하는 방안이다. 기존 장비를 활용하는 것이라 비용과 정비 부담이 적다. 한국 해군 경항모와 유사한 형태다. 반면 공격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미 해군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와 니미츠호가 지난 9일 남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혁신적 개념의 경항모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미 해군은 무인선박으로 구성된 ‘유령함대’를 만들 계획이다. 무인기를 항모에서 운용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도 지속되고 있다.

‘유령함대’ 구상의 일환으로 이름만 경항모일 뿐, 냉전 시절 운용됐던 키티 호크급 항모(6만t급)와 유사하면서 무인기만 탑재하거나 유인기, 무인기를 함께 운용하는 항모가 등장할 수도 있다.

반면 한국 해군의 경항모는 F-35B,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등 기존 전력 위주다. 이탈리아 카보우르함,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1세함보다 대형이고 전력화 시기도 10년 이상 늦지만, 전투력은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길이에 비해 배수량이 낮다는 점을 들어 6만t급 중형 항모로의 확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예산과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다.

대함 공격 능력이 미지수인 F-35B는 해상 공중전에서 한계가 명확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형전투기(KF-X) 함재기 개발이 거론되지만, 이는 KF-X 프로그램을 또 한번 시행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기술적 난관도 많다.

공군은 ‘공군비전 2050’에서 항모 탑재 무인전투기 확보 방침을 밝혔지만, 해군 경항모 소개 자료에서는 이같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2038년에 만들어지는 프랑스의 7만5000t급 핵항모가 6세대 전투기, 무인기 탑재가 가능하도록 건조 개념을 설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영국 해군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가 포츠머스항에서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려스런 시선 여전한 해군 경항모

항모를 보유했다고 해서 해양안보문제를 독자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 호위 및 항공전력 구성 문제 때문이다. 

항모 보유는 해군 수상함 전력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 작전 소요에 항모 호위가 추가됐기 때문에 구축함 건조도 늘려야 한다.

하지만 구축함 1척 건조에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구축함 추가 확보 요구는 예산 압박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차기 핵항모 상상도. 6세대 전투기와 무인기 등 40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예정이다. 프랑스 국방부 제공
해군에 배당되는 예산이 필요한 액수보다 적으면, 항모 호위 전력 확보는 지연된다. 결국 수조원을 투입하고도 작전능력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프랑스는 2001년 샤를 드골 핵항모를 전력화했지만, 이를 호위할 함정이 항상 부족했다.

예산은 삭감됐으나 지중해와 대서양 등에서의 초계활동에 이슬람국가(IS) 격퇴, 리비아 및 시리아 내전 개입 등 항모가 필요한 작전이 증가했지만, 구축함 건조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다.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국력의 상징인 핵항모였지만 미국, 영국, 인도 등 우방국 구축함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2014년 경항모를 퇴역시킨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 항모를 새롭게 취역시켜 대영제국의 위상과 해군력을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항모 2척을 기함으로 하는 항모타격단에 배속시킬 호위함과 군수지원함이 부족했다. 
영국 해군 항모 퀸 엘리자베스호 갑판에서 F-35B 전투기들이 이함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 해군 제공
 
영국이 기존에 수행하던 대서양, 지중해 초계작전과 대러시아 작전 등에 항모 호위 수요가 추가됐지만, 예산 제약으로 수상함 확보 속도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영국은 항모 호위 전력을 미국과 네덜란드 해군에 지원받고 미 해병대 F-35B 비행대대를 합류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올해 인도태평양으로 진출할 퀸 엘리자베스 항모는 인도, 일본, 호주 등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항모 호위 전력을 구성할 예정이다.

한국 해군도 영국과 프랑스처럼 항모 호위에 주력할 여유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해군은 경항모 호위 전력 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주변국 해군의 한반도 진출이 늘어나면서 수상함 작전 소요가 증가할 가능성을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중국 군함이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ZZ) 잠정 등거리선을 넘어 한반도 인근에 출현한 횟수는 910여회다. 연도별로는 2016년 110여회, 2017년 110여회, 2018년 230여회, 2019년 290여회, 2020년(8월) 170여회다.

서해 등 한반도 해역에서 주변국들의 활동이 늘어나면 이를 견제할 우리 해군의 작전 소요도 증가한다. 북방한계선(NLL) 수호와 해외 파병, 교육훈련, 정비 등의 소요도 있다.

대대적인 예산 증액을 통해 해군 호위함을 추가 확보해야 경항모 호위와 일상적인 해상작전을 함께 수행할 수 있지만, 예산이 제대로 뒷받침된다는 보장은 없다. 
미 해군 무인기 X-47이 핵항모 조지 부시호 갑판에서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결국 영국과 프랑스처럼 미 해군의 지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한미 동맹과 연합작전의 틀에서 바라보면 적절하지만, 자주국방과 국력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돌파하려면 해군이 전략적, 작전적, 전술적 차원에서 경항모 운용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해군과 합참, 국방부 차원에서의 군사전략과 개념, 전력증강계획도 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 

강대국들이 이미 사용했던 방법 대신 파괴적 혁신을 추구할 필요도 있다.

미 해군이 50여년 동안 유지해온 핵항모 체제를 재검토하는 발상의 전환을 추진하는 것처럼, 한국 해군도 경항모 전력화 시기를 다소 늦추더라도 ‘드론 항모’나 군집 드론 플랫폼으로의 전환, 레이저 무기 탑재 등 혁신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작지만 전투력은 막강한 경항모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경항모는 주변국 해군의 좋은 표적이 될 뿐이다. 해군과 국방부, 합참, 방위사업청 등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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