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항모 11척' 미국, 한국처럼 경항모에 눈길 돌린다 [박수찬의 軍]
“미국도 경항모 6척을 추가 확보하는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
해군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적극 홍보하고 있는 ‘경항모, 무엇이 궁금하셨나요’의 내용 중 일부다. 해군 경항모 보유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미국도 경항모를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10만t짜리 핵추진항공모함 11척을 운용중이다. 승선 인원 6000여 명, 함재기 80여 대, 수십년을 항해할 수 있는 연료를 지닌 원자로…. 중소국가 공군력과 맞먹는 전투력을 지닌 미 핵항모는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런 핵항모를 11척이나 보유한 미국이 경항모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경항모 건조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는 상황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한국과 같은 듯 다른 美 경항모 논리
핵항모는 전투력 측면에서 최강이지만, 건조 및 유지비도 매우 높다. 니미츠급 항모 조지 워싱턴호 건조비는 7조원, 유지비는 연간 3000억원에 달한다.
최신형인 제럴드 포드호 건조비는 16조원이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16척을 만들 수 있는 비용이다.
핵항모보다 작은 경항모는 대함 탄도미사일 탐색기에 탐지될 확률을 낮추면서 회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무인기술의 발달로 함재기의 무인화가 가능해진 것도 10만t이 넘는 핵항모의 필요성을 낮춘다.
지난해 여름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이 공개한 ‘2045년 전투력’(Battle Force 2045)에 경항모 개념이 포함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령함대’ 구상의 일환으로 이름만 경항모일 뿐, 냉전 시절 운용됐던 키티 호크급 항모(6만t급)와 유사하면서 무인기만 탑재하거나 유인기, 무인기를 함께 운용하는 항모가 등장할 수도 있다.
반면 한국 해군의 경항모는 F-35B,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등 기존 전력 위주다. 이탈리아 카보우르함,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1세함보다 대형이고 전력화 시기도 10년 이상 늦지만, 전투력은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길이에 비해 배수량이 낮다는 점을 들어 6만t급 중형 항모로의 확대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예산과 기술력 등을 감안할 때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다.
대함 공격 능력이 미지수인 F-35B는 해상 공중전에서 한계가 명확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형전투기(KF-X) 함재기 개발이 거론되지만, 이는 KF-X 프로그램을 또 한번 시행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기술적 난관도 많다.
공군은 ‘공군비전 2050’에서 항모 탑재 무인전투기 확보 방침을 밝혔지만, 해군 경항모 소개 자료에서는 이같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항모를 보유했다고 해서 해양안보문제를 독자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 호위 및 항공전력 구성 문제 때문이다.
항모 보유는 해군 수상함 전력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 작전 소요에 항모 호위가 추가됐기 때문에 구축함 건조도 늘려야 한다.
프랑스는 2001년 샤를 드골 핵항모를 전력화했지만, 이를 호위할 함정이 항상 부족했다.
예산은 삭감됐으나 지중해와 대서양 등에서의 초계활동에 이슬람국가(IS) 격퇴, 리비아 및 시리아 내전 개입 등 항모가 필요한 작전이 증가했지만, 구축함 건조는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다.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국력의 상징인 핵항모였지만 미국, 영국, 인도 등 우방국 구축함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영국이 기존에 수행하던 대서양, 지중해 초계작전과 대러시아 작전 등에 항모 호위 수요가 추가됐지만, 예산 제약으로 수상함 확보 속도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영국은 항모 호위 전력을 미국과 네덜란드 해군에 지원받고 미 해병대 F-35B 비행대대를 합류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올해 인도태평양으로 진출할 퀸 엘리자베스 항모는 인도, 일본, 호주 등과의 연합훈련을 통해 항모 호위 전력을 구성할 예정이다.
한국 해군도 영국과 프랑스처럼 항모 호위에 주력할 여유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해군은 경항모 호위 전력 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주변국 해군의 한반도 진출이 늘어나면서 수상함 작전 소요가 증가할 가능성을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의원의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중국 군함이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ZZ) 잠정 등거리선을 넘어 한반도 인근에 출현한 횟수는 910여회다. 연도별로는 2016년 110여회, 2017년 110여회, 2018년 230여회, 2019년 290여회, 2020년(8월) 170여회다.
서해 등 한반도 해역에서 주변국들의 활동이 늘어나면 이를 견제할 우리 해군의 작전 소요도 증가한다. 북방한계선(NLL) 수호와 해외 파병, 교육훈련, 정비 등의 소요도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돌파하려면 해군이 전략적, 작전적, 전술적 차원에서 경항모 운용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해군과 합참, 국방부 차원에서의 군사전략과 개념, 전력증강계획도 이에 맞춰 바꿔야 한다.
강대국들이 이미 사용했던 방법 대신 파괴적 혁신을 추구할 필요도 있다.
미 해군이 50여년 동안 유지해온 핵항모 체제를 재검토하는 발상의 전환을 추진하는 것처럼, 한국 해군도 경항모 전력화 시기를 다소 늦추더라도 ‘드론 항모’나 군집 드론 플랫폼으로의 전환, 레이저 무기 탑재 등 혁신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작지만 전투력은 막강한 경항모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경항모는 주변국 해군의 좋은 표적이 될 뿐이다. 해군과 국방부, 합참, 방위사업청 등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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