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욕하지 마라"

윤기은 기자 2021. 2. 12. 20: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영국 워링턴에 사는 다쉬훈트 강아지가 2010년 1월4일(현지시간) 찍힌 모습. 게티이미지


개의 자식, 닭의 대가리, 돼지의 새끼….

어감이 썩 좋지 않습니다. 한국어에는 동물 이름이 들어간 욕이 많은데요,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개(Dog)는 ‘가치 없는’, 닭(Chicken)은 ‘겁쟁이’, 쥐(Rat)는 ‘고자질쟁이’, 뱀(Snake)은 ‘얼간이’, 돼지(Pig)는 ‘역겨운’, 나무늘보(Sloth)는 ‘게으른’이라는 의미가 담긴 욕설입니다.

국제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는 여기에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트위터에 “동물을 빗댄 욕설은 동물을 경시하고 폄하하는 인간 우월주의적인 태도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며 “말하기 전에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이튿날 옥스포드 영어사전, 미리엄 웹스터 사전, 콜린스 영어사전 등 저명한 사전 업체 6곳에 동물에 대한 나쁜 뜻을 영어단어 사전에서 없애달라고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PETA의 의견이 반영되진 않았습니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 지난 10일 ‘dog’를 검색하니 ‘쓸모 없거나 경멸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써 있었습니다. 콜린스 사전에 ‘chicken’을 검색했더니 ‘무언가 하기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기재돼있고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는 ‘rat’이라는 단어에 ‘불쾌한 사람 혹은 배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나옵니다.

잉그리드 뉴커크 PETA 회장은 욕으로 쓰이는 동물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PETA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뉴커크 회장에 따르면 돼지는 지능이 높고, 고통에 처한 다른 돼지에게 공감할 줄도 압니다. 7년 전,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럭키’라는 이름의 반려돼지는 집에 불이 나자 자고 있던 가족들에게 뛰어가 “꿀꿀” 소리를 내며 화재를 알린 적도 있습니다. 이름의 의미만큼 행운을 가져다준 럭키의 이야기는 미국 주간 타임에 2014년 6월10일 소개됐죠.

뱀은 수십키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합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개는 평균적으로 약 400개의 단어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PETA는 동물 욕설을 다른 단어로 바꿔 사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들이 제안한 단어는 아래 사진에 나와 있습니다.

동물 이름을 딴 욕을 사용할지, 말아야 할지 토론도 벌어졌습니다. 제니퍼 화이트 PETA 대변인과 영국의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 피어스 모건은 지난 1일 영국 ITV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 <굿 모닝 브리튼>에 출연해 갑론을박을 펼쳤습니다. 화이트 대변인은 “동물 욕 사용을 ‘금지’시키자는 게 아니다”며 “해당 단어들이 동물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니,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의미다”고 말했습니다. 모건은 “그 욕을 듣고 ‘화날’ 동물은 없을 거다”며 “쥐는 역겨울 수 있고, 나무늘보도 게으를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제니퍼 대변인은 “나무늘보는 느린 거지 게으른 건 아니다”고 응수했습니다.

모건은 화이트 대변인에게 “PC(정치적 올바름) 언어 경찰”이라며 그를 비꼬기도 했습니다. 화이트 대변인은 또 지지 않고 “당신은 언론인이고, 단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않느냐”고 답했습니다.

코르타리카 마누엘안토니오 국립공원에 사는 나무늘보. 위키피디아


사실 이러한 논의는 PETA가 시작한 게 아닙니다. 그동안 동물 욕설을 쓰지 말자고 주장한 사람은 여럿 있었습니다. 미국의 동물권 운동가 콜린 패트릭-구드로는 2019년 미국 언론 KQED에 “우리가 선택한 단어는 개인과 집단의 가치를 반영한다”며 “성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 사용이 우리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듯이, 인간이 동물을 열등한 의미로 묘사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캐나다의 칼럼니스트 크리스티안 코트로네오도 2019년 환경·동물 전문 블로그인 ‘트리허거’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코트로네오는 “우리가 동물 이름을 욕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동물이 인간에 반발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회가 성장하며 나쁜 의미를 담은 말은 사라지기도 했다”며 동물과 관련된 욕설을 쓰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동물 이름을 빗댄 욕설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