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차별 인사' 가니 '극우·혐한 인사'가..선장도 못 세우고 꼬이는 도쿄올림픽
선발도 일방적.. 결국 백지화
“여성이 회의에 참석하면 시간이 길어진다” 등의 차별 발언으로 사퇴 요구를 받아온 모리 요시로(森喜朗·84)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겸 전 총리가 발언 9일 만에 사임했다. 이와 함께 모리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내정한 후임자도 과거 한국 비하 발언과 일방적 선발 과정 등에 비난이 이어져 취임이 백지화 됐다. 5개월 뒤 성화를 밝혀야 하는 도쿄올림픽의 내우외환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퇴 이유는 올림픽 후원사들의 반발
모리 위원장은 12일 오후 3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합동간담회 시작 전 참석해 정식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은 저의 부적절한 발언이 원인으로, (대회 준비에) 혼란을 가져왔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 대회 개최에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된다”며 15분 간 사퇴의 변을 밝혔다. 12일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모리 위원장은 ‘위원장’직만 사임할 뿐 고문역할은 계속할 방침으로 조직위원회에 남을 예정이다.
당초 모리 회장은 이날 재차 사과를 하며 계속 위원장직을 강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후원 기업들이 잇달아 비난 수위를 높이기 시작하면서부터 흐름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대표 후원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10일 결산 발표 도중 집행이사가 “올림픽 정신에 배치되는 (이번 발언에) 심히 유감이다”라는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사장 명의의 성명서를 대독하기도 했다. 미국 내 올림픽 방영권을 독점하는 NBC 방송도 10일(현지시간) “모리는 떠나야 한다”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NHK의 조사에 따르면 올림픽 후원사 중에 설문에 응답한 54곳 가운데 66%가 넘는 36개사가 “모리 위원장의 발언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사퇴의 흐름에 쐐기를 박은 것은 8일 저녁 열렸던 존 코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과 모리 위원장이 화상 전화회담이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날 코츠 부위원장은 “특히 메인 후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라고 우려를 나타냈고 이에 낙담한 모리 위원장은 “지금은 명경지수(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의 심경이다”라며 사실상 사퇴 의사를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후 다음 날 IOC는 “모리 위원장의 발언은 완전히 부적절하다”라고 새 입장을 발표했다. 당초 IOC는 4일 모리 위원장의 기자회견 후 “사과를 했으니 문제가 끝났다”고 입장을 밝혔다.
●모리가 내정한 후임자는 극우 인사
모리 위원장이 사퇴 직전 내정한 후임자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맹우’ 가와부치 사부로(川淵三郞·85) 전 일본 축구협회 회장 겸 도쿄올림픽 선수촌장이다. 가와부치 전 회장은 11일 모리 위원장과 대화 후 수락할 뜻을 밝혔으나 그의 취임은 하루 만에 전면 백지화 됐다. 후지TV 등 일본 언론들은 12일 오후 일본 정부가 가와부치 전 회장의 기용에 여론 반발 및 절차 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선발을 미루도록 조직위 측에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12일 일본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는 하루 종일 그의 극우적인 과거 발언들이 이슈가 됐다. 특히 한국에 대한 ‘혐한’ 발언도 적지 않았다. 2년 전인 2019년 7월 반도체 주요 소재를 대상으로 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당시 그는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조치에 따른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인 것 같지만 EU도 한국을 백색국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의 조치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
같은 해 10월에도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미술관에서 열린 국제 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소녀상’이 전시 철거를 주장하는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 나고야 시장 등 극우 세력에 공격을 받자 ”나고야 시장님, 정말 잘 하셨습니다“라며 칭찬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은 이미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거금을 지불했다. 그 돈으로 한국은 경제 부흥을 했으니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하며 한국을 압박해 온 인물이다. SNS에서는 ”한국에 대한 차별 발언을 일삼아 온 이런 인물이 올림픽 위원장에 적합한지 의문이다“라며 비난했고 사퇴 및 항의 서명자만 하루 만에 8만 명을 넘었다.
이와 함께 모리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지명했다며 후임 선정 과정의 문제도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 등은 ”후임자는 이사회를 열어 선발해야 하는데 가와부치 전 회장은 현재 조직위 이사도 아니다“라며 ”단순히 맹우 관계인 모리 위원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져 문제가 많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여성 차별 발언으로 모리 위원장이 물의를 빚었으니 후임자는 여성 임원이나 젊은 인물 중에 선발되는 것이 적합함에도 모리 위원장은 끝까지 자신의 힘을 과시, ‘밀실정치’의 끝을 보여주었다“며 비난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도 ”조직위 측이 독립된 법인인 만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도쿄올림픽은 일본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의 협력 아래 진행되어야 하는 만큼 인사를 포함한 운영에 대해 투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공석이 된 조직위원장 후임자에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올림픽 담당상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임 인사는 이달 중 결정될 예정이다.
도쿄=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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