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비하인DOO] "아들 왔어"..새벽 4시 반, 이천 어머니는 밥을 짓는다

김민경 기자 2021. 2. 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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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베어스파크에서 선수단에게 제공되는 식사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이천, 김민경 기자] "애들이 나를 '엄마'라고 불러요. 그래서 나도 '아들 왔어' 하기 시작했죠."

두산 베어스 2군 훈련시설인 이천베어스파크에는 사시사철 선수단의 끼니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있다. 현대그린푸드 영양사 이필주 씨가 주인공이다. 평소에는 새벽 5시쯤 출근해 아침을 준비하지만, 스프링캠프 기간에는 30분을 더 앞당겨 4시 반부터 현대그린푸드 직원들과 함께 밥을 짓기 시작한다. 아침, 간식, 점심, 저녁까지 하루에 190인분을 차린 뒤 허리를 펴면 오후 7시가 넘는다.

아침은 빵과 요구르트, 우유 등을 포함해 16가지, 점심은 13가지 메뉴를 준비하고 저녁은 고기 위주로 가벼운 식단을 낸다. 몇천 명의 끼니를 준비하는 단체 급식과 비교하면 식수가 많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훨씬 적은 인원으로 끼니마다 훨씬 다양한 메뉴를 준비해야 해 결코 쉽지 않다고.

이 씨는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작은 공간에서 종종걸음만 하는데도 하루에 1만5000보~1만8000보를 걷는다고 하시더라"고 답하며 웃었다.

이 씨는 2014년 베어스파크가 개장했을 때부터 함께했다. 집기부터 인테리어까지 이 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처음에는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 씨는 2000년부터 약 13년 동안 계열사의 사내 식당에서 직장인을 상대로 식단을 짜왔다. 베어스파크로 오게 됐을 때 처음에는 선수들이 어떤 식사를 하는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고, 운동선수는 무서울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이 씨는 "솔직히 처음에 선수들이 대답을 무섭게 하진 않을까 생각했다. 겪어보니까 사람 사는 게 다르지 않더라. 이제는 이곳이 집처럼 느껴지고, 선수들도 아들이나 조카처럼 느껴진다. 사실 2군 선수들은 집 밖에 나와 있는 고생하는 아이들이지 않나. 그래서 집밥을 먹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애들이 식당에 오면 '와 집밥이다'라고 한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내가 딸만 둘이 있다. 여기 온 뒤로 종종 '내가 아들이 없는 이유가 이렇게 아들이 많으려고 그랬나 보다'라고 말한다. 나이대가 그렇게 된다. 애들은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김)민규가 엄마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래 넌 내 아들이다'라고 한다. (황)경태도 나더러 '어머니'라고 한다. 그럼 나도 '그래 아들 왔어'한다"고 덧붙였다.

▲ 현대그린푸드 이필주 영양사. 2014년부터 베어스파크에서 일하고 있다. ⓒ 이천, 김민경 기자

선수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씨는 선수들이 어떤 메뉴를 잘 먹는지, 또 알레르기가 있는 식자재는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직접 싱싱한 제철 과일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새로운 식자재가 보이면 '어떻게 선수들에게 먹일까'부터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발품을 팔아 든든한 한 끼를 차린다.

이 씨는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 또 맛있는지 물어본다. 어떤 음식이 알레르기가 있고 안 먹는지도 확인한다. 누가 어디가 아프고, 누가 장염에 자주 걸리는지도 파악한다. 오이를 안 먹는 선수는 그 선수 것만 오이를 빼고 따로 만들어서 표시해둔다.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지난해 이천에서 재활한 외국인 투수 크리스 플렉센(시애틀 매리너스)은 이 씨의 섬세함에 감동해 팁을 주기도 했다. 이 씨는 한식이 잘 맞지 않을까 봐 플렉센이 머문 2주 동안 닭가슴살과 계란 프라이를 따로 챙겨줬다. 플렉센은 이 씨가 한 '당연한 일'에 크게 감동해 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이 씨는 "우리는 팁 문화가 없어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괜찮다고 했는데 2군 운영팀장님께서 플렉센 나라의 문화니까 받아주라고 해서 감사히 받았다. 받아서 우리 직원분들께 똑같이 나눴다. 다들 좋아하시더라"고 되돌아봤다.

▲ 이필주 영양사를 비롯한 현대그린푸드 직원들은 새벽 4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선수단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 두산 베어스

스프링캠프 때는 1군 선수들이 이용하는 만큼 더욱 신경을 많이 썼다. 식당 한쪽에는 '직화 존'을 만들어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했고, 커피 머신 2대도 새로 샀다.

이 씨는 "선수들이 커피 머신을 제일 좋아한다. 하루에 3잔씩도 마시더라. 허경민 선수가 여기가 제일 인기 있는 장소라고 이야기해줬다. 원래는 커피 머신이 없었다. 건강에 안 좋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던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못 해준 게 미안하더라. 안 그랬으면 밖으로 커피를 사 먹으러 다녔을 것 같은데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커피 맛집이니까 꼭 드시고 가시라고 권한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인기 메뉴는 메밀 국수다. 메뉴에 메밀 국수가 있으면 선수들이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저 2개 말아주세요"라고 외친다고. 물론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고기다. 이 씨는 조금 더 연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보통 하루 전에 밑 작업을 다 해서 재워둔다. 가끔 라면이 먹고 싶다는 선수가 있으면 끓어 주기도 하고, 여름에는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워 선수들이 먹고 싶을 때 하나씩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다.

이 씨는 "선수들이 앞에 편의점에 다녀오면 뭐 사서 왔냐고 묻는다. 아니면 택배로 뭘 시키는지 가끔 본다. 보면 과자랑 커피를 주로 시키더라. 굳이 나가지 않게 이 안에서 가끔 줘야겠구나 싶어서 준비를 해둔다. 과자 갖고 와서 선수들에게 '이거 먹을래' 하면 싫다는 선수 못 봤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할머니가 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웃음) 소소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 이필주 영양사는 "살쪘어요"라는 말을 듣는 게 가장 기분 좋다고 한다. ⓒ 두산 베어스

선수들의 끼니를 챙겨주다 보니 자연히 야구에 관심도 생겼다. 2군에서 함께 지낸 선수가 1군에 가면 자연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보게 된다. 이 씨는 "선수들이 1군 올라가서 자기 밥값 하는 것을 보면 뭉클하더라. 그동안 노력하는 것을 보니까. 선수들이 진짜 땀을 많이 흘리고 밥 먹으러 와서도 야구 동작 연습을 한다. 애들이 노력하는 것을 옆에서 항상 보니까. 자기 실력을 인정받았을 때 가장 뿌듯하더라. 코치님들과 똑같은 마음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 나도 우리 가족도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다. 딸들이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한국시리즈는 진출할 때마다 다 데리고 갔다. 애들도 선수 응원가를 다 안다. 우리 둘째는 경태 오빠한테 시집간다는데 어떻게 하나 싶다(웃음). 경태에게 이야기했더니 '애들 잘 지내냐'고 종종 안부를 물어봐 준다. 이번 명절에는 캠프 때문에 시댁에 못 갈 것 같다고 하니 괜찮다고 해주시더라. 주변 식구들도 많이 응원해주시고, 두산 팬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양사로 지내며 가장 듣기 좋은 말은 역시나 "저 살쪘어요"다. 이 씨는 "오늘(10일)도 3명 정도한테 '살쪘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그렇게 좋더라. '작년보다 올해가 더 맛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작년보다 안 좋아졌다는 말은 안 나오게 노력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명절이나 특별한 기념일이 있으면 이벤트를 진행한다. 명절에 선수들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손에 선물 하나는 들고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보통 뽑기를 해서 선물을 나눠주는데, 선수들보다 코치들의 반응이 더 좋다고. 이번에는 1차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선수단이 2차 스프링캠프 훈련지인 울산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이벤트를 진행하려 하고 있다.

이 씨는 "명절에 선수들 손에 뭐라도 들려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은 코치님들이 더 좋아하신다. 이천 쌀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신다. 반응이 좋으니까 더 즐겁게 준비하는 것 같다. 여름에는 무더위 퇴치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이번 캠프에는 선수들이 떠나기 전에 우승 기원 이벤트를 준비해볼까 구상하고 있다"며 올해도 두산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든든한 끼니를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스포티비뉴스=이천, 김민경 기자제보>kmk@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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