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에서는 아이비리그보다 HBCU 를 더 주목하라는데
대법관, 성악가, 인권운동가 등 흑인인재 배출
'흑인대학'에서 '흑백공학'으로 변화중
전 세계 농구팬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미 프로농구 NBA 올스타전이 코로나 대유행의 여파로 시간과 장소가 변경됐다. 원래 이달 중으로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다음달로 순연됐고 장소도 조지아주 애틀랜타로 옮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올스타를 HBCU(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유서깊은 흑인대학)의 발전기금 모금 캠페인과 연계하기로 NBA사무국과 선수협회가 합의했다고 미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한껏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는 HBCU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미국 역사상 첫 유색인종·여성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역시 HBCU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라는 아픈 역사의 상징이기도 한 HBCU가 아이비 리그처럼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명문대학 브랜드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양상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흑인 대학이라는 뜻의 HBCU는 학교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단어이면서 공인 브랜드이기도 하다. 흑인 고등 교육기관에 대한 연방정부기금의 지원을 법제화한 1965년 고등교육법을 통해 HBCU라는 단어가 처음 공식 용어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1964년 이전 설립된 흑인 대학 101곳을 HBCU로 인증했다.
HBCU의 역사는 남북전쟁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노예제도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흑인 학생들을 가르칠 흑인 교사와 관료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오하이오주 윌버포스 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주 체이니 대학교, 링컨 대학교 등 세 곳이 최초의 HBCU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이른바 패배한 남부 지역(일명 ‘노예주’)에서 노예 신분을 벗은 흑인들의 고등 교육을 목적으로 한 대학들이 잇따라 설립됐다. 101곳의 HBCU는 종합대학 뿐 아니라 2년제 전문대학인 커뮤니티 컬리지도 포함한다. 앨라배마주에 가장 많은 14곳의 HBCU가 있고, 노스캐롤라이나(10곳), 조지아·텍사스(9곳), 사우스캐롤라이나(8곳) 순으로 많다. 동부와 남부 지역 19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 그리고 카리브해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에도 있다.
HBCU 중 유명한 곳으로 첫손에 꼽히는 학교는 워싱턴 DC에 있는 하워드대학교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연방 대법관 서굿 마셜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여류 소설가 토니 모리슨 등 세계적 명사들을 동문으로 둔 이 학교는 지난달 취임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학창 시절을 보낸 모교로 한동안 뉴스를 탔다. HBCU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민권운동이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학교들은 1960년대 민권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때도 구심적 역할을 했다. 버스 등 교통수단의 흑백좌석분리 철폐를 요구하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인종차별반대시위인 ‘프리덤 라이즈’는 피스크대의 다이앤 내시, 후일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아메리칸 뱁티스트대-피스크대 출신의 존 루이스, 센트럴 주립대 소속 백인 여학생 위노나 마이어스 등 HCBU 출신들이 주축이 돼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도 HCBU 남자 대학인 모어하우스 컬리지 출신이다.
이런 흑인 인권운동과의 긴밀한 연대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나왔다. 미국을 휩쓴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시위의 발화점이 됐던 경찰 진압 사망자 조지 플로이드의 여섯살 난 딸에게 HCBU인 텍사스 남부대학이 4년 전액 입학자격을 준 것이다.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흑인 상대 과잉진압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HBCU 대학 출신의 법률가들이 변호인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HBCU 대학 출신들의 활동 분야가 인권운동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클래식 성악은 백인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소프라노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제시 노먼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하워드대에서 공부했다. 아프리카 가나의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건국 대통령 콰메 응크루마도 링컨대를 졸업한 HBCU 동문이다. 미국 전체 대학(커뮤니티 컬리지 포함) 중에서 HBCU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다. 하지만 미국 흑인 대학 등록자의 10%, 졸업자의 20%가 HCBU에 적을 둔 것으로 조사된다.
이처럼 흑인들을 위한 대학이라는 정체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흑인만의 대학은 아니다. 상당수 HBCU대학들이 다른 인종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배인 등 다른 인종 학생들의 입학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 국정홍보 사이트 셰어 아메리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학생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미국의 여타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공익적 성격이 강한 대학이기 때문에 HBCU의 재정형편은 여느 사립대나 주립대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 대유행은 HBCU 대학들에게 큰 타격을 안겼다. 코로나 전에 이미 열 곳 중 한 곳 꼴로 재정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사일정이 중단되고 등록률이 하락하면서 HBCU의 재정적 위기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이번에 NBA 올스타전을 기금모금 캠페인과 연계하기로 추진하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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