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전직 외교 관리, "아시아 핵기획그룹 창설해야"..美 "한국 정부 먼저 입장 내놓아야"
미국과 한국, 일본 등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리들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 창설을 제안했다. 북한과 중국의 핵무기 증강에 대응해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핵 안전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다자간 협의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은 12일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유럽 등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리들이 ‘핵 확산 방지와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안전보장’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Asian Nuclear Planning Group) 창설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지난달 20일 출범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보냈다.
전직 고위 관리들은 지난해 1월 미국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 주관으로 결성한 ‘미국의 동맹국들과 핵무기 확산 문제에 관한 특별연구회(TF)’에 참여해 1년간 연구와 토론을 거쳐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특별연구회는 척 헤이글 전 미국 국방장관과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말콤 리피킨드 전 영국 외무·국방장관이 공동의장을 맡은 가운데 한국의 이상희 전 국방장관과 윤병세 전 외교장관, 노부야스 아베 전 일본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볼프강 이싱어 전 독일 외교담당 국무장관 등 1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의 핵기획그룹과 같은 아시아 핵기획그룹을 창설해야 한다”며 “호주·일본·한국을 미국의 핵 기획 과정에 포함시키고 이들 동맹국들에게 미국 핵 전력에 관한 구체적 정책들을 논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기획그룹(NPG)은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국방장관들이 참여하는 조율 기구로, 핵무기 운용에 대한 의사 결정과 핵전략을 논의할 목적으로 1966년 설립된 바 있다. 또 유사시 미국과 핵무기 공유협정을 맺은 독일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 5개 나라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협의도 관장한다. 이 같은 제안은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의 핵 위협에 맞선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데 따른 대응책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1967년 이래 나토 핵기획그룹은 유럽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핵보장을 안심시키는 데 결정적 요인인 동시에 핵 연습과 기획의 수행을 위한 중추기관이었음이 입증됐다”며 “미국이 아시아 핵심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려면 이와 유사한 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시아 핵기획그룹은 호주, 한국, 일본 세 나라를 미국의 핵 기획 과정에 참여시켜 이들 동맹국이 미국의 핵 전력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을 논의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여기에는 최고위층의 정치 지도자들도 포함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이 장치가 기존의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미국은 일본, 한국과의 강력한 3국 안보협력의 재구축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며 “3국 안보협력은 북한 위협에 대처하고 아시아 전체에서 다자간 안보 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명시했다. 또 “미국 대통령은 안보공약의 근원적 초석을 재확인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조약에 기반한 집단방어 공약에 대한 명확한 재천명, 독일과 여타 지역으로부터 미군 부대를 철수하려는 결정의 철회, 유럽과 아시아 주둔 미군 부대를 위한 장기적이고 균형적인 비용 분담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 등이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과 억제와 방위능력 보강을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여기에는 유럽·아시아에서의 재래식 방위 능력 제고, 미사일 방어 능력의 추가 배치, 그리고 필요시 동맹국들과의 협의 하에 전진배치 체계와 공약의 적절성 보장을 위한 비전략 핵무기 태세의 재검토 등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과 관련, “북한은 50~7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이미 한국 전역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기지까지 타격할 수 있는 1,000 발 이상의 단거리와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 내에선 이 같은 다자기구가 만들어질 경우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기존의 양자 협의체인 한미 확장억제정책협의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이번 보고서는 중국과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는 가운데 핵 위협을 받고 있는 당사국들간 긴밀한 핵 협력의 필요성을 환기시킨 제안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미국 안보전문가들도 이 같은 제안의 방향성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 안보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중국을 의식하는 정치적 제약성으로 현실화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한국은 중국을 의식하는 정치적 제약성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선을 그었다. 아인혼 전 특보는 과거 한국에서 순수 방어용 고고도미사일 방어첵)(THAAD,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을 놓고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한 사실을 예로 꼽았다. 따라서 이 같은 한국 정치의 정치적 한계로 다자적 차원의 핵기획그룹의 창설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19년 한국과 일본에 핵무기 공유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미 국방대학 보고서 내용과 관련, “나토식 핵 공유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한 바 있다. 아인혼 전 특보는 대안으로 다자구조 보다는 한미 양자적 측면에서 핵 억제력의 신뢰성을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동맹국들이 먼저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한국측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논의 과정에서 동아시아 동맹들과의 조용한 외교도 동반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가 동맹이 반대할 수 있는 의제를 먼저 나서서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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