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에 남의 묘..전기톱까지 휘두른 '분묘기지권' 갈등

유동주 기자 2021. 2. 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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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13일 이전 설치돼 20년 넘은 분묘에 한해 '분묘기지권' 인정..내 땅 가족묘도 장사법 따라 신고해야
(인천=뉴스1) 이재명 기자 = 민족 대명절 설을 앞둔 7일 오전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성묘를 하고 있다. 2021.2.7/뉴스1

2019년 8월 말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선 일명 '벌초 전기톱 사건'이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남의 집 마당에 위치한 고조할머니 분묘에 벌초를 하러 왔던 가족이 주변에 나무가 쌓여 있는 걸 항의하다 집주인과 세들어 살던 세입자 A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벌초객 가족이 분묘 주변 나무를 치우겠다며 트럭을 몰고 집 마당까지 들어오면서 주차시비로도 이어져 격분한 A씨가 창고에 보관하던 전기톱을 들고 나와 휘둘렀다. 벌초객 가족 중 B씨는 오른쪽 다리 좌골 신경과 근육이 절단되는 전치 20주의 중상을 입었다.

경찰이 살인미수로 송치했고 검찰은 특수상해로 기소했다. 항소심 끝에 A씨는 지난해 1월 특수상해 혐의로 징역 5년형에 처해졌다.

피해자 B씨 고조할머니 분묘는 조성된 지 60년도 넘어 관습법상 '분묘기지권' 요건인 20년이상을 훨씬 지난 상태였다. 마당에 남의 묘가 있던 집에 이사온 세입자 가족이 면사무소에 '무연고 산소' 신고를 하면서 벌초객 가족과 이미 갈등상황에서 있었다고 알려졌다.

땅값 오르면서 '분묘기지권' 분쟁 늘어…"내땅 남의 묘 치워버리고 싶다"
지난 2017년 1월 대법원(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김용덕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분묘설치자들을 대상으로 땅주인이 제기한 분묘철거 관련 상고 신청을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2013다17292) 20년 넘은 분묘에 대한 관습상 '분묘기지권'을 대법원이 재확인해 인정해주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던 판결이었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본인 소유 임야에 있는 6기의 분묘를 관리해 왔던 이들을 상대로 땅주인이 분묘 철거·이장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관습법상 분묘기지권 존속여부를 두고 이 판결에 이목이 집중됐었다.

최종적으로 당시 대법원이 땅주인의 청구를 기각해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은 계속 인정되고 있다. 분묘기지권은 법령에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다만 다른 사람 토지 위에 20년 이상 있던 분묘를 관리해왔다면, 묘를 수호하는 범위 내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에게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법원 판례에 의해 관습적으로 인정돼 왔다.

분묘기지권은 민법상 다른 사람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인 '지상권(地上權)'과 유사한 것으로 본다. 판례에선 ‘지상권 유사의 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불합리한 관습, 분쟁의 씨앗" vs. "조상 섬기는 윤리지키기 위한 보호책"
제주 벌초 전기톱 사건처럼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묘가 남의 집 마당에 있는 경우는 분쟁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 시골 땅값까지 상승하면서 분묘 관련 소송이 증가하는 추세다. 분묘 소송은 대체로 두 가지다.

분묘를 포함한 토지의 주인이 자신의 땅에 20년 이상 방치된 미등기 묘지에 대한 '점유취득시효'를 원인으로 소유권 이전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분묘를 상속받은 이가 20년 이상 점유했다며 '소유권 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분묘 상속인에 의한 점유취득 주장이 아직은 더 많은 상황이다.

땅주인의 '재산권 보호'가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에선 남의 땅에 무단으로 설치한 묘가 20년 이상 지나면 계속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둔갑한다는 관습법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분묘기지권 시효취득 논리는 땅주인의 재산권 행사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토지의 한계 및 장례문화의 변경(화장·수목장 등)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때 과거 관습법으로 인정하던 현재의 대법원 판례는 재검토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오랜 기간 존속한 조상 분묘의 안정성과 선조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는 재산권에 견줄 수 없다는 이유로 분묘기지권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상 섬기는 전통이 소유권에 앞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아직 땅주인의 '재산권'보다는 '분묘의 안정성'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2017년 1월 대법원(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 주심 김용덕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분묘설치자들을 대상으로 땅주인이 제기한 분묘철거 관련 상고 신청을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2013다17292) 20년 넘은 분묘에 대한 관습상 '분묘기지권'을 대법원이 재확인해 인정해주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던 판결이었다. / 사진=머니위크 임한별
'묘지 알박기' 논란도…2001년 1월13일 장사법 시행 이후 설치 분묘는 '분묘기지권 불인정'
사법부에선 전통을 중시했지만, 입법을 통한 변화는 있다. 2001년 1월13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은 신설된 묘지에 대해선 분묘기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정된 장사법 시행 이전 설치된 묘지로 20년의 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만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

따라서 만약 자신의 소유 토지에서 2001년 이전 설치된 남의 분묘를 뒤늦게 발견한 경우에는 20년의 시효완성이 되기 전에 해당 분묘의 관계자를 찾아 시효를 중단시켜야 한다.

분묘기지권을 내세워 이장에 반대하거나 이장비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은 부동산 시장에서 그간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상당수 분묘기지권은 소위 '알박기'처럼 작용되기도 한다.

일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안에 분묘가 그대로 보존돼 주거공간과 묘지가 공존하기도 한다. 해당 분묘에 권리가 있는 후손들과 아파트 건설주체와 협의가 안 된 채 사업이 진행된 경우다.

봉분이 없던 땅에 갑자기 봉분이 조성되고 그 밑에 수십년 조상이 매장돼 있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분묘기지권 주장을 못하도록 봉분을 전문적으로 없애는 작업을 하는 전문 업자들을 땅주인이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박의준 변호사(법률플랫폼 머니백)는 "개정 장사법 시행 이전 시효완성된 분묘기지권에 대해선 땅주인이 분묘 이장이나 토지 사용료를 청구할 수도 없어 논란이 돼 왔다"며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사회·문화적 기초가 여전히 중시되고 2001년 이후 새 분묘에 대해선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아 향후 분쟁사례는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성묘객/
내 땅에 모신 개인 조상묘도 맘대로 못한다…지자체 신고절차 거쳐야
2018년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에선 후보들간에 조상묘 불법조성의혹을 두고 공방이 있었다. 원희룡 지사 부친이 설치했던 가문 납골묘와 문대림 후보 모친 묘지가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성된 사실이 폭로됐다. 결국 두 건 모두 '이전명령'이 내려졌다.

원 지사 가문 납골묘의 경우엔, 지난 2016년 6월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타인 소유 임야에 조성된 조상묘를 개장한 후 봉안시설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해당 조상묘는 분묘기지권에 따라 관리된 곳이었다. 따라서 이를 납골묘로 조성하면서 개장하면 분묘기지권이 상실될 수 있어 행정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미 분묘기지권이 인정된 경우라도 납골묘로 바꿀 경우엔 지자체 신고가 필요했지만 원 지사 가족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문대림 후보는 가족 소유 토지에 모친의 묘지를 조성하면서 사설묘지 설치 신고를 하지 않았다. 장사법에 따라 자신 소유 토지에 개인 묘지를 조성하더라도 지자체장 등에게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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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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