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위안 찾고, 이름도 바꾸면 나아질까..미신에 집착하는 2030

강은영 2021. 2. 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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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철학관, 8시간 대기에도 20대 많아
유럽 등 서양에선 때 아닌 '점성술' 르네상스 
중국·홍콩 등 아시아는 '개명' 열풍 불어
"불확실성 시대, 스스로 통제하며 플라세보 효과"
역술을 통해 사주나 작명, 궁합 등 볼 수 있는 철학관들이 즐비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재취업을 준비 중인 이주영(가명·28)씨는 올초 서울 강남에서 꽤 이름난 한 역술가를 찾아갔다가 깜짝 놀랐다.

호떡집에 불난 듯 2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있다. 2030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하루에 선착순으로 15~20명만 봐주는 터라 새벽부터 줄을 서고 대기하지 않으면 철학원 안으로 들어설 수 조차 없었다. 그것도 당일 상담이 아니라 앞으로 예약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대기줄이었다. 상담을 위한 시간도 1인당 딱 15분.

이씨는 "올해 취업 문제 등 답답한 마음에 철학원을 찾았다가 스트레스만 받고 왔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서 일했던 이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결국 퇴사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나 처럼 앞날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이씨가 찾아갔다는 역술가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블로그 등에 관련 글들이 제법 올라와 있다. 새벽 4시부터 문도 열지 않은 철학원 앞에서 줄 서거나, 8시간을 기다렸다며 '예약 팁'을 올려 놓는 등 20대 청년들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들 대부분은 취업과 학업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해답을 찾고 마음이 풀렸다는 글은 드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들 젊은 세대들은 사주나 신년운세 등 미신을 좇는 것일까.


별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서양의 젊은이들

별자리가 그려진 점성술 바퀴. 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에 역술이 있다면 서양에서는 점성술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코-스타(Co-Star)' 같은 점성술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코로나19 시대에 점성술은 르네상스 시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전염병으로 인한 두려움이 커졌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불안정 시기가 더해져 지난해 점성술 성장에 불을 지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최근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점성술과 생년월일 차트에 대한 검색은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시장전망 조사업체 IBIS월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미국의 '심리서비스' 산업(운세 및 타로카드 등 서비스 포함)의 규모는 22억달러(약 2조4,500억원)였는데, 지난해에는 이 수치가 더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위기에 점성술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새로운 탈출구가 되고 있다.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캐롤라인 콜드스테인(29)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어떤 의미와 패턴, 그 탈출구를 찾는 과정에서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점성술은 본질적으로 행성의 주기를 따르기 때문에 과거에 비슷한 패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고, 선례가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확실히 나에게 위안을 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는 최근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60% 이상이 '뉴에이지(영적 사상, 점성술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 사상'을 믿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더 많은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

타로카드로 점을 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점성술가 크리스 브렌난은 "점성술은 과학, 종교 등과 함께 발전해왔다"면서 "점성술은 때때로 둘 사이의 다리를 찾거나 둘 중 하나에서 답을 완전히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용한 중간 지대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점성술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마이 온라인 테라피'의 공동 창업자인 엘레나 투로니는 "불확실성은 인간 경험의 일부"라며 "인생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으며, 코로나19와 봉쇄(조치) 사이에서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불확실성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점성술 관련 산업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점성술사인 허니 아스트로는 지난해 4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당시 고객의 방문 신청이 폭증했으며 "한 달에 최대 80명이 찾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미 로스앤젤레스(LA)에 점성술과 관련한 모바일 앱 회사를 차린 점성술가 체니 니콜라스도 현재 연봉이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BBC "아시아 청년들, 새 이름으로 미래 바꾸고 싶어해"

서울 종로의 한 작명소에서 중년 여성이 상담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치명적이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 등 코로나는 취업과 학업, 재정 등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최근 아시아 지역 젊은이들이 이름을 바꾸는 '개명(改名) 열풍'이 일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들은 불안한 시기에 새로운 이름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역술가들에게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케팅 직종에서 일하던 홍콩인 맨디 펑(29)은 지난해 4월 회사 상사로부터 '줌'으로 호출을 받았다. 해고 통보를 받은 그는 불운을 떨쳐버리고 자신 앞에 펼쳐질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찾아간 역술가는 행운을 북돋우기 위해 이름에 '추가'를 의미하는 한자로 바꾸라고 충고했다.

홍콩의 온유 입(23)은 가족의 권유로 개명했다. 그는 풍수를 믿는 가족의 조언에 따라 대인 관계에서 행운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를 더해 '슌옌'이 됐다. 또 법적으로 바꾼 이름을 등록하는데 약 1만5,000홍콩달러(약 215만원)를 썼다.

하지만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무뚝뚝했다"며 "이름을 바꾼 뒤로는 사람들로부터 말씨가 부드러워졌다 등의 말을 들으면서 사교성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광둥 출신 친 푸킨(24)은 실제로 이름을 바꾸고 건강을 되찾은 경험이 있다. 네살 때 이름에 금속을 의미하는 한자를 추가했다가 몇 달 동안 호흡기 질환을 앓다 쓰러졌고, 여러 명의 의사를 찾아갔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름을 바꾼 후 건강을 되찾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병은 불가사의하게 사라졌고, 어머니는 이름을 바꾼 것이 내가 회복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고 전했다.


불확실한 시대를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 커져

홍콩의 점집 골목. 게티이미지뱅크

홍콩은 최근 5년 동안 개명 신청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2019년 1,600명이 개명을 신청했고, 지난해는 9월까지 1,250여명이 이름을 바꾸겠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9월은 홍콩이 16년 만에 가장 높은 계절적 실업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법원에 따르면 2016년 15만여명이 개명을 신청했는데, 이 시기는 국내에서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던 때다.

개명 같은 미신들이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강력한 '플라세보(placebo)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옌 싱가포르국립대 부교수는 "사람들은 불확실성 시기에 통제 능력을 갖기를 갈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명은 마치 이름을 바꿈으로써 한 사건의 과정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즉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이런 통제 의식이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미신에 기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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