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가 2021년에 프랑스에 간다면..사무실 혼밥?
[경향신문]
미국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는 미국 여성 에밀리가 프랑스 파리의 회사에서 일하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직장 동료인 프랑스인 루크는 에밀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지만, 프랑스인들은 살기 위해 일해.” 일 중심으로 사는 미국과 삶 중심인 사는 프랑스 문화의 차이를 보여준 말입니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으로 점심 식사 문화가 등장합니다. 간단히 샌드위치 등을 먹는 점심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극중 프랑스인들은 볕이 좋은 카페에서 장시간 유쾌하게 수다를 떨며 점심식사를 즐깁니다. 에밀리는 자신만 빼고 점심식사를 즐기는 동료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죠.
에밀리가 2021년에 프랑스를 간다면 이런 에피소드는 더이상 등장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가 최근 사무실 책상에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기 때문입니다. 밥 먹는 방식 때문에 왜 법까지 바꿔야 할까 싶지만, 이게 다 전염병 때문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느리고 즐겁게 낭만을 즐기던 ‘프렌치 테이블’ 문화까지 달라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는 지난 2일(현지시간) “노동부가 회사 사무실 책상에서 식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피가로는 “엘라자베스 본 노동장관이 최근 원격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결정했다”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사람당 2m 간격을 유지하는 조항도 추가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피가로는 이 내용과 함께 한 여성이 사무실 책상에서 노트북을 앞에 두고 도시락을 먹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는데요. 한 손에 포크를 들고 눈으로는 노트북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표정이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진이었습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도 책상 노트북 앞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샐러드를 먹는 여성의 사진과 함께 “프랑스에서 책상 식사가 허용된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에선 법적으로 사무실 책상에서 식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식사를 허용할 경우 충분한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노동법에 따라 사무실 책상에서 밥을 먹은 사실이 적발되면 회사는 과태료를 물고, 직원은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과 삶은 분리돼야 하고, 식탁에서의 즐거움은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는 프랑스 특유의 문화가 담겨있는 조항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프랑스의 이런 문화까지도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1, 2차 봉쇄 기간을 거치며 프랑스에선 이미 여러 명이 모여 장시간 대화를 하며 식사하는 장면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주요 카페와 레스토랑은 ‘테이크아웃’ 위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거의 전 지역에서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필수 목적 외의 외출을 금하는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7일 “식탁이 성스러운 공간인 프랑스인들의 식습관은 이미 전염병때문에 많은 변화를 강요당했고, 이제 일과 삶의 균형에도 타격을 입고 있다”며 노동부의 결정이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파리에 사는 아그네스 두틴은 뉴욕타임스에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선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책상에서 먹는 건 재앙”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코로나19 누적확진자 수는 9일 기준으로 334만명이 넘었고, 누적 사망자 수는 8만명에 육박했습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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