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한·조승우·홍광호'.. 한번만 보기 어려운 돈키호테

박성준 2021. 2. 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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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잘 차려 입은 운전사가 모는 클래식 카를 탄 기분이 이럴까.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를 관람하는 경험을 묘사하자면 한없이 편안하면서도 사무치는 그리움에 가깝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노스탤지어(鄕愁)를 떠올릴 수도 있고, 도라지 위스키 맛이 나는 낭만을 떠올릴 법도 하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돌아왔다. 1965년 미국 뉴욕 초연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2005년 첫 무대 이후 벌써 아홉 번째다. 연식이 오래된 작품 답게 무대 풍경부터 요즘 뮤지컬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마치 오페라, 발레처럼 제대로 된 느낌을 주는 서곡이 한참 울려 퍼진 후 배우들이 암전 상태 무대에 등장한 채 공연이 시작된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야 한 둘이 아닐테지만 ‘맨오브라만차’는 원래 미국 CBS방송국 드라마로 처음 만들어진 작품이다. 내용이 좋아 연극을 거쳐 뮤지컬로 진화했다. 그만큼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여러모로 연극에 가까운 뮤지컬이다.

무대는 스페인 한 지하감옥에 새로운 죄수 둘이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세무관리 세르반테스와 그의 시종이다. 거친 죄수들 텃세에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쓴 소설로 자신의 인생을 변론하겠다며 죄수들이 배우인 즉흥극판을 벌인다. 죄수들을 출연시키는 배역 선정이 끝난 후 세르반테스가 수염을 붙이고 엉성한 갑옷을 입으면 이야기는 비로소 라만차에 살고있는 늙은 신사 알론조가 자신을 ‘돈키호테’라는 기사로 철석같이 믿고 벌이는 소동으로 이어진다.

극 흐름은 완만하다. 기사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거나, 이발사의 놋쇠대야를 황금투구로 믿고 머리에 쓴 채 마을 불량배들과 싸우는 정도가 큰 사건이다. 느슨한 무대는 달빛 아래 정원에서 ‘돈키호테’와 ‘레이디 둘시네아’가 대화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둘시네아는 실은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사는 알돈자. 그런데도 자신을 굳건하게 귀부인으로 믿는 돈키호테에게 알돈자는 “원하는게 뭐냐”따져 묻자 돈키호테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대를 구하는 일이오. … 이기고 짐은 중요하지 않소.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를 뿐.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본분 아니, 특권이요.”

한 순간이나마 괴상한 행색의 반 미치광이 노인은 자신의 진정성으로 기사도를 지닌 사나이가 되고, 이에 감응한 여관 작부(酌婦)는 귀부인으로 거듭나는 마법이 일어난다. 이어 나오는 노래는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 숱한 가수가 부르고 명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도 불렀던,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 특별한 생명력을 부어 넣은 명곡이다.

‘기사도’라는 이상(理想)을 향한 돈키호테의 답 없는 동경은 결국 그를 힘없는 늙은이로 돌려놓으려는 조카사위의 거울 치료 요법으로 깨진다. 지하감옥에서 세르반테스가 펼쳐 보인 자신의 원고도 여기까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르반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도 있는 종교재판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돈키호테에 마음을 뺏긴 죄수들을 보고 용기를 얻은 세르반테스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다시 한번 나오는 결말을 선사하며 어깨를 펴고 종교재판장으로 향한다.

‘맨오브라만차’는 다른 어느 뮤지컬보다 주인공 비중이 크며 그만큼 고난도 연기를 요구한다. 젊은 세르반테스와 늙은 돈키호테, 알론조를 오가야한다. 연기호흡을 조절하면서 여백이 있는 연기를 통해 시골 늙은이를 일순간 진정한 기사로 빛나게 만들어야한다. 그런만큼 제작사는 ‘류정한·조승우·홍광호’라는 현재 뮤지컬 무대에서 정점에 도달한 남자 배우들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탁월한 가창력과 관록의 류정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돈키호테’인 조승우, 그리고 폭발적 가창력과 익살스러운 연기력이 매력인 홍광호. 한번만 보기 어려운 돈키호테들이다. 서울 샤롯데 씨어터에서 3월 1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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