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조 원 늘렸다는데..체감 못 하는 저출산·성인지 예산 왜?
●2021년 저출산 예산 '46조 원' 규모
'46조 원'. 올 한해 저출산 예산 총액입니다. 지난해보다 6조 원가량 증가했습니다.
2006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후, 저출산 예산은 모두 200조 원 넘게 투입됐습니다. 저출산 예산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21.1% 증가했습니다.
저출산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데, 정작 주변에서 '아이 키우는데 저출산 예산의 덕을 봤다'는 가정은 찾기 어렵습니다.
6살 아이를 키우는 김 모 씨는 "어린이집에 길어야 오후 5시 까지만 맡길 수 있어 정부에서 운영하는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보려고 했는데 대기가 1년이 걸리고 차례가 오지 않았다"며 "지원 제도가 있다고는 하는 데 이용해 본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하교 시간이 당겨져 더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김 씨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 돌봄교실이 있는데 신청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며 "주변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다시 육아 휴직을 하거나 일을 그만두시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초등돌봄교실 확충 예산은 동결, 영유아 보육료 예산은 감소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데 가정에서 겪는 '돌봄 공백'은 왜 그대로일까요?
김 씨가 이야기한 '초등돌봄교실 확충'에 대한 올해 예산을 확인해봤습니다. 210억 원, 지난해 대비 한 푼도 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직접 지원' 사업으로 꼽히는 영유아 보육료 등의 예산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출산 대책 가운데 어떤 사업의 예산이 늘었다는 것일까요?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지난 5년 치 저출산 예산을 분석해봤습니다. 가장 많이 예산이 증가한 사업은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으로 5년 새 8배 넘게 증가해 지난해에 약 18조 원이 편성됐습니다.
지난해만 봐도 저출산 예산의 44.8%를 차지합니다. 전문가들이 저출산 '간접 지원'으로 꼽는 주거 대책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예산이 늘어난 것입니다.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예산은 청년이나 신혼부부가 주택을 살 때의 자금이나 전세금을 대출해 주는 사업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돈을 꿔주었다 다시 갚아야 하는 자본 예산입니다. 늘어났다는 저출산 예산이 모두 저출산에 직접 사용되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이런 현실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 위원회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저출산 예산 방향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계속됐지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2018년 처음 1명대로 떨어진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0.9명에도 못미쳤습니다.
국회 예결특위 (2016/08/26)
장제원 당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1차 기본계획, 2차 기본계획, 3차 기본계획을 보게 되면 늘 우리 정부에서 80조, 110조를 썼다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실질적인 내용을 보게 되면 이게 저출산 관련된 예산인지 의문이 드는 예산들이 있는 겁니다
(중략) 학교예술강사 파견 지원 사업으로 3100억 또 635억, 총 한 3700억을 쓰셨는데 이게 저출산 관련된 예산입니까?... CCTV 설치 3500억 정도 했지요? 이게 저출산 사업입니까?
국회 복지위 (2018/08/21)
윤종필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선진국의 출산율이 올라간 선례를 주목해서 우리도 한번 가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대한 예산 사용하면서 검증되지도 않고 효과 없는 정책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저출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명확히 해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에는 '저출산 예산'이라는 용어는 없고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가족 정책 예산'으로 부른다"며 "'가족 정책 예산'으로 분류해보면 OECD 평균보다도 낮은데,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홍보를 하다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만 낳은 상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국회 예정처 "11개 성인지 사업 부적절 분류"
올해 35조 넘게 편성된 '성인지 예산'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된 사업 가운데 11개가 부적절하게 분류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산 규모로는 6조 5천 억 원이 넘습니다. '과학영재양성', '한국농수산대학교육 운영', '아동수당 지급'과 같은 사업들이 모두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됐습니다.
이 외에도 16개 사업이 사업 목표가 적절하지 않다, 또 정작 꼭 들어갈 사업이 성인지 예산 사업에서 빠졌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매년 여성가족부에 성인지 사업을 무엇을 진행했는지 자료를 제출해야 해서, 사업을 추려서 넣는 경우가 있다"며 "성인지 예산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보육·여성 예산 편성 시 당사자 의견 반영돼야"
사업의 질보다 규모와 건수에 치중해 온 결과라는 지적이 계속되자, 정부는 올해부터 성인지 예·결산 협의회와 전문평가위원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평가를 넘어 예산 편성 과정부터 수혜자들이 참여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보육이나 여성들의 삶과 관련된 부분에 예산을 편성할 때는 당사자들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지금 국민 참여 예산이라는 게 있지만, 매우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정말 예산이 효과적으로 내 삶을 개선되는 데 쓰인다는 변화를 느낄 수 있으려면 지금처럼 공무원들이 주도해서 예산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매년 막대한 규모로 늘어나는 '저출산' '성인지' 예산. 꼭 필요한 곳에 편성됐고 쓰이게 될지, 오늘(12일) 밤 KBS 뉴스9에서 전해드립니다.
김성수 기자 (ss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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