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넥타이 잘 매지 않는 이유는?

이완 2021. 2. 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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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정치반숙][정치바] 이완의 정치반숙
"넥타이뿐 아니라 '재킷 벗고 할까요'
일하기 편안한 분위기 만들기 선호"
국무회의 등 토론 활성화 입 모으기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넥타이 맸던
작년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축사
세월호 5주기엔 '노란 넥타이' 국외 순방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 땐 각 정당 상징
파랑, 분홍, 노랑, 주황 조화 이룬 넥타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거의 매일 대통령 관련 기사를 씁니다. 청와대 안팎 공개된 일정에 대해 기사를 쓰기 때문에, 대통령 사진도 거의 매일 확인합니다. 그런데 지난 5일 전남 신안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 사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진을 보니 문 대통령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넥타이를 매지 않는 차림이었습니다. 보통 청와대 내에서 회의를 할 때는 이른바 ‘노타이’ 차림을 자주 보기 때문에 당연하게 넘겼는데, 이날 따라 생각지 못했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5일 전남 신안 임자2대교에서 열린 해상풍력 투자협력식에서 발언을 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정치인에게 넥타이는 때론 대중에게 보여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브랜드의 푸른색 정장 차림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취임식장에 섰습니다. 푸른색은 미국 민주당의 상징 색깔입니다.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한 뒤 ‘미국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넥타이를 즐겨 매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다음 날 행사 성격에 맞춰 넥타이를 골라 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 2019년 10월 일본을 찾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만났었는데, 당시 맨 주황색 넥타이에 대해 ‘따뜻함과 수확’을 상징하는 색깔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잘 풀어보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5일 청와대에서 \

문 대통령도 의미가 담긴 넥타이를 맬 때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 축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습니다. 이 넥타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 함께 두 손을 맞자고 만세를 부를 때 착용했던 것이었습니다. 남북관계가 다시 어려워진 상황에서 20년 전 마음을 기억해보자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4월 16일에는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국외 순방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노란색 리본 배지 대신 넥타이로 마음을 같이 한 것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2019년 4월17일 투르크메니스탄 공항에 도착한 모습. 전날 찬 노란색 넥타이가 보인다. 청와대 제공

사실 문 대통령은 넥타이를 즐겨 매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올해 들어 문 대통령이 참석한 일정 가운데 국제회의 연설, 외국 정상과의 화상회의 등을 제외하면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청와대 내에서 하는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는 이른바 ‘노타이’ 차림으로 하는 게 이제는 당연할 정도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전부터 넥타이를 풀고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때부터 곁에서 본 관계자는 “넥타이뿐만 아니라 만나면 ‘재킷을 벗고 할까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실 정도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정치인들이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옆방에 있는 국회의원에게 보고하러 갈 때도 보좌진들은 넥타이 차림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청와대 사람들도 넥타이를 매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적인 공직사회지만 일반 기업처럼 캐주얼하게 입고 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단순히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 등 회의에서 토론이 활성화되었다고 입을 모으기도 합니다. ‘넥타이 풀고 편하게 이야기하자’는 뜻이 상당한 문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가 닥친 뒤 ‘넥타이 풀고 만나자’는 의미를 지키기 어려워진 것도 있습니다.

2019년 문 대통령의 간담회 일정을 살펴보면 모두 19차례에 이릅니다. 청와대 밖으로 나가는 현장방문 간담회와 국외 순방 동포간담회 등을 제외하고 청와대 내 일정만 세어본 횟수입니다. 2019년 1월15일 기업인과 대화를 시작으로 종교지도자, 사회 원로 등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 간담회 일정은 대략 14차례 정도에 그쳤습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현장을 방문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횟수까지 포함했지만 2019년보다 일정이 적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이 강화된 뒤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대통령으로서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감염의 위험도 있어 대통령이 자주 외부 인사들을 접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가 재확산된) 8·15를 전후해 간담회를 많이 진행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중요한 정치적인 소통인데 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공개된 간담회도 축소되는 상황인데 대통령 비공개 일정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방역수칙대로 설 연휴 가족모임도 안 하겠다는 문 대통령이 외부 인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소규모 간담회를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7월 15일 제21대 국회 개원 연설 때 각 정당의 상징인 파랑, 분홍, 노랑, 주황색이 조화롭게 디자인된 넥타이를 차고 있었다. 청와대 제공

이제, 넥타이 이야기를 꺼낸 진짜 이유를 말해 보려 합니다. 청와대는 고립된 곳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밥을 먹거나, 버스를 타거나, 시장에 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주위엔 청와대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입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처럼 멀리 부산에서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직접 찾아온 이들의 목소리도 직접 듣기 힘듭니다. 우선 코로나19가 빨리 진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뜻대로 ‘넥타이를 풀고 편하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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