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아빠, 5인 이상 모이면 안되잖아요"..첫날은 며느리만, 순번제 방문도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아빠, 5인 이상 모이면 안되잖아요."
광주에 사는 김모씨(44).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의 한 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설 명절 고향집을 찾을지를 고민하다 딸 아이의 의견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딸까지 포함하면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 위반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 때문에 1박은 못하고 당일 일정으로라도 시골에 다녀올까 싶어 딸에게 물었더니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며 "딸에게 규정을 위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향집 방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면서 민족 최대 명절인 설 풍속도가 확 바뀌었다.
정부가 설 연휴 기간 가족끼리라도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고강도 코로나19 방역규제를 내놓으며 시골 마을은 한산해졌다. 직계가족이더라도 사는 곳이 다를 경우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다 보니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풍경도 사라졌다.
이 때문에 웃픈(웃기면서 슬픈) 사연도 많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 사는 김모씨(50)는 "아버지가 삐치셨다"고 했다.
김씨는 3남매 중 장남이다. 3남매 모두 공직에 있다. 김씨는 서기관인 4급 공무원이고, 둘째 남동생은 육군 중령이다. 막내 여동생은 구청 공무원이다.
김씨는 "공무원은 특히 코로나19 방역규정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다 보니 이번 설에 못 내려간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내심 서운하셨던 것 같다"며 "'나도 안 볼란다'라며 삐치셨다"고 웃었다.
광산구 첨단동에 사는 박모씨(52)는 아버지가 '순번제'를 선택했다고 했다. 박씨도 3남매다. 위로 누나,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박씨는 "방역수칙 지키자고 첫 날은 며느리 2명, 둘째날은 아들 두 명씩만 오라고 하셨다"며 "교회 다니는 큰누나는 어차피 절도 안 할 것이니 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른 실제 현장은 어떤 풍경일까. 연휴 첫날인 11일 취재차량을 타고 전남 장흥으로 향했다. 장흥은 광주전남 지자체 중 유일하게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코스는 광주에서 전남 나주 남평읍, 세지면, 영암 금정면, 장흥 유치면을 지나 장흥읍을 거쳐 정남진 회진까지로 잡았다.
광주에서 회진까지 거리는 약 100㎞다. 이 구간을 달리는 동안 예전 명절 같으면 마을 입구마다 걸렸을 '고향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은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엄마·아부지 코로나 무서운께 이번 설날은 안내려가요, 오지도 마소', '아들아! 딸아! 이번 설에 오지 마라! 코로나 안 걸리게 우리도 안갈란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도로도 한산했다. 귀성객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앞뒤로 서너 대 정도 보이긴 했지만 막히거나 정체되는 곳은 없었다. 서행하는 곳도 없었다.
1시간여 만에 장흥에 도착해 토요시장을 찾았다. 토요시장은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 등 '한우 삼합'이 유명하다. 평상시에도 타지역 손님과 지역 주민들로 붐비는 곳이다.
설 연휴 첫날. 예전 같으면 한복을 차려 입고 선물꾸러미를 든 귀성객들도 북적였을 토요시장도 인적이 드물었다.
토요시장에서 '부부한우'를 운영하는 김모씨(51)는 "설 명절 특수는 사라졌다. 지금까지 명절 연휴에 이렇게 손님이 없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다른 때와 비교하면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김씨는 "올해 안에는 코로나가 끝날까요?"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 남쪽인 정남진 회진까지 차를 달렸다. 회진 초입에 있는 이순신 장군 회령포에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회진도 한산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모씨(71.여)는 "아들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 보고 싶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못 오게 했다"며 "손녀딸이 영상통화로 '코로나 잠잠해지면 내려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도 고향을 찾은 이들도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익명을 요구한 A씨(47)는 "건강이 좋지 않은 팔순의 어머니 혼자 계시다 보니 가족 4명이 시골집을 찾았다"며 "어머니만 뵙고 가급적 다른 모임이나 접촉은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주 남평에서 왔다는 이모씨(51)는 "5인 이상 모임이 제한되다 보니 아이들은 놔두고 부부만 고향에 왔다"며 "고향을 찾는 설렘이나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아쉬워했다.
함께 있던 부인 박모씨(49)는 "친정에도 당일 내려갔다 올라와야 할 것 같다"며 "코로나 때문에 설 명절이 명절 같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 백신 접종과 함께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코로나19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옛 명절 풍속을 찾을 수 있을까.
nofatejb@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한달 120 줄게, 밥 먹고 즐기자"…편의점 딸뻘 알바생에 조건만남 제안
- 지퍼 열면 쇄골 노출 'For You♡'…"이상한 옷인가?" 특수제작한 이유에 '반전'
- "순하고 착했었는데…" 양광준과 1년 동고동락한 육사 후배 '경악'
- 숙소 문 열었더니 '성큼'…더보이즈 선우, 사생팬에 폭행당했다
- 미사포 쓰고 두 딸과 함께, 명동성당 강단 선 김태희…"항상 행복? 결코"
- "로또 1등 당첨돼 15억 아파트 샀는데…아내·처형이 다 날렸다"
- "자수합니다"던 김나정, 실제 필로폰 양성 반응→불구속 입건(종합)
- '나솔' 10기 정숙 "가슴 원래 커, 줄여서 이 정도…엄마는 H컵" 폭탄발언
- '55세' 엄정화, 나이 잊은 동안 미모…명품 각선미까지 [N샷]
- "'누나 내년 35세 노산, 난 놀 때'…두 살 연하 예비신랑, 유세 떨어 파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