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교동도 대룡마을의 '제비 명당'[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2021. 2. 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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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대룡마을을 찾는 까닭은
○흥부전에 나타난 '놀부 흉당'과 '흥부 명당'
화개사와 소나무: 화개산 자락에 자리잡은 화개사는 수령 200년의 소나무로 유명하다. 고려의 충신 목은 이색이 전국 8대 명산중 하나로 화개산을 꼽을 정도로 산과 바다 경치가 아름답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봄이다. 덩달아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마을(교동면 대룡리) 시장 상인들의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제비들이 찾아와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손질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제비들 덕분에 관광 명소로 이름난 이곳에서는 당연히 제비가 ‘복을 가져다주는’ 길조(吉鳥)로 대접받는다.

대룡마을은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소인 ‘교동제비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룡마을의 역사와 마을 상징인 제비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형성된 대룡시장에는 둥지거리, 제비거리, 와글와글거리 등 제비를 연상시키는 골목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이 골목거리를 따라 1960~70년대 장면들이 추억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계란을 동동 띄운 쌍화차를 파는 다방,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 90세 넘은 노인이 수 십 년째 운영해온 약방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늘어선 점포 처마 밑으로 제비 둥지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제비 둥지를 보살피고 있는 대룡시장 상인. 관광객들이 제비를 근접 촬영하면 스트레스를 받은 어미가 새끼를 내다버린다면서 주의를 당부한다.
이 마을이 제비로 유명해진 데는 사연이 있다. 마을 중심 상권인 대룡시장은 6·25전쟁 직후 황해도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신해온 사람들의 근거지가 됐다. 불과 3km 안팎 거리의 두 지역이 남북 분단으로 왕래가 끊겨버리자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연백 출신들은 고향의 연백시장을 본 따 대룡시장을 지금과 같은 골목시장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대룡시장은 이후 60여 년간 교동도 경제 발전의 중심축을 이뤄왔다.

한편으로 연백 출신 주민들은 해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제비들에게 특별한 정서적 공감대를 느꼈다. 그래서 고향으로 가고 싶은 실향민들의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 주는 제비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펴주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대룡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제비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대룡마을은 강화도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교동대교가 2014년 개통된 이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만 해도 단체 관광버스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다. 평일에도 옛 전통시장의 향수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제비가 복을 가져다주는 길조라는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다는 게 마을사람들의 얘기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적극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온 제비가 대룡마을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으로 보답을 한 셈이다. 흥부전의 제비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 ‘흥보가’에 숨겨진 제비 명당

뚱이호떡 집의 제비 둥지.

제비가 재물과 부귀를 안겨주는 새라는 인식은 풍수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판소리 ‘흥보가(신재효본)’는 명당과 제비 이야기를 한바탕 흥미롭게 펼친다. 놀보(부) 형의 집에서 쫓겨난 흥보(부)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불쑥 나타난 시주승이 골라준 집터에 움막을 짓고 살게 된다. 시주승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이 가까이 있음)를 이룬 이 터에서 살면 가세(家勢)가 속히 일어나고 자손이 부귀해진다는 말을 남겼다. 이듬해 봄,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가 흥보의 움막에도 찾아든다. 흥보는 튼튼하게 잘 지은 부잣집을 마다하고 자신의 집 허름한 처마 안에다 진흙으로 둥지를 튼 제비 부부를 반갑게 맞이한다.

여기에는 제비가 아무데나 집을 짓지 않는다는 명당 논리가 숨어 있다. 사람친화적인 조류인 제비는 알을 많이 낳을 수 있고 새끼를 키우는 데 최적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둥지를 튼다. 바로 그런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명당이다. 제비가 당연히 흥보의 움막을 선택한 배경이다.

흥보네 집에 제비새끼를 해친 구렁이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구렁이 역시 좋은 기운을 갖고 있는 터에서 머문다. 우리나라 설화에는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신인 ‘업신(재물신)’으로 구렁이, 족제비, 두꺼비 등이 등장한다. 이런 업신이 집에 들어오면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상 이런 동물들이 찾아드는 곳은 명당 터이고, 또 이런 터에서 사는 사람들이 발복(發福)할 기회가 많다는 게 풍수적 시각이다.

동물과 명당 이야기는 외국 설화에서도 발견된다. 티베트 민담(참바와 쩨링)은 흥부전의 줄거리와도 매우 비슷한데, 제비 대신 참새가 등장한다. 불가리아 민담에는 곰이 사는 집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곰 덕분에 부자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 동물을 통한 명당 구득(求得)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제비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 받침대를 받쳐둔 상점 상인의 마음씨가 보인다.
한편으로 흥부의 집과 대비되는 게 놀부의 집이다. 놀부는 흥부가 제비 덕분에 부자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집에다가도 제비를 키운다. 그러나 놀부집의 제비는 둥지에서 알을 낳았지만 곪아버려 한 마리밖에 부화되지 못했다. 놀부 집의 터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구렁이도 찾아오지 않는 집이다 보니 놀부는 스스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기까지 한다. 터가 흉하면 사람의 심성까지도 더욱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풍수 논리가 이야기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명당형 식당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평일 한산한 시각에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대룡시장.
제비들이 찾아오는 대룡마을은 풍수적으로 어떨까. 대룡마을의 시장통은 제비들이 살기에 우호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질펀한 흙으로 둥지를 만들 수 있는 드넓은 농지 벌판과 큰 저수지가 인근에 갖춰져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위협적인 맹금류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대룡시장 입구
게다가 대룡시장 일대가 제비들이 선호하는 명당 형국을 이루고 있다. 교동도의 주산인 화개산(260m) 자락 아래의 대룡시장은 땅 기운을 받아 지기(地氣)가 널따랗게 펼쳐져 있다. 화개산은 정상이 솥뚜껑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예부터 솥이나 솥뚜껑은 부와 재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역사적으로도 화개산은 고려 때 이미 주목받은 곳이다. 화개산 자락에 자리 잡은 화개사는 고려 때 창건한 절로, 1341년 고려 신하로서의 절개를 끝까지 지킨 목은 이색이 이곳에서 머문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12년(1286) 안향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최초로 모신 곳도 바로 화개산자락의 교동향교다. 우리나라 최초로 향교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곳이 바로 여기다.

대룡마을을 소개하는 교동제비집
화개산 기운을 직접 받고 있는 대룡시장 곳곳에는 제비들이 사이좋게 집을 지어놓고 있다. 시장 상인들에 의하면 제비들이 철마다 떼를 지어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일반 제비와 함께 보기가 힘들다는 귀제비도 있다고 한다.
대룡시장 터의 고기집: 명당 혈에 자리 잡은 대룡시장 내 한 정육점. 객지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와 고기를 살 정도로 소문난 곳이다.
대룡 시장에서도 가장 중심의 명당 혈에 자리 잡은 한 정육점은 한산한 평일임에도 손님들을 줄을 서서 생고기를 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상점 입구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가게’라는 간판도 붙어 있는데, 고기 맛이 남다르다는 소문 때문에 외지에서 일부로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건물 개조로 제비들이 보이지 않지만 이곳 역시 제비들의 훌륭한 집터였다고 한다.
대룡마을을 상징하는 제비 조각상
대개 명당 터에 자리 잡은 식당은 손님들이 들끓는다. 이런 가게는 음식 맛이 좋다고 소문나 입구 바깥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풍수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좋은 터의 기운은 음식 맛에 영향을 미친다. 명당 터의 물맛이 좋은 것도 물이 터의 기운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당 터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이 편안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그럽고 친절해진다. 주인과 음식이 좋으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마련이다. 바로 그런 곳이 제비들에게도 새끼를 키우기에 좋은 명당인 것이다.

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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