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교동도 대룡마을의 '제비 명당'[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흥부전에 나타난 '놀부 흉당'과 '흥부 명당'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봄이다. 덩달아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마을(교동면 대룡리) 시장 상인들의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제비들이 찾아와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손질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제비들 덕분에 관광 명소로 이름난 이곳에서는 당연히 제비가 ‘복을 가져다주는’ 길조(吉鳥)로 대접받는다.
대룡마을은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소인 ‘교동제비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룡마을의 역사와 마을 상징인 제비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형성된 대룡시장에는 둥지거리, 제비거리, 와글와글거리 등 제비를 연상시키는 골목 이름들이 눈길을 끈다. 이 골목거리를 따라 1960~70년대 장면들이 추억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계란을 동동 띄운 쌍화차를 파는 다방,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 90세 넘은 노인이 수 십 년째 운영해온 약방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늘어선 점포 처마 밑으로 제비 둥지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 연백 출신 주민들은 해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제비들에게 특별한 정서적 공감대를 느꼈다. 그래서 고향으로 가고 싶은 실향민들의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 주는 제비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펴주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대룡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제비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대룡마을은 강화도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교동대교가 2014년 개통된 이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만 해도 단체 관광버스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다. 평일에도 옛 전통시장의 향수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제비가 복을 가져다주는 길조라는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다는 게 마을사람들의 얘기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적극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온 제비가 대룡마을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으로 보답을 한 셈이다. 흥부전의 제비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 ‘흥보가’에 숨겨진 제비 명당
제비가 재물과 부귀를 안겨주는 새라는 인식은 풍수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판소리 ‘흥보가(신재효본)’는 명당과 제비 이야기를 한바탕 흥미롭게 펼친다. 놀보(부) 형의 집에서 쫓겨난 흥보(부)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불쑥 나타난 시주승이 골라준 집터에 움막을 짓고 살게 된다. 시주승은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이 가까이 있음)를 이룬 이 터에서 살면 가세(家勢)가 속히 일어나고 자손이 부귀해진다는 말을 남겼다. 이듬해 봄,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가 흥보의 움막에도 찾아든다. 흥보는 튼튼하게 잘 지은 부잣집을 마다하고 자신의 집 허름한 처마 안에다 진흙으로 둥지를 튼 제비 부부를 반갑게 맞이한다.
여기에는 제비가 아무데나 집을 짓지 않는다는 명당 논리가 숨어 있다. 사람친화적인 조류인 제비는 알을 많이 낳을 수 있고 새끼를 키우는 데 최적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둥지를 튼다. 바로 그런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명당이다. 제비가 당연히 흥보의 움막을 선택한 배경이다.
흥보네 집에 제비새끼를 해친 구렁이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구렁이 역시 좋은 기운을 갖고 있는 터에서 머문다. 우리나라 설화에는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신인 ‘업신(재물신)’으로 구렁이, 족제비, 두꺼비 등이 등장한다. 이런 업신이 집에 들어오면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사실상 이런 동물들이 찾아드는 곳은 명당 터이고, 또 이런 터에서 사는 사람들이 발복(發福)할 기회가 많다는 게 풍수적 시각이다.
동물과 명당 이야기는 외국 설화에서도 발견된다. 티베트 민담(참바와 쩨링)은 흥부전의 줄거리와도 매우 비슷한데, 제비 대신 참새가 등장한다. 불가리아 민담에는 곰이 사는 집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곰 덕분에 부자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 동물을 통한 명당 구득(求得) 설화라고 할 수 있다.
○ 명당형 식당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역사적으로도 화개산은 고려 때 이미 주목받은 곳이다. 화개산 자락에 자리 잡은 화개사는 고려 때 창건한 절로, 1341년 고려 신하로서의 절개를 끝까지 지킨 목은 이색이 이곳에서 머문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12년(1286) 안향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최초로 모신 곳도 바로 화개산자락의 교동향교다. 우리나라 최초로 향교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곳이 바로 여기다.
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호히 쳐갈겨야” 김정은, 올 경제계획 신랄히 비판
- ‘미스트롯2’ 김태연, 전시즌 최고점…우승 가능할까
- [속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403명…사망자 11명
- 일론 머스크, 아들 위해 도지코인 구매했다는 소식에 가격 급상승
- 이다영·이재영 학폭 논란 이후 박미희 감독 “팀 분위기 좋지 않아”
- “마음 짠해져”…경찰 아빠 모자 덮고 누운 아기 사연
- 문준용 “내 지원신청서 20여 쪽…곽상도 거짓말” 반박
- “죽은 척 했더니” 불곰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男
- “男 얼굴에 음료 뿌려라”…요구사항 실행한 배달원 논란
- “분유 토해서” 생후 2주 남아, 학대로 사망…부모 구속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