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보유자가 진정한 유권자다?
역대 가장 조용한 선거가 다가온다. 2021년 4월7일 재보궐선거다. 재보선에 대한 낮은 주목도, 정치 싫증, 선거 피로, ‘회전문 후보자’의 식상함에 코로나19 속 ‘대화 실종’까지 더해진 결과다.
당분간은 가족·친구와 모일 수 없으니, ‘정치 대목’이라는 설 명절에도 조용한 선거 분위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감정 상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지만, 여론 형성과 시민 대표 선출이라는 선거의 효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이번 설에는 만날 수 있는 몇 명하고라도 선거 이야기를 마구 나눠보자. 풍성한 ‘대화’ 상차림을 위해 명절에 만날 수 없는 가족과 친구의 마음을 <한겨레21>이 먼저 들었다. 새로 시장을 뽑는 서울과 부산에서 유권자들을 만났다.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를 모으니, 유권자의 마음이 2021년 재보선을 넘어 2022년 대선에서 어디로 향할지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하다._편집자 주
서른다섯, 결혼 2년차 ㄱ의 분노는 모두 익히 아는 바로 그 지점에서 터진다. “2020년 5월 3억5천만원 주고 서울 노량진 구석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왔어. 그때 집주인이 6억2천만원에 사라고 했어. 안 샀지. 지금은 그때 부른 값보다 1억원 올랐어!”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권자 ㄱ이 바라는 공약은, 그러므로 명확하다. “미친 듯이 오르는 집값을 잡는 것.”
“답이 없는 것 같아, 서울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경제적 주제는 언뜻 단순하고 명쾌해 보인다. 부동산. 2017년 5월 6억1천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2021년 1월 9억6천만원까지 올랐다(KB주택가격동향 기준). 모두가 집값 상승을 말했다. 거기에는 스물다섯 번 대책으로도 집값을 잡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 이번 투표의 성격은 한때 ‘정의와 적폐 청산’을 외치던 사회적인 것에서 ‘벼락 거지’가 된 내 처지를 호소하는 개인적인 것으로 바뀌어 있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전망보다, 정부가 잘못한 지난 시간에 대한 심판이 앞선다. 개인적·회고적인 선거다.
야권 후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폭망’한 정책은 24타수 무안타, 바로 부동산 정책이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틀어막았다.”(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그런데, 폭망했으며 욕구를 틀어막힌 ㄱ의 얘기는 “이번에는 처음으로 투표 자체가 하고 싶지 않아”로 흘러버린다. 그럴 만했다. 여야 후보가 서울 곳곳을 누비는 사이 서울 주택 매매가격 상승은 한층 가팔라졌다(전월 대비 0.4%, 1월 기준, 한국부동산원). 망연하게 지켜보다 이내 체념으로 맺는다. “답이 없는 것 같아, 서울은.” 역시,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좌절이다.
이쯤, 중요한 질문이 놓인다. 왜 어떤 선거는 명백하고 보편적인 분노를 조건으로 삼고도 한없이 무기력한가. 필요를 충족할 해결책은 없이 그저 유권자의 좌절로 맺는가. “유권자의 선호 형성은 한쪽에는 필요가 있고 다른 쪽에는 해결책이 있다. 해결책은 기존 정당과 언론이, 지배적 담론이라는 형태로 제시하는데 유권자에게 불충분한 정보만 제시하거나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이번 선거의 분노와 필요가 짚은 바(폭등한 집값의 정상화)는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가 될 정치의 언어는 없거나 혼란스럽다. 심판의 대상인 ‘정부 실패’는 정확히 어떤 대목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대안으로 모두가 ‘○○만 채 공급’을 말했는데 정작 중요한 ‘어떤 공급인가’는 별반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다. 추상적인 실패와 모호한 대안은 선거의 기반이 된 분노를 배반한다. 당장 집값 추가 상승의 요인이 되기에 이른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시간을 거슬러 되짚어보자.
‘집값 하락’ 대신 ‘집값 안정’이라고 한 실책
2021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기에 역점을 두었지만 결국 부동산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고 언론은 적었다. 그런데 무엇을? 정책 방향이 틀렸는지, 방향은 맞으나 세부 내용에서 실패했는지 구분해서 정확히 설명하려는 노력은 비어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이런 말들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한쪽에서 투기 수요를 조이는 척하면서 임대사업자 혜택이나 상가·법인 제외 같은 더 큰 구멍을 만들었던 실책, 공기업이 시장가격에 자극을 줄 만큼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지 않았던 실책.” 그리고 무엇보다 “집값 ‘안정’이란 표현 대신 ‘하락’ 혹은 ‘원상 복귀’가 목표라고 지속적이고 분명하게 신호를 주지 않은 실책도 있다. 부동산이 최소한 실패하지 않는 투자 대상이라는 신호를 주면 수요는 몰리고 가격은 급등한다. 적당한 상승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다양한 실패의 경로와 가능성은 지배담론에서 지워졌다. 남은 건 ‘실패’, 한 단어다. 그 결과는? 집값 잡기에 ‘실패한’ 정부가 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된) ‘아무것’이 대안이 된다.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가 특히 힘을 얻는다.
서울시 사정도 비슷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집값 하락에 효과가 있는 분양원가 공개나 반값 아파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지 않았다. 마곡지구 등 대형 택지개발지구 땅을 저렴한 아파트를 공급하는 데 쓰는 대신 대기업에 싼값에 팔았다. 이런 실패의 대목들은 잊혔다. 그저 ‘도시재생사업에 골몰하며 민간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아파트 공급을 줄였다’는 인상만 도드라지게 부각됐다. 애초 민간 재개발·재건축은 2010년대 집값이 하락한 탓에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진행을 스스로 멈췄다는 점, 그러므로 앞날의 수요를 내다보는 안정적인 공급이 민간에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은 주요한 논쟁점에서 밀렸다. 잘못 쓰인 실패의 원인은 다시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의 근거가 됐다.
욕망 그대로의 시세는 계속 오름세
부동산 규제 완화가 대안으로 떠오를 조짐은 2020년 하반기부터 보였다. ‘공급’이라는 단어가 모호한 형태로 정책에 자리잡은 탓이 컸다. 집값을 끌어올리는 공급도, 집값을 내리는 공급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공급’인지 구체적으로 짚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공급은 집값 하락과 별 상관이 없다.(제1323호 ‘정부의 착각, 공급만으로 집값 잡히지 않는다’)
핵심은 물량이 아니다. 조합과 건설사에 막대한 이익을 취할 기회를 주는 공급이라면 아무리 공급을 늘려도 집값이 오른다. 수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민간 재건축·재개발로 향하는 수요가 들끓는다. 분양 시점에 이르러 재건축 단지 하나하나 역대 최고가 아파트 순위를 갈아치울수록 주변 집값 수준도 올라선다. 수요자는 한층 다급해진다. “애초부터 재건축과 재개발은 수요를 촉진하는 정책이다.”(채상욱, <대한민국 부동산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반면 2008~2013년 집값을 내린 공급의 기억도 있다. 다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서울시장으로 취임했을 때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를 과감하게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보금자리주택, ‘반값 아파트’ 정책을 기억할 것이다.”(2020년 7월,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초청강연) 공기업을 동원해 시세에 견줘 압도적으로 싼 원가 수준에 아파트를 공급했다. 주변 부동산에 자극을 주며 가격 하락을 유도했다. 자산으로서 매력이 떨어지고, 수요가 줄며 집값은 다시 내렸다.
다시, 2021년 2월. 오세훈 전 시장은 “토지·건물 가진 분들, 건축업자들 집 지으면 돈 벌 수 있다는 신호를 드려야 공급에 뛰어든다”(2월2일 <한겨레> 인터뷰)고 8개월 전과 다른 지점을 강조한다. 나경원 전 의원은 강남 재건축 단지의 상징과 같은 은마아파트를 찾았다. 안철수 대표는 노후 아파트를 돌며 “재건축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집값을 끌어올릴 여지가 큰 공급만 이야기한다. 1월 마지막 주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0.28% 올랐다.(부동산114) 2018년 12월을 빼면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유튜브에는 절호의 재건축·재개발 투자 기회를 설명하며 투자 수요를 자극하는 영상이 퍼져간다.
정부도 2월4일 서울에 저층 주거지나 역세권을 개발해 주택 32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을 앞세웠지만 이전 집주인(토지주)들에게 △용적률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의무 △초과이익 부담금 같은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도심 재개발을 위해 터를 내놓는 땅 주인들에게 기존 정비사업에 견줘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약속했다. 반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신호를 통해, 서울 아파트로 향하는 욕망을 꺾을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만든 아파트를 시세 대비 저렴하게 공급하기로 했는데, 욕망이 그대로인 한 그 ‘시세’ 자체가 어디까지 오를지 알 수 없다. “저층 주거지 등 나름의 필요가 있는 다양한 도시의 모습에 대한 고민”(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같은 것도 일단 묻혔다. 32만 가구, 그 숫자를 위해.
무주택자의 분노가 주택 소유자의 이득으로
이쯤 되면 서울시장 후보의 호소가 향하는 곳이 개발 호재를 통한 집값 상승, 규제 완화를 통한 세 부담(초과이익 환수 부담) 완화로 읽힌다. 무주택자의 분노가 주택과 토지 소유자, 한발 빠른 재건축 투자자의 이득으로 돌아가는 꼴이다. 선거 전략일까. ‘주택 보유 유권자 가설’은 일반적으로 주택 보유자들이 무주택자에 견줘 투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집에 대한 욕망이 들끓는 집값 상승기, 많은 무주택자가 체념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 같은 시점이라면 주택 소유자의 욕망을 건드리는 게 한층 선거에 유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정확한 실패 진단, 모호한 대안 속에 ‘규제를 완화하면 누구나 주택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진실인 양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2021년 4월7일, ㄱ은 “투표 자체가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투표장으로 향할까? 질문이 잘못됐다. 일시에 문제를 풀 묘안은 아닐지라도 무주택자 ㄱ의 분노를 그나마 대변할 언어를 후보 누군가는 꺼내놓을까? 그럴 수 없다면, 선거 결과는 여야 한편의 패배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적어도 부동산에 관한 한 명백한 분노를 딛고 정작 그 분노를 정반대로 활용한, 2021년 선거 민주주의의 패배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표지이야기 - 4.7 민심 르포 연결된 기사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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