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과시' 인권위..박원순, 김진숙, 사형제 '원칙' 목소리

최민지 기자 2021. 2. 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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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7월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실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여부가 결정되는 제26차 상임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이다.

올해로 출범 20주년을 맞는 인권위의 존재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일상 속 차별이나 기후위기 등 지구적 과제뿐만 아니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판단이 인권위의 몫이 되고 있다. 인권위가 내놓는 판단이나 권고의 영향력 또한 커지는 추세다.

인권위의 최근 활동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직권조사 결과 발표였다. 사건을 수사한 검·경이 속시원한 결론을 내놓지 못하면서 많은 이들이 인권위의 결정을 주목했다. 인권위는 5개월 동안 진행된 직권조사를 마친 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지난달 25일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늦은 밤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는 등 피해자 A씨를 상대로 한 박 전 시장의 구체적인 언행 일부도 공개했다.

인권위의 발표는 국가기관이 박 전 시장에 의한 성폭력이 존재했다고 직접 인정한 첫 판단이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A씨의 또다른 성폭력 사건 판결을 통해 박 전 시장에 의한 피해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박 전 시장에 대한 고소와 그의 사망 이후 심각한 2차 가해에 시달려 온 A씨는 이날 인권위 발표 다음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첫 공식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사건 발생 약 7개월 만이었다. 인권위가 박 전 시장 행위를 명시적으로 ‘성희롱’이라고 밝히면서 인권위가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권위는 최근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 문제와 관련해서도 힘을 보탰다. 정부는 김 지도위원의 복직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기업의 영역이기 때문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이런 가운데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지난 2일 김 지도위원 복직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40일 넘게 단식 중인 송경동 시인 등을 직접 만났다. 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인권위는 이 문제가 반드시 풀려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하겠다”고 말했다. 단식자들의 건강을 염려해 단식 중단을 권유하기도 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일 정문자 위원, 송소연 사무총장 등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진행 중인 김진숙 노동자 복직 단식농성장을 방문해 격려하고 의견청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위는 다음날인 3일에는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폐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인권위는 사형제에 대한 헌재의 세 번째 결정을 앞두고 낸 의견서에서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면서 “인간의 생명과 이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국가는 이를 보호·보장할 의무만 있을 뿐 박탈할 권리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2019년에도 사형제 폐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국제규약에 가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올해로 출범 20주년을 맞은 인권위를 찾는 이들은 점차 늘고 있다. 인권위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19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인권위의 정책권고가 한 해 전과 비교해 64%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권고는 인권위가 직접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나 당시 인권 이슈에 대응한 권고를 뜻한다. 인권위에 접수되는 진정 등의 종류도 일상 속 차별에 대한 것부터 박 전 시장 사건처럼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까지 다양해졌다. 지난해 12월 기후·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인권그룹이 정부의 미흡한 기휘위기 대응을 지적하며 찾아간 곳도 인권위였다.

인권위 관계자는 “출범 초기만 해도 인권은 낯선 개념이었지만, 인권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확장됨에 따라 인권위가 다루는 주제도 넓어진 측면이 있다. 이것이 인권위의 영향력으로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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