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일본] 효녀 심청과 '얀구케아라'
사이타마현 조례 만들고 실태조사..한국도 관심 필요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얀구케아라'(ヤングケアラ-)
일본어에 편입된 외래어에는 배경지식이 없으면 의미를 알기 어려운 말이 꽤 있는데 얀구케아라도 그중 하나다.
병들거나 장애가 있는 부모, 조부모, 형제 등을 돌보는 미성년자를 칭하는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일본어 표기다.
일본어의 자음과 모음이 제한돼 있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됐다.
한국어로는 '젊은 보호자', '어린 간병인'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개념이 사회적으로 덜 확립된 상황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용어의 통일은 언중(言衆)에게 맡기고 이번에는 일단 영 케어러로 칭하기로 한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환자나 노약자 등을 곁에서 돌보는 '개호'(介護)가 오래전부터 사회적으로 심각한 과제로 인식됐다.
개호 부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고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老老) 개호'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개인에게 돌봄을 어디까지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했다.
영 케어러는 비교적 최근에 대두한 개념이다.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부담으로 학교를 결석하는 등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진로 선택에서도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이 영 케어러가 당장 직면하는 문제로 꼽힌다.
한국에도 영 케어러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으나 문제의식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영 케어러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효자·효녀로 불린다.
칭찬을 받음과 동시에 돌보는 일이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구조적인 문제에는 덜 주목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셈이다.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 역시 영 케어러에 해당하지만, 심청을 둘러싼 상황은 '지극한 효행'이라는 맥락에서 읽혀왔다.
기자는 학창 시절 거동이 불편한 조모를 수발하는 동급생이 담임 교사나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곤 했다.
요즘 일본에서는 그런 학생을 일종의 문제 사례로 인식하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다만 일본도 영 케어러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체감하는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2017년 취업구조 기본조사 결과에서 젊은 층의 개호 부담을 우회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조사 결과를 보면 15∼29세 약 1천843만여명 가운데 1.1% 정도인 21만명가량이 개호를 하고 있었다.
이보다 5년 앞선 2012년 조사 결과를 보면 같은 연령대 1천911만명 가운데 0.9% 수준인 17만여명이 개호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성년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층의 개호 부담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가 변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는 사이타마(埼玉)현이 개호에 관한 인식과 대응에서 비교적 앞서 나가고 있다.
사이타마현은 작년 3월 케어러 지원조례를 제정했는데 여기에 영 케어러에 관한 규정을 반영했다.
조례는 18세 미만의 케어러를 영 케어러라고 정의하고 '적절한 교육 기회를 확보하고 심신의 건강한 성장 및 발달 또는 자립을 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를 위해 교육기관이 영 케어러와 상담하고 적절한 지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현은 영 케어러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책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사이타마현은 작년 7∼9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하기도 했다.
관내 고교 2학년생 5만5천772명을 상대로 조사해 4만8천261명(응답률 86.5%)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는데 응답자의 4.1%인 1천969명이 현재 영 케어러이거나 과거에 영 케어러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돌봄의 상대방은 조부모·증조부모가 36.9%로 가장 많았고 영 케어러가 된 주요 이유는 '부모가 일로 바쁘기 때문'(29.7%)이었다.
영 케어러가 겪는 문제 상황(복수 선택)은 고독을 느낀다(19.1%), 스트레스를 받는다(17.4%), 공부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10.2%), 내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9.8%), 잠이 부족하다(8.7%)는 것 등이 꼽혔다.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제도적인 틀을 만들었으니 사이타마현이 향후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가 주목된다.
저출생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 중인 한국도 같은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 같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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