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설 연휴에도 고독사 막는 이웃들
지난 3일 라이프키퍼 김동현(52)씨는 경기 광명시 소하2동에 사는 50대 남성 송모씨 집을 방문해 작별 인사를 나눴다. 7개월간 진행해온 ‘라이프키퍼’ 활동을 마치면서다. 이웃이 고독사 위기 가구를 직접 방문하고 수시로 전화해, 고독한 이들이 이웃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지난 7개월새 두 사람은 개인적인 얘기를 스스럼없이 나눌만큼 친해졌다. 하지만 첫 만남 때 송씨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김씨를 맞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송씨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하지만 사업이 망하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고독사 위기 가구’로 분류됐다. 자존심이 센 송씨는 사회복지사에게도 입을 잘 열지 않았다고 한다. 라이프키퍼 김씨는 “제가 지역 봉사활동 했던 얘길 꺼냈는데, 송씨가 거기에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나도 지역 적십자에서 배추심어서 나눠주는 봉사를 했었다”고 말문을 연 것이다. 현재 두 사람은 “몸이 불편해 차를 몰기 어려워 폐차시켰다” “팔에 마비가 오려고 해 운동을 하고 있다” 등 다양한 얘기를 주고 받는다.
김씨는 송씨에게 설 선물로 생필품 한 박스를 건네며, 또 다른 고독사 위기 가구인 50대 남성 김모씨 얘기를 꺼냈다. 오래 전 부인과 이혼하고,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일도 못하게 된 이웃이다. 라이프키퍼 김동현씨는 “(김씨가)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은데 잠도 잘 못자 수면제를 먹고 있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송씨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게 좋다. 나도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술담배는 꼭 줄이고 운동을 하기 시작해라”와 같은 조언을 했고, 김씨는 이를 녹음했다. 라이프키퍼 김씨는 13일 설 연휴를 맞아 경기 광명시 하안동 김씨의 집을 방문해 송씨 사진과 함께 녹음한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웃간 연결을 위해서다. 이 사업은 광명하안종합복지관이 ‘사랑의 열매’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것이다.
◇코로나 거리두기 속에도 이웃 찾아가는 사람들
5인 이상 집합금지로 이웃·가족과의 교류도 어려운 설 연휴지만, 몇몇 이웃들은 주변의 고독사를 막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고독사 위기 가구를 방문해 일상을 살피거나, 이웃이 가는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게 지켜보는 것이다.
대구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이춘자(60)씨는 ‘라인헬퍼’로 활약 중이다. 라인헬퍼도 라이프키퍼처럼, 동네 주민이 이웃 고독사 위험 가구를 방문하며 안부를 살핀다. ‘사랑의 열매’ 지원으로 운영하는 사업이다. 설을 앞둔 지난 1일 이씨는 고독사 위기 가구인 60대 남성 A씨에게 실내용 자전거를 선물했다. A씨는 몸이 아파 일을 못하게 되면서 고독사 위기 가구가 됐다. 고통을 잊기위해 술에 의존했다. A씨는 이씨가 결연을 맺은 가구가 아니다. 하지만 라인헬퍼 봉사자의 단체채팅방에서 ‘A씨가 술을 끊고 건강 회복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얘길 보고, 자전거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이씨는 “60~70대 이웃분들을 방문하는데, 점차 이웃사회와 연결되는 모습이 보여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사업이 어려워지며 가족이 해체되고 자해까지 했던 70대 B씨가 그런 사례다. 라인헬퍼의 이웃연결 사업으로 B씨는 두 집 건너 사는 할머니와 친해지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께 상추와 깻잎을 키우고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됐다. 또 다른 고독사 위기 가구 C(65)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공일자리사업에 지원했다.
◇늘어나는 1인 가구에 고독사 위기 가구는 증가세
라인헬퍼·라이프키퍼 등 고독사 방지 사업이 시작된 계기는 지역사회에서 고독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라인헬퍼 사업을 담당하는 대구 달서구 학산복지관 김정기 팀장은 “월성2동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 복지관이 위치해있는데 이 동네에서 2017년 중장년 무연고 사망자가 3명, 2018년 6명, 2019년 7명이 나오며 사업을 시작했다”며 “실제 2300세대 중 중장년 1인 세대가 595세대고 고독사 고위험 세대가 24세대”라고 했다. 경기 광명 하안복지관 역시 지역에 중장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고독사를 막고자 사업을 시작했다. 하안복지관 김재란 관장은 “라이프키퍼가 고독사 위기 가구의 가족을 찾아 임종 순간을 가족이 지키는 등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세 명의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고독사 위기 가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지난해 906만3362가구로 4년만에 무려 161만 가구가량 늘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2%로 3인 이상 가구도 앞질렀다. 홀몸노인도 증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 127만5000명이던 홀몸노인은 2017년 134만6000명에서 2019년 150만명으로 늘었다. 작년 8월 기준으로는 158만9000명으로 홀몸노인의 고독사 가능성 역시 증가했다.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나이대는 ’50대'와 ’70대 이상'이다. 김원이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2020년 6월 사이 발견된 무연고 사망자 9734명 중 70세 이상(3090명)과 50~59세(2234명)이 전체의 약 55%를 차지했다.
◇마지막이라도 쓸쓸하지 않게 살피는 이웃 공동체
고인이 가는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이웃들도 있다. 2007년부터 고독사 방지를 위해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사업을 시작한 호용한(62) 목사는 “이 사업으로 한 달에 100여명이 병원에 가고 1년에 5~6명이 고독사를 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홀로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도 고독이 아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이 사업을 통해 서울 18개 자치구 2350명의 독거노인에게 180명의 배달부가 이틀에 한 번씩 우유 2개를 배달한다. 우유 4개가 쌓이면 배달부들이 바로 동사무소나 교회에 신고해 사후 사흘이 넘도록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고독사를 방지하는 구조다. 지난해 12월 금호4가에 거주하는 80세 남성이 숨진 것도 우유배달부의 신고로 알려졌다.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측은 설 당일에는 우유 배달을 쉬지만 10일과 오는 15일 우유 배달을 하며 설 연휴간 고독사하는 이웃이 없도록 지켜볼 예정이다.
고독사 방지를 위해 애쓰는 이웃들은 이웃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일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일주일에 60~70대 고독사 위기 대상 가구 세 곳을 방문하는 라인헬퍼 신동일(55)씨는 지난 3일 설날을 맞아 다른 봉사자들과 떡국 300그릇을 끓여 고독사 위기 대상 가구를 방문해 설 인사를 전했다. 그는 “70대 알코올 중독자 할아버지가 라인헬퍼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3개월만에 술도 끊고 복지관에 가서 자기보다 어려운 분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며 “건강도 회복해 가정방문할 때마다 집안도 깨끗이 청소해놓은 할아버지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라이프키퍼 김씨는 “동네 이웃이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동네 형님들과 친해질 수도, 이분들 사이를 연결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분들이 건강해져 본인처럼 홀로 지내는 분들을 찾으러 다니는 이웃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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