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무조건" 6번 강조하며 경제관료 다그쳐..자력갱생 의지
"단위특수화는 반당행위" 특수기관에 경고..대미·대남메시지는 없어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당 전원회의에 보고된 올해 경제계획에 대해 "그전보다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관료들이 패배주의와 보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날이 선 비판을 제기했다.
특히 경제계획은 "당의 지령이고 국가의 법"이라며 "무조건 수행할 의무밖에 없다"고 지적하는 등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6번이나 반복하며 간부들을 다그쳤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국경봉쇄로 중국 등 외부 도움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내부 혁신을 통해 어떻게든 '자력갱생'을 도모하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는 평가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총비서가 8∼11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올해 경제계획 목표를 두고 "당대회의 사상과 방침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혁신적인 안목과 똑똑한 책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고 12일 전했다.
김 총비서는 이어 "어떤 부문의 계획은 현실 가능성도 없이 주관적으로 높여 놓고, 어떤 부문들에서는 정비 보강의 미명 하에 능히 할 수 있고 반드시 하여야 할 것도 계획을 낮추세우는 폐단들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문별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농업 부문에서는 농사 조건이 불리하고 자재 보장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생산목표를 주관적으로 높이 설정했다며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계획단계에서부터 관료주의와 허풍을 피할 수 없게 했다"고 질타했다.
반대로 전력과 건설, 경공업에서는 생산계획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했다며 "연말에 가서 비판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낮추어 기안하는 편향"이라고 꾸짖었다.
특히 전력 부족으로 공장 생산이 중지되고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데도 전력생산 계획을 현재 수준보다 낮게 세우고, 평양시 주택건설 계획도 당대회 결정보다 낮게 세웠다며 "조건과 환경을 걸고 숨고르기를 하면서 흉내나 내려는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이라고 비난했다.
또 국가 차원에서 자재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각자도생식으로 자력갱생을 추진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수입해야 할 물자도 아니고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도 능력껏 사다 쓰라고 하는 것은 경제지도기관들이 자력갱생의 구호를 왜곡해 자기의 책임을 아래 단위에 밀어버리는 가장 전형적인 태만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국가의 경제권과 통제력이 점차 소실되고 국영기업소들을 비법적인 돈벌이에로 떠미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그는 8차 당대회 결정이 "무조건 철저히 집행돼야 한다"면서 전원회의 보고에서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6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평양시에 1만세대의 살림집을 무조건 건설"하라거나, "올해 농업생산계획을 무조건 수행할 데 대하여" 강조했으며, "모든 생산단위들이 시달된 생산 및 자재공급계획을 무조건 그대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당중앙지도기관 성원들이 전원회의 결정을 목숨같이 귀중히 여기고 당결정이 무조건 철저히 집행되도록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내각의 무기력함을 비판하며 '경제 사령부'로서 역할을 재정비하려는 모습도 여러 군데서 보였다.
김 총비서는 "(경제)계획을 작성하는데서 내각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성들에서 기안한 수자들을 거의나 기계적으로 종합(했다)"고 지적했다.
또 "내각과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인민경제 모든 부문과 기업체들의 생산물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생산소비적련계를 맺어주어 수요를 원만히 보장하는 사업체계로 시급히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내각과 국가경제지도기관들이 자기의 고유한 경제조직자적 기능과 통제기능을 복원하여 경제전반에 대한 지도관리를 개선하는 것"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올해 경제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서 내각과 성,중앙기관 당조직들의 역할을 높이는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도 했다.
특수기관이 국가 경제보다는 '알짜배기 기업'을 독식하며 제 배를 불리는 고질적 병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총비서는 "단위 특수화와 본위주의는 부문과 단체의 모자를 쓰고 자행되는 더 엄중한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행위"라면서 "당의 인민대중 제일주의 정치를 실현하고 주체적 힘, 내적 동력을 다지는 데서 제일 장애"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더이상 그대로 둘 수 없으며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하여 단호히 처갈겨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동안 국가보위성이나 사회안전성, 국방성, 군 총정치국·총참모부, 노동당 등 이른바 '힘센 기관'들이 노른자위 기업을 차지하고 독단적으로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면서 경제질서를 파괴해 온 병폐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국가의 경제자원은 내각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할 것이며, 여기에는 특수기관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달 당 대회에 이어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이렇다 할 대남·대미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북한도 일단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과정을 주시하면서 향후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리선권 외무상을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시킨 것은 향후 대미 협상을 준비하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당대회와 당전원회의를 통해 내치를 확고히 한만큼 다음 행보는 대미·대남행보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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