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즉석식품에 떡 썰어넣은 떡국'..취약계층의 코로나19 명절나기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정회성 기자 = "설 소망? 하루라도 자식들이 돈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혈육의 얼굴도 못 보고 지나는 취약계층의 설 명절 나기를 엿보기 위해 광주 북구 임동의 주택가를 찾았다.
김홍례(79·가명) 할머니는 손이 닿으면 부스러질 것 같은 오래된 주택에서 33년째 홀로 살고 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몇 겹 천으로 입구를 막아 놓은 문을 열고 들어간 김 할머니의 집 안방에는 난방 텐트가 펼쳐져 있었다.
한겨울에도 몇 푼 기름을 값을 아끼려고 보일러를 때지 않는다는 할머니는 살림살이가 어려운 자식들에게 만원짜리 한 장이라도 보태주고 싶어 추위를 견딘다고 말했다.
앉을 자리도 변변치 않아 밥 한 끼 나눠 먹고 다시 떠나보내긴 해도 해마다 명절은 살기 바쁜 자식들의 얼굴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그나마도 어렵게 됐다.
고향 방문 자제라는 방역 지침이 아니라 코로나19에 더욱 어려워진 경제생활이 자식들을 발목을 잡는 눈치였다.
아픈 아들 걱정이 자신의 끼니 보다 걱정인 할머니는 외로운 명절을 잘 견디라고 전해준 광주 북구 임동 행정복지센터 복지공무원 기부 물품을 받아 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3천원을 주고 명절에 떡국을 홀로 끓여 먹으려고 떡을 샀던 할머니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달걀값에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던 터였다.
복지공무원이 전달한 기부 물품 사이에서 즉석식품 곰탕을 찾아낸 할머니는 포장지를 손에 꼭 쥐고 "여기에 떡을 썰어 넣어 먹으면 떡국은 먹을 수 있겠네"라고 말했다.
'행복한 명절'이라는 추상적인 답을 바라고 할머니에게 '명절 소망'을 물었다가 뜻밖에 되돌아온 구체적인 대답에 마음이 오히려 먹먹해졌다.
"이 노인네 살린다고 생각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이 받아졌으면 좋겠소."
울음이 오열로 변한 할머니는 사위가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기초생활 수급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단계적으로 폐지됨에 따라 올해 다시 생계비 신청한 할머니는 생계비를 받게 되면 한 푼 두 푼 모아 자식들 살림에 보태줄 생각이었다.
정균성(83) 할아버지는 가족들 사진과 함께 나란히 걸어놓은 가수 송가인의 사진을 보며 "송가인 노래나 들으며 명절을 보내야지"라고 팬심을 드러내며 외로움을 털어냈다.
수십 년째 홀로 지내는 정 할아버지가 요즘 만나는 이는 날마다 집에 찾아와 청소며 요리며 해주는 요양보호사뿐이다.
요양보호사가 찾아와도 말 한마디 걸지도 못하고 괜히 집밖에 서성거리지만, 여든 노인이 사는 집에 하루 두 시간은 유일하게 이웃의 온기가 스쳐 가는 시간이다.
할아버지는 "코로나19가 덮쳐왔다고 더 힘든 일은 없다"면서도 "원래 힘든 사람들에겐 명절에 자식을 못 만나는 것 정도는 내 운명이라고 여기고 넘어간다"고 애써 웃어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여느 때보다 적적한 명절을 보내기는 김안식(57) 씨도 매한가지다.
열일곱 살 때 척추 장애가 찾아와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김씨는 유일한 말벗인 활동 보조인도 나흘 연휴 동안 쉬면서 이번 명절을 홀로 보낼 예정이다.
가까운 곳에 형제와 조카가 살지만,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코로나19 걱정에 이번 설에는 가족이 모이지 않기로 했다.
김씨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분야 정책위원, 인권단체 회원 등으로 하루하루 분주히 보냈으나 어느 날 시작된 '집콕' 생활이 벌써 1년째 이어지고 있다.
8년 전 모친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 줄곧 혼자 살아온 김씨는 코로나19가 가져온 '단절'로 전에 경험하지 못한 쓸쓸함을 이번 명절에 더욱 깊게 느낀다.
광주 북구 임동 행정복지센터의 복지담당 공무원은 "코로나19 탓에 모두가 힘들지만 추위, 배고픔, 외로움, 고통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부터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 같다"며 "이번 설은 만날 순 없어도 마음만은 모두 함께 나누는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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