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얼굴 볼 수 있다면"..'코로나 설날'에 쓸쓸한 양로원
전문가 "심리적 고립감 느끼는 노인 위해 대책 마련해야"
(수원=연합뉴스) 김솔 기자 = "지난해에는 자식, 손주들이 양로원까지 찾아와서 세배하고 따뜻한 전도 나눠 먹었는데 이번 명절은 썰렁하게 지나가겠어."
경기도의 한 양로원은 12일 설 명절인데도 축 가라앉은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양로원과 요양원 등 노인시설에서의 외부인 면회가 금지됨에 따라 시설에서 지내는 노인들은 설 연휴에도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 양로원 관계자는 "많은 어르신들께서 '명절이 되니 가족이 더 보고 싶다'고 말하며 안타까워 하신다"며 "외부에 계신 가족분들도 과일이나 옷 같은 명절 선물을 보내고 설 당일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는 등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양로원, 요양원 등 노인 복지시설의 면회·외출·외박이 제한되고 5인 이상 사적모임이 금지된 가운데 평소 가족과 떨어져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홀로 지내는 노인들은 예년보다 쓸쓸한 설날을 맞고 있다.
가족은 물론 지인, 이웃과의 교류조차 어려워지면서 여럿이 둘러앉아 명절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풍경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져서다.
충북 제천시의 한 양로원에서 지내는 윤모(92)씨는 "작년에는 자식과 손주 5∼6명이 설날을 맞아 면회를 와서 반갑고 즐거웠는데 올해는 통화로 목소리 듣는 것 말고는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지난해 봄 이후로 가족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해 그립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해도 좋으니 잠깐 손주 얼굴만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며 한숨 쉬었다.
이 양로원 관계자는 "이제껏 설 연휴에는 어르신들이 멀리서 찾아온 가족과 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하시거나 1박 2일 동안 자녀 집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 됐다"며 "설날 당일 식사 메뉴로 전 같은 명절 음식이 나온다는 것 외에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 시흥시의 한 양로원 관계자도 "가뜩이나 요즘 코로나19로 미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외부 강사나 놀이·목욕을 돕던 봉사자들마저 방문하지 못해 적적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며 "설날에는 양로원 직원들이 전통 놀이를 함께하며 외로움을 달래드리겠지만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명절 풍경이 허전할 것"이라고 했다.
가족과 연락이 끊겨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맞는 설날이 유독 썰렁하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다.
설날이 되면 가족을 대신해 이웃들과 한 상에 모여 식사하거나 경로당에서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고는 했는데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로 인해 안부 인사조차 전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수원시 행궁동의 한 쪽방촌에 사는 최모(69)씨는 "명절이면 가족 만나기 어려운 이웃끼리 모여서 소주나 막걸리 한 잔씩 기울이는 재미가 있었는데 올해는 여럿이 만났다가 신고를 당할까 걱정돼 방 안에만 있을 계획"이라면서 "코로나19가 확산한 뒤로는 서로의 집에 잠깐 들리는 것도 다들 자제하고 있어 명절이 무색할 정도로 동네 분위기가 썰렁하다"며 울상지었다.
근처에 사는 강모(59)씨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명절에도 가족을 못 만나는 사람들은 연휴에 주변 이웃들과 얼굴 보고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큰 즐거움인데 그런 풍경이 옛일이 됐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외로운 기분이 든다"며 말끝을 흐렸다.
전문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심리적 문제를 호소하는 노인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이나 지인을 장기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심리적 고립감을 느끼는 노인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노인들의 정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s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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