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향해 가는 길 서로 힘이 돼요 "..24대1 뚫은 책임수사관 1호 부부
수사권조정 '원년' 경찰이 내세운 자타공인 '에이스'
(수원=뉴스1) 이승환 기자,강수련 기자 = 제1회 책임수사관 선발에는 전국 경찰 2192명이 지원했다. 최종 선발된 요원은 전체 지원자의 4.1%인 90명이다. 24대1의 경쟁률이다. 경찰권 확대로 요약되는 수사권 조정의 원년인 2021년을 맞아 '책임수사 체제' 에이스를 선발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책임수사관의 기본자격 조건은 '수사경력 7년 이상'이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과해 최종 선발되면 사건 배당과 희망부서 배치 과정에서 우대받는다. 그러나 이런 우대 조건만으로 치열한 경쟁률이 설명되지 않는다.
세월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경찰은 명예와 사명감 없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직업군이다. '24대1' 경쟁률은 경찰 특유의 조직문화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경기남부경찰청 지우현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범죄수익추적수사팀장(경감·42)과 정성숙 수사심사담당관실 수사심사관(경감·42)은 '책임수사관 1호 부부'다.
두 사람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다. 설 연휴 이틀 전인 9일 오후 4시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경찰청 안 1층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남편에게 노하우 배워…결국 구속 성과"
책임수사관은 Δ선발시험(2020년 12월) Δ자격심사·선발심사(2020년 12월) Δ교육(2021년 1월) Δ인증 수여 절차(2021년 2월) 순의 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지난 4일 '책임수사관 인증서 수여식'에는 김창룡 경찰청장이 직접 인증서를 수여했다.
경찰 안에서는 선발 과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했겠지만 '현장에서 평소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임했느냐'가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이 됐다는 후문이다.
정성숙 심사관은 "선발시험에서 형사소송법 관련 문제가 나왔으나 서술형으로 출제됐기 때문에 문제를 암기했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며 "수사실무 경험도 있어야 하고 법률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지원자의 수사지휘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이었다"고 설명했다.
지 팀장은 "책임수사관 준비 과정에서 아내와 저는 서로 경쟁자가 아닌 든든한 우군이었다"며 "가령 압수수색 절차를 공부하다 특이한 점이 발견되면 한번 살펴보라고 조언하며 상승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순경으로 임용된 지 팀장은 Δ부천원미서 수사과 경제팀 Δ광명서 여성청소년과 여성보호, 수사과 지능팀 Δ부천원미서 수사과 경제팀 Δ부천소사서 수사과 경제팀(팀장)에서 근무했다.
정 심사관은 남편과 같은 날 임용돼 Δ부천남부서 여성청소년계와 형사과 지역형사팀 Δ부천오정서 수사과 경제팀에서 일했고 부천소사서에선 수사심사관을 지냈다.
경찰이라면 누구나 희망한다는 '특별승진'도 했다. 지 팀장은 2007년 불법무기 단속 과정에서 수거율 1위를 기록해 경장에서 경사로 특진했다.
정 심사관은 여성청소년계에서 근무하던 당시 아동지킴이 활동 공로를 평가 받아 2006년 순경에서 경장으로 특진했다. 경감 승진까지 보통 25년이 걸리는데 지 팀장과 정 심사관은 그 시기를 8~9년 앞당길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았다.
두 사람은 중고자동차 사기 사건 등을 추적하는 경제팀에서 근무한 공통점도 있다. 이것은 상승효과로 이어지는 동력이 됐다.
정 심사관은 "부천오정서 경제팀장으로 일할 때 중고차 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중고차 사기 사건은 혐의 입증이 어려워 대부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지만 수법이 매우 좋지 않고 피해자 대부분 사회적 약자입니다. 비슷한 사건을 앞서 수사해 해결한 남편에게 노하우를 배웠죠.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받고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고, 결국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피의자를 구속했습니다."
◇"아내 없었다면 책임수사관되기 힘들었을 것"
두 사람은 자신의 직에 상당한 애정을 나타냈다. 업무와 관련된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서로 소원할 일은 많지 않을 것으로 짐작됐다.
"집에서도 일 얘기를 해요(웃음). 안 풀리는 사건 있으면 의논하지요.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하고 피드백을 받고 그래요."(지우현 팀장)
"학습효과가 2배는 됩니다. 일례로 판례가 너무 자주 바뀌어 검사들도 헷갈릴 정도에요. 수사관들도 꾸준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데, 저희는 대법원에서 판례가 바뀌었다고 홍보할 경우 그 내용을 바로 공유합니다. 상승효과는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정 심사관)
지 팀장은 남경 154기, 정 심사관은 여경 155기다. 2002년 겨울 같은 날 경찰학교에 입교한 이들은 오가는 버스 안에서 안면을 익히며 인연을 시작했다.
무뚝뚝한 성향이 어투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 팀장은 "배우자가 다른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고 했다. 역시나 무심하듯 말했으나 '애정 표현'이라는 사실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지 팀장은 "아내를 만나지 못 했다면 빠르게 승진 못 했을 것이고 책임수사관으로 선발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경찰업무 특성상 승진시험을 앞두면 퇴근하자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같은 일을 하는) 아내가 그럴 때마다 잘 이해해줬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정 심사관은 최근 몇 년 간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 하지만 남성 중심 문화가 두드러진 경찰조직에서 전문성을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 팀장은 아내의 소신이 담긴 발언을 귀 기울이고 있었다.
정 심사관은 "함께 일하는 동료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며 "인사시즌이 되면 '여기 가고 싶어요' '저기 가고 싶어요' 말하기 전에 전문성을 확보해 나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스스로 "욕심이 있는 편"이라고 솔직하게 말한 정 심사관은 업무 강도가 높은 형사과에서도 "야간 당직을 서면 잠 한숨 자지 않고 일을 했다"고 전했다.
스스로 "욕심이 많지 않다"고 소개한 지 팀장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10년 뒤 계획'을 묻는 말에 "현장에서 수사를 계속하고 있을 것 같다"며 "고1 딸과 중1 아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경찰한다고 하면 지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 통제 여전…해소되면 수사 더 수월할 것"
책임수사관은 경찰 수사력 강화를 위한 핵심 방안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은 올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지만 경찰 수사력에 관한 의문부호가 계속 따라 붙고 있다.
한국의 연방수사국(FBI)으로 불리는 국가수사본부도 올해 1월1일 출범하면서 경찰은 수사력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 에이스 책임수사관들에게 각별하게 기대를 거는 배경이다.
수사관들은 경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Δ예비수사관(수사부서 전입 전) Δ일반수사관(수사경력 3년 미만) Δ전임수사관(경력 3년 이상) Δ책임수사관(경력 7년 이상, 시험·심사) 자격을 부여 받는다.
지 팀장과 정 심사관은 4단계 자격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의 수사관이자 지휘관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책임수사관'이다. 자신들에게 부여된 책임의 무게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양천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이용구 법무부 차관 폭행 사건' 등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이 올해 정초부터 거센 논란으로 번지면서 경찰의 수사 신뢰도를 의심받는 상황을 부부 경찰관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각자 맡은 업무에서 역량을 발휘해야 '책임수사관 제도'가 정착될 것입니다. 이것이 순기능으로 발휘되면서 국민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아가 경찰이 수사를 맡고 검찰이 기소를 담당하는 궁극적인 수사권 개혁이 이뤄지려면 경찰 구성원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정 심사관)
"올해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이 폐지됐다고 하지만 경찰이 검찰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해 불송치한 사건도 검찰이 90일 이내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어요. 현장 곳곳에 통제장치가 개선되면 수사가 더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지 팀장)
인터뷰를 마친 이들 부부는 기념 촬영을 위해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 모두 "사진 포즈를 잘 하지 못한다"며 쑥스러워했다. 경찰을 상징하는 참수리 모형을 뒷 배경으로 두고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어색한 표정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카메라 뷰파인더가 꽉 찰 정도 큼지막한 '하트' 모양을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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