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걸렸냐"며 골프채 휘두른 새아빠..경찰은 외면했다 [스위트홈은 없다]

2021. 2. 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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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이 전쟁터, 숨죽인 아이들
코로나19는 생계를 위협하고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크고 작게 심리적 위축을 겪었습니다. 특히 정서적으로 예민한 청소년들의 ‘코로나 충격’은 큽니다. 집 밖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학교와 친구들, 세상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했지만 정서적으로 온전하게 보호받진 못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도움을 받아 지난해 청소년사이버상담 사례를 들여다 봤습니다. 어른으로부터 무관심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집이 차라리 지옥이었습니다. 화면으로만 소통하면서 깊은 우울과 침체를 겪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위로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채팅방 같은 또래들 세상에 더 몰두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새 학기, 아이들은 묻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내버려 둘 건가요?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어렵게 꺼낸 이야기

#1 새아빠의 보복이 두려워요


중학교 2학년인 민우(가명)의 집엔 불청객이 산다. 민우가 7살이었을 때 엄마는 새아빠를 들였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8년 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새아빠가 되어있었다. 새아빠는 입도 손도 거칠다. 엄마는 알면서도 새벽에 도망치듯 일터로 나가 밤늦게 귀가한다. 민우는 새아빠와 숨 막히는 집을 지킨다. 코로나로 학교조차 갈 수 없다. 하루는 머리가 아파 진통제를 사왔다. 약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본 새아빠는 “코로나에 걸렸냐”며 차가운 골프채를 들었다. 민우의 무른 살에 검푸른 멍이 속절없이 번졌다. 민우는 아프고 두려워 경찰에 신고했다. 집으로 출동한 경찰은 새아빠의 말만 들었다. 경찰이 돌아간 후 새아빠의 눈에 독기가 들어찼다.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겁난다.


#2 방 안에 갇혀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 6학년인 재현(가명)이는 배가 고프다. 코로나로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급식을 먹을 수 없게 됐다. 아빠는 재현이를 침침한 방 안에 가두고 밥을 주지 않는다. 엄마는 정신질환이 있어 따로 산다. 아빠와 엄마는 오래전 이혼했다. 아빠는 화가 많다. 과제를 보여줘도 “네가 한 게 맞냐”고 호통치고 가만히 있어도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친다. 고함 뒤에는 감정을 실은 주먹이 따라온다. 배도 주리고 몸도 아팠다. 직접 집 근처 경찰서에 찾아가 “아빠가 때린다. 도와달라”고 했다. 경찰은 “별일 아니다”라며 문밖으로 등을 떠밀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3 암 투병 중인 엄마의 폭언이 아파요

고등학교 1학년인 미연(가명)이는 아동학대 생존자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습관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 털어놨다. 선생님은 아빠를 가정학대로 경찰에 신고해 미연과 엄마를 아빠로부터 분리했다. 이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엄마는 작년부터 암 투병을 시작했다. 신경이 예민해져 가시 같은 말들을 뱉어낸다. “아빠한테 돌아가라” “꼴 보기 싫다”며 비수를 꽂는다. 가끔은 “못생겼다” “뚱뚱하다”라며 생김새 하나하나를 꼬집는다. ‘엄마도 항암치료 하느라 힘들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런 말 하지마라”며 엄마를 다독이면 시린 육두문자만 돌아온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아빠한테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권해원 디자이너]
전쟁터가 된 가정

스위트홈(sweet home)은 없었다. 코로나19는 가장 취약한 청소년의 일상부터 앗아갔다. 집이 안식처가 아닌 청소년은 철저히 고립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도 카페도 노래방도 문을 닫았다. 위태로운 가정도 빗장을 걸었다. 폭언은 집요해졌고 폭력은 은밀해졌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24시간 밀착된 채 지냈다. 청소년이 물러날 퇴로는 없었다. 코로나에 가려진 아동학대는 피해자가 철저히 유린당한 후에야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그랬다.

힘이 없는 10대 피해자의 외침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한참 짓밟힌 후에야 공권력에 호소해도 외면당했다. 경찰은 “아프다” “무력하다”는 피해자의 말보다 “훈계였다” “사고였다”는 가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재현이가, 민우가 그랬다. 이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지난해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운영)에 도움을 요청했다. 민우, 재현, 미연의 사례는 지난해 센터를 통해 이뤄진 상담(32만건) 가운데 일부다. 센터에 소속된 41명의 상담사는 게시판과 채팅창을 통해 만 9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의 정서적 지원을 돕고 있다. 센터는 상담을 의뢰자 중 절대 다수가 10대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권해원 디자이너]

센터가 집계한 작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의 일상엔 학대와 폭력의 그림자가 짙게 스며들었다. 코로나 국면에서 유난히 상담의뢰가 늘었던 유형은 가족(4만6771건)으로 전년 동기(2만6938건)와 비교해 73.6% 증가했다.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 경제적 착취, 방임 등이 겹겹이 쌓였다. 코로나는 누적된 가정의 문제를 폭발시키는 분화구가 됐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코로나로 가정에 잠재돼 있던 문제들이 폭발하거나 폭발 직전으로 가고 있다”며 “고립된 가정 내에서 진행된 병리 현상은 갈등을 심화시키며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파국적인 결과에 이르러서야 외부에 밝혀진다”며 “이미 전쟁터가 돼버린 가정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청소년의 감정은 끝없는 바닥을 친다. 불안·강박을 토로한 청소년은 2019년과 비교해 85.4%(1만607건) 늘었다. 우울·위축을 호소한 청소년은 60.5%(1만8188건) 증가했다. 이 중에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든다”며 극단적인 생각을 내비친 청소년도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학대를 경험한 청소년은 부모에 대한 증오·두려움·무력감 등을 느끼며, 견디다 못해 신고해도 부모의 보복으로 더 심각한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며 “(센터 사이버상담으로) 도움을 요청한 청소년 중 신속한 개입이 필요한 사례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신고하거나 청소년쉼터로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는 매일 금요일 오후 8시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인근에 이동형 아웃리치 버스를 세우고 천막을 친다. 청소년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고 주거 지원, 일자리 연계, 경찰서 동행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엑시트 제공]
스스로를 구원한 청소년

청소년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탈가정’을 한다. 처음엔 참고, 숨고, 견딘다. 폭력으로 빚어진 울분을 속으로 삭인다. 학교, 경찰, 복지기관에 손을 뻗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성숙한 조력자를 만나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난다. 그러나 대다수는 고장 난 사회의 안전망 밖으로 내쳐진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청소년은 스스로 구원하는 길을 선택한다. 위험한 집 대신 위험한 거리로 나간다.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던 2020년. 현장에선 가정과 학교, 복지시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탈가정 청소년이 늘었다고 지적한다. 전례 없는 코로나 팬데믹에 학교는 등교를 중단했다. 청소년 일시쉼터는 방역 문제로 신규 청소년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청소년이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카페, PC방, 찜질방 등도 문을 닫았다. 탈가정 청소년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경찰은 한 해 11만명, 여성가족부는 한 해 27만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기·성폭력·주거불안 등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는 매일 금요일 오후 8시 서울 신림사거리 봉림교 인근에 이동형 아웃리치 버스를 세우고 천막을 친다. 청소년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고 주거 지원, 일자리 연계, 경찰서 동행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엑시트 제공]

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 센터장은 “지난해 8월 코로나 확산으로 청소년 아웃리치 활동이 일시 중단됐다”며 “활동을 다시 재개했을 땐 신규 가입자 수가 증가했는데, 코로나로 갈 곳이 없어진 청소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 학교, 시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청소년은 빈약한 지원을 받는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엑시트를 찾아왔을 땐) 이미 위험 상황에 노출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인숙 법률사무소 청년 변호사는 “지난해 코로나로 가장 힘든 상황에 처했던 건 청소년”이라며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가정의 청소년이 부모와 장시간 집에 머물면서 폭력과 학대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사회복지사들도 가정 방문을 통해 위기 청소년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사회복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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