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논란도 마냥 부럽지요"..코로나로 기숙사 갇힌 이주노동자들

이기림 기자 2021. 2. 12.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사적 만남도 제한..설은 '강제거리두기' 날일뿐
고향도 못 가는데 숙소는 형편없고.."관심이 필요한 때"
7일 서울 종로구 법련사에서 열린 '故 속헹 노동자 49재 및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천도재'에서 관계자들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2021.2.7/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대 미얀마 청년 아웅씨(가명)는 오늘도 어김없이 일을 마치자마자 공장 기숙사에 들어와 누웠다.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본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얀마인 공동체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 스트레스를 풀던 그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자유란 단어는 사라졌다.

사장님은 코로나19에 걸리면 "다 같이 망한다"며 아웅씨를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평소 같았으면 허용될 친구들의 방문도 막혔다. 기숙사에서 감금되다시피 사는 그는 차라리 '미얀마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 그러나 최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그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웅씨는 오늘도 한숨을 내쉬며 하루를 버텨낸다. 설 연휴 '귀향'을 둘러싼 한국인들의 논란이 그에겐 부럽기만 하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명절 체험도 해보고, 같은 미얀마인들끼리 명절음식을 나눠 먹으며 고향 생각을 잊었는데…. 이번 설날은 한국인들의 명절일 뿐, 그에겐 '강제 거리두기'의 날 중 하루일 뿐이다.

◇ 코로나19에 제한되는 출입과 만남…"이전 설날과 달리 못 모여요"

코로나19의 확산 속 외국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녹록지 않다. 이주노동자 관련 시설들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자를 막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숙소에서 외부 출입을 제한하거나, 사적인 만남을 제한하며 일터에서의 규제가 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신장과 복지증진을 위해 설립된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살기 힘든 건 한국인이나 이주노동자나 매한가지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기숙사에 갇혀 지내거나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라며 "예전 같았으면 설날에 공동체끼리 모여 행사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그랬을 텐데 이젠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로 그러지도 못한다"라고 안쓰러워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설날에 가족들 오지 말라고 광고까지 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기숙사에 감금된 것처럼 살면서 일도 힘들고, 그 외적으로 힘들어한다"라며 "이중으로 고통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문 닫는 업장들도 많다"라며 "그럼 다른 사업장을 구해야 하는데 관련 기관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숙소나 임금 문제로 끙끙 앓기만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며 "예전처럼 임금체불 특별주간을 실시하거나, 제대로 된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이주노동자 상담실 관계자도 "예전에는 같은 국가끼리 모이는 공동체별로 미사를 드리거나 모임을 가졌는데 이젠 그러기도 쉽지 않다"라며 "예전보다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오다 보니 본국에 아이나 남편, 아내를 두고 오는 경우가 적고, 한국에서 공동체 동료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그나마 외로움 문제에서는 낫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로 인한 임금체불 문제도 있고, 비자갱신을 안 하고 일하는 미등록 노동자 등 문제는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이주노동자 기숙사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2.9/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고향도 못 가는데 숙소는 형편없고…"한국 지탱하는 그들 위해 관심이라도"

"코로나로 항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겨우 고향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도 취소되는 경우가 많고…. 미얀마에서는 쿠데타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들이 타국에 와서 지내는 숙소를 보면 형편없는 수준인데, 이렇게까지 열악하게 일해야 하나 싶을 정도죠."

한 이주노동자 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며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30대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속헹씨는 지난해 12월20일, 영하 18도의 한파경보가 내린 날 경기 포천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진 채 발견됐다. 2016년 한국에 처음 왔고, 2018년부터 해당 농가에서 일하던 그의 죽음은 이주노동자를 향한 한국사회의 시선을 대변하듯 볼품없었다.

국과수 부검결과 속헹씨의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었다. 그러나 사고 며칠 전부터 숙소 내에서 전기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주노동자 단체에서는 명백한 '산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언제 또 이런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와 공동으로 벌인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주노동자 69.6%가 조립식 패널,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내 시설 등 가설 건축물에 살고 있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예와 채소산나물 재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36% 이상이 이주노동자인 상황이고, 미등록 노동자들이 포함될 경우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한 이주노동자 단체 관계자는 "이 또한 며칠 지나면 모두가 잊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살아갈 것"이라며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한국을 지탱하는 그들을 위해 작은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아쉬워했다.

또한 이런 처우 개선을 위해 이주노동자 도입제도인 고용허가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인 지몽스님은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고 고통을 가중시키는, 더이상 존속돼서는 안 될 제도로 전락해 버린지 이미 오래됐다"라며 "하루 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열악한 숙소를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주에게 고용허가를 불허하고, 이런 처우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희망할 경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gir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