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흡혈박쥐의 우정, 죽은 친구의 자식 입양해
이모 부부가 10살 조카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을 두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짐승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흡혈박쥐 암컷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의 자식을 입양해 보살핀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의 제럴드 카터 교수 연구진은 9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실험실에서 키운 흡혈박쥐 암컷이 생전 친분을 나누다 죽은 동료의 새끼를 입양해 어미 역할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출산 경험 없어도 입양하면서 젖 분비
연구진은 파나마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세 곳에서 야생 흡혈박쥐 23마리를 채집했다. 박쥐가 채집된 지역은 수백㎞에 걸쳐 있었다. 흡혈박쥐들은 사육장에서 함께 살며 새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했다. 연구진은 검은 그물망을 우리에 덮고 적외선 카메라 3대로 하루 6시간씩 4개월 동안 박쥐들의 행동을 촬영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흡혈박쥐는 릴리스와 BD라는 이름을 가진 암컷들이었다. 둘은 서로 몸단장을 해주고 먹이를 토해 나누기도 했다. 릴리스가 출산한지 19일 만에 죽자 BD가 남은 자식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 암컷은 한 번도 새끼를 낳은 적이 없음에도 젖을 분비해 고아가 된 어린 박쥐를 먹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BD의 신경내분비계에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이다.
흡혈박쥐가 동료의 자식을 입양하는 것은 1970년대 독일 과학자들이 처음 발견했다.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진은 이번에 생전에 맺은 사회적 친분이 죽은 동료가 남긴 고아를 입양하도록 촉발했다고 추정했다. 두 암컷이 우연히 같은 무리에서 살면서 친분을 나누고 나중에는 피를 나눈 자매와 같은 사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동물세계에서 자매들이 자손을 함께 키우는 일은 자주 관측된다.
◇먹이 나눈 우정은 피보다 진하다
고아를 입양한 박쥐 BD는 생전 친구의 병이 심해질수록 더 자주 먹이를 나눠줬다. 이는 두 박쥐가 아주 강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었다는 증거이다.
흡혈박쥐는 면도날 같은 앞니로 말이나 소의 피부에 작은 상처를 내고 피를 핥아 먹는다. 매일 밤 찻숟가락 한 개 분량의 동물 피가 필요한데, 사흘 굶으면 죽을 수도 있다. 박쥐는 아사 위기에 빠진 동료에게 최근에 먹은 피를 게워내 먹이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카터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19년 사육 상태에서 먹이를 나눈 박쥐들은 야생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유대관계를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카터 교수는 “흡혈박쥐가 일부 영장류에서 보아온 우정과 비슷한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는 증거를 추가하는 것”이라면서 “동물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우정을 이해하는데 영감과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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