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삼킨 '악어 입' 그림자.."재정은 적재적소에" 아우성

김혜지 기자 2021. 2. 1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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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일본 관료의 경고, 전국민 지원금으로 되살아나
한번 나빠진 재정, 증세 등 구조조정 불러.."다다익선X"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세종=뉴스1) 김혜지 기자 = "미래 세대의 부담인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의 불가역성을 경고한 일본의 '악어 입 그래프'를 상기해야 한다."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 2월4일)

"재정 운영상 많을 수록 좋다는 다다익선보다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적재적소(適材適所)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2월2일)

이달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경제 고위 관료들이 일제히 '재정 부담'을 토로하고 나섰다. 현재 여당이 주장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되면 세수는 줄고 채무는 늘어나는 일본의 '악어 입 그래프'가 우리나라를 덮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악어 입 그래프란 일본 정부의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수와 지출 흐름을 나타낸 그래프다. 두 선이 벌어지는 모습이 입을 쩍 벌린 악어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본의 세수·세출 그래프는 평행한 모습이었으나 1990년을 기점으로 서로 간 거리를 빠르게 벌리기 시작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정부가 쓰는 돈은 늘어나는 반면, 성장 정체 등으로 걷히는 돈은 줄어들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이후 그래프는 더욱 벌어져 2000년대 중반 완전한 '악어의 입' 형상이 됐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메우고자 국가 채무를 증가시킨 결과, 지난 1990년 64%였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266%을 찍었다.

(출처 : 일본 재무성의 '일본의 재정을 생각하다' 참조)

우리 정부에 일본의 악어 입 문제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때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1년이다. 당시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재무장관 회의에서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재부 예산실장 격인 마나고 야스시(眞砂靖) 재무성 주계국장(主計局長)이 우리 측에 한 그래프를 내민 것이다. 이것이 악어의 입 그래프였다. 그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때 예산실장이었던 김동연 전직 부총리는 6년 뒤인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 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현 경제 부총리인 홍남기는 당시 기재부 대변인으로 임명되기 직전였다.

2011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갓 30%를 넘긴 상태로, 국제적으로 보면 매우 양호했다. 일본으로 따지면 1970년대 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일측이 굳이 그래프를 내밀며 직접 경고한 이유는, 한국이 자신들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악어의 입 그래프를 만드는 주요한 원인인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보면, 한국이 당시에도 현재에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심지어 일본의 전철을 넘어 아예 추월 차선을 밟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국가채무의 가파른 증가 역시 한·일이 일정 시차만 둔 채로 똑같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과거 일본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2%(1977년)에서 200%를 초과(1990년)하기까지 불과 13년이 걸렸다. 한국은 2019년 37.1%였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년 후인 올해 47.3%(본예산 기준)로 10%포인트 이상 치솟게 된다.

현재 여당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위축 완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즉, 국가가 국민을 직접 지원함으로써 내수를 진작하고, 코로나19에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학문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확장 재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불가론을 주장하는 경제 관료들과도 결이 다르지 않다.

정부와 여당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총론이 아닌 각론이다. 홍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은 반드시 필요한 곳에만 재정을 투입하는 적재적소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이 머잖아 일본과 동일한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본다.

2020.7.22/뉴스1

여기서 '일본과 같은'이라는 말에는 여러 뜻이 함축돼 있다. 대표적으로 증세 가능성이 제기된다.

1980년대부터 채무 구조조정 필요성이 불거진 채무대국 일본은 저성장 사회 진입에 따른 재원 마련을 위해 2012~2019년 3차례(5%→8%→10%)에 걸쳐 소비세를 인상했다.

간접세인 소비세는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한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한국도 부가가치세 인상 논의가 있어 왔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국가 재정 전반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표심을 잡고자 개혁을 뒤로 미루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기도 했다. 이는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던 전임 아베 정권도 매한가지로, 한 번 악화한 국가 재정은 좀체 회복할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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