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 '꿩 대신 닭'은 떡국에서 나온 속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2. 12. 07: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 대표하는 음식 떡국
지역마다 맛도 재료도 달라
경남 통영 '멍게가' 물메기떡국. 이처럼 떡국은 지역마다 흔하고 맛있는 식재료를 활용해 다양하게 끓여 먹는다./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떡국은 한민족에게 음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 했고, 그래서 어릴 때는 떡국을 더 먹겠다고 떼 쓰기도 했죠. 떡국은 소고기나 사골 국물에 주로 끓이지만, 굴·닭·대구·전복·매생이 등 지역마다 흔하고 맛난 식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해왔습니다.

◇'꿩 대신 닭' 유래한 전라도 ‘닭장떡국’

전라도에서는 닭으로 떡국을 끓이기도 합니다. ‘닭장떡국’이라고 합니다. 생소하기도 합니다만,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세시풍속사전’을 보면 닭장떡국이 소고기나 사골 국물에 끓이는 요즘 떡국보다 더 오래된 음식 같기도 합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이 떡국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떡국의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로는 원래 꿩고기가 으뜸이었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풍속에서 배워온 매사냥이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놀이로 자리를 잡으면서 매가 물어온 꿩으로 국물을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 그리고 꿩고기를 속으로 넣은 만두고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특별하게 매사냥을 하지 않으면 꿩고기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은 닭고기로 떡국의 국물을 내기도 했다.’(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닭장떡국을 만들려면 우선 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냅니다. 이걸 간장에 넣고 장조림 하듯 졸입니다. 바특하게 조려지면 차갑게 식힙니다. 닭고기와 껍질에 다량 함유된 콜라겐이 빠져 나와 묵처럼 굳지요. 냉장고 등 차가운 곳에 두었다가 필요한 만큼씩 덜어서 물을 붓고 떡국떡을 넣어 끓이고 달걀지단·파·김가루 같은 고명을 올립니다.

조리법이 생각보다 단순하죠. 하지만 맛은 간단치 않습니다. 국물이 깊은 맛이 나면서 복합적입니다. 닭 누린내 등 잡내가 전혀 없고, 일반 떡국보다 깔끔합니다. 닭장으로 미역국을 끓여도 맛있다고 합니다.

◇겨울바다 담은 통영 ‘굴떡국’ 거제 ‘대구떡국’

우리나라 굴 생산 중심인 경남 통영에서는 ‘굴떡국’을 끓입니다. 통영뿐 아니라 남해를 끼고 있는 지역에선 두루 먹지요. 굴을 국물의 기본으로 잡되 매생이를 넣어 시원한 바닷맛을 더 진하게 하기도 하고, 소고기와 함께 끓여 감칠맛을 더하기도 합니다.

통영에 있는 멍게 요리 전문점 ‘멍게가’에서는 겨울철 미리 주문하면 ‘물메기떡국’을 끓여줍니다. 물메기 단 하나만으로 맑고 담백하고 시원하게 끓여냅니다.

흐물흐물한 물메기를 큼직하게 토막 쳐 무 몇 조각과 함께 맹물에 끓이면 끝. 멸치를 삭혀서 끓여낸 다음 체에 국물만 받은 어(魚)간장으로 살짝 간 하기도 합니다. 고명도 경남 사투리로 ‘몰’이라고 부르는 모자반(해조류의 일종)과 가늘게 썬 달걀지단이 전부죠. 간과 고명을 최소화하는 건 김가루나 참깨 등 향이 진한 재료를 올리면 물메기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남 통영 굴떡국./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경남 거제, 마산, 진해 등 대구가 많이 잡히는 지역에서는 ‘대구떡국’을 끓입니다. 생선으로 끓인 국물이지만 사골국처럼 뽀얗습니다. 이리(수컷의 정소) 때문입니다. 이리는 꼬불꼬불 내장처럼 생긴 흰 덩어리로, 대구떡국에는 대구의 살과 함께 이리를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이리에서 우유 같은 국물이 흘러나와 떡국을 크림처럼 하얗게 물들입니다. 빛깔만 크림이 아니라 맛도 크림처럼 고소합니다. 이리 때문에 대구는 거의 유일하게 수컷이 암컷보다 더 비싼 생선입니다. 눈처럼 흰 대구 살은 씹을 틈도 없이 포슬포슬 부드럽게 녹으며 쫄깃한 떡국떡과 훌륭한 대비를 이룹니다.

◇그밖에 지역별 이색 떡국

충청도에는 ‘날떡국’이 있습니다. ‘생떡국’이라고도 부르죠. 떡국떡 대신 쌀가루 반죽을 수제비처럼 그대로 끓는 육수에 넣어 끓입니다. 쌀가루 반죽은 쌀을 잘게 빻아 따뜻한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만들고, 이걸 둥글게 굴려 길게 만든 다음 어슷하게 썰어 준비합니다. 육수는 진한 멸치 육수를 주로 사용합니다. 일부 지역에선 여기에 미역이나 다슬기를 넣기도 합니다.

개성 조랭이떡국./조선일보DB

두부가 유명한 강원도 강릉 초당에서는 떡국에도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맛과 영양을 더합니다. 개성 조랭이떡국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죠. 조롱박처럼 가운데가 날씬한 조랭이떡으로 떡국을 끓입니다. 조랭이떡은 긴 떡을 대나무 칼로 자르고 다시 가운데를 칼로 살살 문질러 조롱박 모양으로 만듭니다. 아이들에겐 ‘작은 눈사람처럼 생겼다’고 해야 더 쉽게 이해하겠죠?

조랭이떡의 독특한 모양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한 설이 분분합니다. 아이들 설 저고리 끝에 액운을 막기 위해 걸고 다니는 조롱박에서 왔다는 설(說), 누에고치처럼 실이 술술 풀리기를 바라며 만들었다는 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사람들이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에게 한을 품고 그의 목을 비틀며 떡을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요.

코로나로 고향 가기가 어려워졌죠. 고향 지역의 떡국을 끓여 먹으며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야할 2021년 신축년 설입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재테크, 부동산, IT, 책, 영어 학습, 종교, 영화, 꽃, 중국, 군사 문제, 동물 등 16가지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조선닷컴으로 접속해주세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