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은 원래 '대세'였다 [스타박물관]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2021. 2. 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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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스타박물관’은 대중문화계 레이더 역할을 해온 스포츠경향과 경향신문의 데이터베이스 속 스타의 희귀 사진을 발굴해 그때 그 시절 추억을 꺼내보는 시간입니다. 또한 어제와 오늘을 아울러 대중문화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스타들의 저력을 조명해봅니다.


40년 배우 인생, 여전히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배우 김보연. 사진 경향신문DB

■배우 김보연, 그는 원래 ‘대세’였다.

슬픔과 고뇌, 기쁨과 회한… 수많은 감정을 한 얼굴에 담아낸 김보연의 모습은 바로 ‘연기의 신’이었다.

TV조선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이하 ‘결사곡’)’에서 남편의 죽음을 방치하며 보여준 복잡한 심경의 ‘동미’를 연기하는 그를 두고 시청자들은 ‘김보연이 저렇게 화면 장악력이 큰 배우였나’라는 평을 내고 있다. 그야말로 제 2의 전성기이며 대세다.

김보연이 갖고 있는 40년 넘는 연기 내공은 사실 무한대였다. 그저 그에게는 중견 배우이기에 어쩔 수 없는 캐릭터의 한계만이 있었을 뿐이다.

안양예술고 학생이던 당시 김보연은 교장의 추천으로 1974년 영화 ’애정이 꽃 피는 계절’로 데뷔했다. 1976년 MBC 제 8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되어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1978년에는 MBC 금요연속극 ‘막내며느리’로 그해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해 1978년 MBC 드라마 ‘당신’에서 뇌종양에 걸린 여고생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고 주연급 배우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1982년 김보연은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로 제21회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배우 안성기와 함께. 사진 경향신문DB

그의 필모그래피를 빼고서는 한국 대중문화사를 써내려가기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김보연을 그저 부잣집 세련된 안주인 역을 하는 중견 배우로 알고 있지만 그는 70, 80년대를 아우르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관통하는 히로인 중 히로인이었다.

김보연은 소위 ‘멀티 엔터테이너’였다. 연기 뿐만 아니라 노래로도 큰 역량을 보였고 가수 활동도 병행했다. 1978년 1집 ‘김보연 골든 앨범-사춘기’를 시작으로 ‘생각’ ‘네가 좋아’ ‘사랑했단 말 대신’ 등을 발표했고 1992년에는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사랑은 생명의 꽃’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1992년 서울국제가요제 외국 참가 가수와 함께. 사진 경향신문 DB

김보연 본인에게도 ‘결사곡’은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어머니’ ‘시어머니’ ‘사모님’에서 벗어나 ‘동미’라는 이름으로 시청자 앞에 섰다. 구태스러우나 그를 설명하기에 꼭 언급할 수 밖에 없는 한 마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배우 김보연의 새날을 응원한다.

1992년 본사와 새해 맞이 화보를 촬영한 김보연, 30년이 흐른 2021년, 그의 새해도 여전히 기대할 만하다. 사진 경향신문DB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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