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이번에 깨달았을 것"..'악명높은' 애플의 비밀주의

배성수 2021. 2.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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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 유출 당 600억 벌금..CIA보다 더 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10월12일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배경인 무대에서 신제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AP
원 모어 띵!(One more thing)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생전 아이폰 등 신제품 발표회 중에 즐겨했던 말이다. 잡스는 종종 발표 도중 마무리 발언을 하고 퇴장할 것처럼 하다 신제품이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로 하나 더 깜짝 공개하며 이같이 말하곤 했다. 애플 유저들은 이같은 잡스의 새로운 발표에 매번 찬사를 보냈다.

잡스가 이처럼 '원 모어 띵'을 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 제품의 혁신성도 있었겠지만, 이를 더 극대화한 건 애플 특유의 '비밀주의'에 있었다는 평가다. 애플은 신제품을 직접 공개하기 전까진 대내외에 '입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다른 제조사들과 달리 애플의 신제품은 좀처럼 스펙이 사전 유출되는 경우를 보기 어렵다.

이같은 기업문화는 애플이 그 어느 기업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협력업체를 두고 있어서다. 아이폰, 맥북 등 제품 구동에 필수적인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애플은 그 어느 제조사보다 더 많은 반도체를 구매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60조원어치에 달하는 반도체를 사들였다. 2위 삼성전자(20조원)보다 3배 많다. 

애플은 이처럼 수많은 국가의 다양한 업체와의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기업보다 '유출'에 대한 리스크가 높다. 애플은 이 때문에 '악명 높은' 비밀유지 계약(NDA)을 협력사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제품 출시 때마다 '놀라움'을 강조해온 잡스의 철학에 따라 애플은 모든 협력사에 NDA를 요구하고, 이를 어길시 대규모 위약금을 부과해왔다. 

애플카 렌더링 이미지/사진=애플인사이드 캡처


애플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협력사가 받아들일지 않을 경우 성사 직전까지 도달했던 협상 테이블도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애플과 협업을 진행한 국내 부품업계 고위 관계자는 "애플은 허락 없이는 프로젝트 종료 전까지 그 어떤 내용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도록 한다"며 "사내에서조차 '애플'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내 또 다른 부품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비밀주의가 미 CIA(중앙정보국)보다 더 하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애플의 과도한 비밀주의 집착은 때때로 파트너사, 협력사에 과도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 과거 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GT어드밴스드테크놀로지스'가 파산하는 과정에서 애플 NDA의 실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 회사가 애플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애플은 비밀유지 계약 1건이 깨질 때마다 약 599억원(5000만달러)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을 달았다.

애플은 내부 입단속도 철저하다. 미 경제지 포춘 선임기자가 10여년 전에 쓴 책 '애플인사이드'를 보면 애플은 내부 직원들에게도 정보 유출을 강력하게 금하고 있다. 심지어는 애플 직원들은 동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조그마한 정보라도 유출되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보상금을 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애플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며 직원들은 꼭 알아야 할 것만 공유한다고 말한다. 애플에서 직원 개개인은 퍼즐의 한 조각이며 이것을 모두 끼워 맞췄을 때의 모습은 최고경영자만 안다는 것이다. 특히 애플 보안팀은 정보누설자를 찾아내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과학수사) 기법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기아차 양재사옥


현대기아차그룹과 애플 사이의 전기차 관련 협력이 최근 중단됐다고 공식 발표된 가운데 그 배경 중 하나로 '현대차의 비밀누설'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언론을 통해 전기차 협력 내용이 지속 유출되자 화난 애플이 협상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미 CNBC는 "애플과 거래하는 기업은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된다"라며 "현대차는 이번 사태로 교훈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현대기아차 외에 또 다른 협력사를 찾아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경쟁사 대비 자율주행 기술 수준이 낮아서다. 미 캘리포니아주 차량국(DMV)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의 자율주행 차량의 이탈률은 약 233km(145마일)에 그쳤던 반면 구글 알파벳 산하 '웨이모(Waymo)'의 이탈률은 약 4만8280km(3만마일)에 달했다.

애플 전문 매체 '애플 인사이더'는 투자은행 웨드부시 보고서를 인용해 애플이 올 상반기 중 애플 아이카 제조 파트너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직 협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현대차부터 폭스바겐 혹은 닛산 등 어느 업체가 애플과 손을 잡을 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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