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도 공매도 하는 시대..'득일까 실일까'
개인 공매도 불신 해소해야..'증권사엔 인센티브' 제언도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공매도(空賣渡) 거래는 그동안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공매도 주식을 빌려오기 힘들었던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사실상 공매도 거래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나 오는 5월3일 대형주 공매도 거래 재개와 함께 개인들도 공매도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개인 대주서비스 확대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개인들 사이에서는 공매도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외국인과 기관에 비해 정보력과 자금력이 딸리는 개인이 공매도에 나섰다가 큰 손실만 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정반대 투자기법인 신용거래융자에 대한 개인들의 활용도를 보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개인 공매도 활성화 제도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공매도 투자 경험이 축적돼야 하고, 개인에게 대주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개인들의 공매도에 대한 강한 불신이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무차입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제도화했으며 공매도 사전교육 및 초기 투자한도 3000만원 제한 등의 정책을 마련 중이다.
◇개인도 공매도 주식 쉽게 빌릴 수 있는 환경 조성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증권사로부터 빌려서 판 뒤 실제로 주가가 내리면 이를 싼 가격에 다시 사들여서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내려가는 게 공매도 투자자에게는 이익이다. 그런데 전체 공매도 거래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1%뿐이다. 신용도와 담보력이 낮아 증권사로부터 주식 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는 개인도 공매도를 위한 주식을 안정적으로 빌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른바 'K-대주시스템'의 도입으로 개인에게 대주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 수를 현재 6곳에서 향후 최대 28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공매도가 대형주(코스피200·코스닥150) 중심으로 재개되는 5월3일부터 개인에 대한 주식 대여 시장의 규모를 2조~3조원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르면 이달 안에 개인 공매도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개인 대주서비스 확대 작업을 진행 중인 증권금융은 지난달 말 전담조직(증권유통금융팀)을 꾸리고 증권사들의 대주서비스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독 권하는 위험한 정책" vs "상·하방 투자 수단 모두 제공"
그렇다면 개인도 공매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가 개인에게는 과연 득일까, 실일까. 우선 신용도, 정보력, 위험감수 능력 등이 외국인·기관보다 낮은 개인에게 공매도 기회를 확대할 경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 시 원금까지만 이익이 가능하지만, 주가 상승 시 원금 이상의 손실을 볼 수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독을 권하는 위험한 정책이다. 독도 약으로 쓸 수 있지만 일부에게만 해당되듯이 개인 공매도가 확대되면 개인의 피해를 더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십년 간 내공이 쌓인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전략을 개인이 따라하는 것은 기름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위험하다"며 "공매도로 한탕을 노리는 개인이 늘어나면 장기투자 문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투기판이 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정재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도 "공매도라는 거래기법은 굉장한 전문성을 요구한다"면서 "공매도와 비슷한 성격의 상품인 인버스(하락장에 베팅)와 곱버스(인버스 2배)에서 개인은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 대주 기회를 확대하면 공매도에 투자하는 개인의 손해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매도가 주가가 내릴 것을 예상하는 투자라면, 신용거래융자는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실제로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다.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로, 개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는 투자기법이다. 개인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2조원(8일 기준 21조5833억원)에 육박할 정도다. 이에 따라 투자 방향성만 다를 뿐, 신용거래융자와 동일한 작동 구조를 갖는 공매도만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다양한 투자 수단을 갖는 게 개인에게는 유리하다는 반론도 있다.
황세운 상명대 DnA랩 객원연구위원은 "개인 공매도 활성화는 개인에게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매도는 신용거래융자와 방향성만 다르지, 사실상 동일한 제도다. 주가가 항상 상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방과 하방 양쪽에 대한 투자 수단을 모두 제공하는 게 개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거래 뿐만 아니라 전체 주식시장 거래에서 기관과 외국인의 자금과 정보력이 뛰어난데, 이를 이유로 공매도를 반대한다면 개인의 주식투자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공매도 불신을 해소해야…'증권사엔 인센티브' 제언도
다만 공매도 거래는 일반 주식거래보다 더 큰 위험성이 내재돼 있는 게 사실인 만큼, 개인 보호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번에 금융위가 투자자 유형별 차입한도를 설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초기 투자한도는 3000만원까지, 최근 2년 내 공매도 횟수 5차례 이상이고 누적차입규모 5000만원 이상일 경우 7000만원까지로 설정될 예정이다. 공매도 투자경험이 2년 이상이거나 개인 전문투자자에 대해서는 차입한도를 두지 않을 예정이다. 또 공매도에 처음 투자하는 모든 개인에게는 사전교육과 차입-매도-매수-상환의 실제 투자절차를 반영한 모의투자가 의무화된다.
무엇보다도 공매도에 대한 불신이 깊은 개인들이 공매도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금융위가 다음달까지 시장조성자인 증권사 4곳의 무차입 불법 공매도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금융위는 또 공매도 거래와 관련한 불법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유관기관들과 시스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나아가 대주주나 임원의 지인 등 차명계좌를 이용한 대규모 공매도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투연의 정의정 대표는 "거액의 증권 차명계좌가 개인 공매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금융당국은 개인 공매도 확대 시행 전에 증권 차명계좌를 색출해 세금을 추징하고 불공정 거래에 악용되는 것을 사전에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에 대한 대주서비스가 증권사의 신용공여 한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신용공여 규모가 제한됐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신용공여 한도에서 대주서비스는 제외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이 증권사에서 주식을 빌릴 때 현금 담보를 확보하도록 하고 최소 담보비율을 설정하는 등의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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