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 온다는데" 투자 표류하는 삼성..저만치 앞서간 TSMC
TSMC, 日에 2100억 투자해 반도체 R&D 거점 설립
공격적 투자로 시장 1위 확고히 하자는 전략
삼성전자, 뚜렷한 투자 계획 없어
"이재용 부재로 신사업·투자 영향…경쟁 뒤쳐질 것"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세계 1위 대만 TSMC는 올해 초 31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고, 최근 일본에 반도체 후공정 개발회사 설립을 예고하는 등 시장 수성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방향성만 잡혀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반도체 슈퍼 사이클(장기호황)이 예상됨에 따라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함에도 리더십 부재로 보폭을 넓히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와 업계 등에 따르면 TSMC는 200억엔(약 2117억원)을 투자해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반도체 후공정 개발회사를 설립한다. 이를 위해 TSMC는 조만간 이사회를 통해 일본 진출 계획을 의결하고, 이번 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14일(현지시각)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 28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80억달러는 지난해 투자액 172억달러(약 19조원)보다 63% 많은 수치다.
TSMC의 공격적인 투자 행보는 최근 세계 반도체 시장 전반이 공급 부족(쇼티지)을 겪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증설을 통해 반도체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면 수익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란 계산이다. 특히 성능이 높으면서 전력소모는 낮은 미세공정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주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TSMC는 과감한 설비투자를 통해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현재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미세공정이 가능한 반도체 회사는 세계에서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TSMC의 일본 반도체 개발회사 설립은 최근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패키징(후공정)과 관련이 있다. TSMC는 그간 각종 공정으로 반도체 소자가 늘어져 있는 기본 원형판인 웨이퍼를 만드는 전(前)공정에 특화돼 있었는데, 앞으로는 만들어진 웨이퍼를 자르고(절삭), 포장(패키징)해 제품화(어셈블리)하는 후(後)공정에도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에는 이런 후공정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많이 있고, 이들과의 시너지를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도 120억달러(약 13조3000억원)를 들여 5나노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300㎜(12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월 2만장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엔비디아와 애플을 주요 공급처로 둘 예정이다. 최근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이 공장 직원 300여명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했다.
대만 타이난시 남대만과학공원(STSP)에는 7000억타이완달러(약 27조7100억원)가 투입된 3나노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게 TSMC의 계획이다. 해당 공장은 이번 춘제(春节·설연휴)에도 쉬지 않고 건설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증권가가 올해 36조원의 설비투자를 예상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36조원도 어느 분야에 얼마만큼 사용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TSMC가 버티고 있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11조원이 전망되는데, TSMC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증설도 170억달러(약 18조8000억원)가 투입될 것이라는 예측만 나왔을 뿐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삼성전자가 이 투자를 전제로 텍사스주·오스틴시 정부에 세제 혜택을 요구했다는 보도 등이 있었다. 다만 삼성전자는 오스틴 외에도 애리조나, 뉴욕 등도 투자지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의 경기 기흥, 평택캠퍼스 역시 투자 후보지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후보지가 거론된다는 건 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일 염려가 있다"며 "신속한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투자에 진척이 전혀 없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가 꼽힌다. 이 부회장은 사내 메시지를 통해 "제가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삼성은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했지만, 과감한 투자는 결국 오너의 결정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 언론 등도 이 부회장 수감 당시 리더십의 부재가 삼성전자의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업계는 이 부회장의 1년 6개월간 공백으로 신사업과 대규모 투자 결정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의 경쟁 회사들은 과감한 투자를 전개하고, 때로는 M&A 등으로 힘을 모으면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이런 경향에 약간 벗어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적기에 투자를 놓칠 경우 경쟁자를 따라잡기는커녕, 도태되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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