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6년째 소외 이웃에 도시락 배달한 노화자씨.. "나이 일흔에도 할 일 있다는 것에 감사"

이은영 기자 2021. 2.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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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4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센터.

1996년부터 이곳 주민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노씨는 지난 2006년 가리봉동 자원봉사 캠프장을 맡게 되면서 반찬 배달을 시작했다.

노씨는 반찬 배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이웃의 권유로 한식 뷔페를 섭외했다.

노씨는 "눈 뜨면 갈 데가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나이 일흔에 이렇게 활기차게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며 "남을 돕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나를 위한 봉사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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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4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센터. 이곳 한 켠에 있는 다용도실에서 고소한 반찬 냄새가 풍겨왔다. 가리봉동에 사는 홀몸 어르신과 같은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할 도시락이었다. 이들을 위해 올해로 16년째 반찬 배달을 하고 있다는 노화자(70)씨를 만났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센터에서 노화자씨가 배달할 반찬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구로구청 제공

1996년부터 이곳 주민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노씨는 지난 2006년 가리봉동 자원봉사 캠프장을 맡게 되면서 반찬 배달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매달 두 번씩 자원봉사자들과 직접 반찬을 만들어 배달했는데 비용과 시간 문제 때문에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노씨는 반찬 배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이웃의 권유로 한식 뷔페를 섭외했다. 주로 낮 장사를 하는 한식 뷔페를 섭외해 점심에 팔고 남은 반찬들을 얻어오는 것이다. 그는 "식당 음식이다보니 자원봉사 학생들과 직접 만든 것보다 품질이 뛰어나고 양도 넉넉했다"며 "뷔페식당 반찬을 받게 된 이후로는 매주 월, 수, 금요일 반찬 나눔을 하고 있다. 도와주시는 사장님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노씨에게 고정적으로 반찬 나눔을 받는 가구는 홀몸 어르신과 장애인 등 15~20가구다. 직접 반찬을 받으러 오는 이웃도 있지만, 고령이거나 거동이 어려운 이웃에게는 직접 찾아가 반찬을 배달하는 식이다. 노씨는 "얼굴 뵌 김에 말벗도 해드리고 필요할 경우 간단한 청소도 도와드린다"며 "어르신들께서 ‘감사하다’면서 뭐라도 손에 쥐어주려 하시는데 염치 없이 그걸 어떻게 받겠나"라고 했다.

지난 8일 오후 노화자씨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민센터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구로구청 제공

노씨는 유년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이득 보려고 욕심내지 말고 항상 손해보고 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노씨는 "부모님은 밀 농사를 지으셨는데 집에 보따리 상인이 올 때면 방앗간에서 찧고 남은 밀가루를 싸주곤 했다"며 "부모님으로부터 늘 베푸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회상했다.

노씨가 25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가족들의 도움도 컸다. 노씨는 "가족들은 내가 밖에 퍼다주는 걸 좋아한다. 남편은 ‘다 퍼줘도 좋으니 기둥 뿌리만 남겨달라’고 농담하기 일쑤"라며 "부녀회장 시절 남편이 의류업에 종사했는데, 공장에 남아있는 신발 재고를 한 트럭을 떼어와 구청 알뜰시장 행사에서 켤레당 2000원에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딸 자랑도 잊지 않았다. 노씨는 "딸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매년 선행상을 받았다. 이것 하나만은 정말 자랑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아쉬움도 있었다. 뷔페 영업이 제한되면서 반찬의 양이 줄기도 했고, 소외된 이웃을 대상으로 한 여러 행사도 줄취소됐기 때문이다. 노씨는 "아무래도 식당 장사에 따라 영향을 받는 만큼, 식당 손님이 없어 준비를 덜 하게 되면 잔반도 줄어 15가구도 못 줄 때가 간혹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코로나 이전에는 주민센터에서 단기 뜨개질 강습을 열고 수세미와 냄비받침 등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다"며 "분기별로 홀몸 어르신들 50~60명을 불러 생신잔치도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르신들에게는 세 달에 한 번 있는 행사가 마을 잔치인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노씨는 "눈 뜨면 갈 데가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나이 일흔에 이렇게 활기차게 살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며 "남을 돕기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나를 위한 봉사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자원봉사 활동에는 기약이 없었다. 노씨는 "가리봉동에는 쪽방, 벌집촌이 많아 어려운 이웃이 많이 산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봉사할 생각이다. 올해도 그저 건강만 하면 소원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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