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 핼미는 눈물에 밥 말아"..할머니 시인은 또 울었다
정인이 왔어요
라고
큰 소리로 외치거라
부서진 몸
몰라볼 수 있으니
또박또박
정인이라고…
정인이가 떠난 묘에 놓인 한 편의 시(詩). 곱게 적힌 세 장의 손편지엔, 16개월만에 숨진 아가 소식에 울었던 애달픈 할머니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인이 언 몸을 할미 품에 녹여주고, 새벽별을 따다 호롱불로 만들어 이승 떠날 때 어두운 길 밝혀주고 싶다고. 그러면서 5일간 손수 지은 설빔 옷을 수목장에 함께 두고 떠났다.
'과천에서, 심현옥 할머니가.' 그렇게만 남긴 그의 손편지는 세상을 울렸다. 나이 쉰 먹었단 이는 사무실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어떤 이는 지하철서 읽다 울음을 참지 못해 내렸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구는 횡단보도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한참을 울었단다. 정인이를 보며 슬픈 마음 달랠 길 없었던 많은 이들이 소중한 시 한 편에 그리 울고 위로를 받았다. 할머니 시를 전한 기사 댓글창이 '추모 공간'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이리 고운 시를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꼭 한 번 만나고 싶어 어렵사리 수소문해 찾았다. 심 할머니는 '인터뷰'란 말엔 손사래를 치고, "그냥 차 한 잔이나 하자"며 만남에 응했다. 지난 5일, 다정하고 소담한 정원이 정스런 심 할머니의 과천집을 찾아 대화를 나눴다. 실은 그는 등단한 시인이었으나, 할머니란 말을 더 많이 했다. 그리고 나와 만나는 한 시간 동안 세 번이나 울었다.
기자: 선생님이 쓰신 손편지에 많은 분들이 울었지요. 저도 울었습니다.
할머니: (기사 댓글을) 저도 하나하나 보며 너무 많이 울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마음이라서요. 남편도 같이 펑펑 눈물을 흘렸고요.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울렸는데, 그 사람들은 떼로 와서 날 울리고 있구나', 그랬습니다.
기자: 정말 꼭 만나뵙고 싶었어요.
할머니: 잘 오셨어요. 기자님이 제 손편지 글이 묻힐까봐 다른 글은 절제했다고 하셨잖아요(그래서 기사에 심현옥 시인의 손편지만 썼었다). 작은 표현인데 큰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기자: 기사가 나서 조금 놀라셨지요?(웃음)
할머니: 3일은 몰랐는데, 지인들이 막 전화가 오더라고요. "선생님 맞으시죠? 선생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요. 무슨 소리인가 했어요.
기자: 정인이 소식을 듣고 처음에 어떠셨을지요?
할머니: 뉴스에서 보고 기절할 뻔했어요. 내가 이걸 잘못 들었나 싶었고요. 3일은 밤새 울었어요. 소리내어 운다는 게 민망하기도 했고요. 가슴이 저리다 멎을 것 같고…한쪽이 다 녹은 것 같았어요. 어린 애기를 어쩌나, 하도 울고 눈이 부어서 딱 붙어버렸지요.
기자: 그 작고 예쁜 아이를 말이지요. 어떻게 그랬을까요.
할머니: 정인이가 자고 나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이름만 불러도 철렁했을 거고, 아무도 말려주지 않는데 두들겨 맞고 손이 마디마디 새파래서 다 부러졌을 거고요. 가만히 있잖아요. 너무 아프니까 울지도 못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 가슴이 아프죠.
그러면서 심 할머니는 손주들이 어렸을 때 만든 석회 조각을 보여줬다. 손과 발이 아주 작고 귀여웠다. 손주들의 16개월 때(정인이가 숨진 나이)를 기억하냐는 물음에 그는 "똥을 싸도 예쁘고, 울어도 예쁠 때"라고 했다. 그러더니 심 할머니는 옥수수알 같은 손발을 만지며 "요런 애기를 때렸다는 거 아니에요, 아우 진짜 가슴 아퍼"하며 눈물을 훔쳤다. 양부모를 최고로 혼내줘야 한다며.
기자: 그래서 손편지를 쓰게되신 걸까요?
할머니: 새벽에 엉엉 우는데 남편이 자릴 피해주더라고요. 실컷 울라고요. 새벽 1시에 정인이를 생각하며 습작한 거예요. 눈물이 흐르는데 그렇게 뜨거운 줄 처음 알았어요. 아파서 그래요. 피눈물이 난 거지요.
기자: '정인이 왔어요, 큰 소리로 외치거라' 여기서 눈물이 왈칵 고이더라고요.
할머니: 휘익 날아가던지 어두컴컴한 길을 그 어린 아이가 혼자 갈 거잖아요. 어딘가에 문이 있을 거고요. 혹시 몰라볼까봐 크게 외쳐달라고, 그렇게 한 거지요.
기자: '아가야 아가야, 세상이 원망스러워도 뒤돌아 손 한 번 저어주고 가려므나', 이렇게 얘기하신 건 어떤 마음이셨을지요.
할머니: 애기가 생명이 다하는 순간, 얼른 그냥 가버릴 것 같은 거예요. 깜짝 놀라서 뒤도 안 돌아보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울고 있으니까 한 번 돌아봐라. 좋은 할머니도, 이모도, 삼촌도 있으니까, 손 한 번 저어달라고. 그런 마음이었어요.
심 할머니는 그 말을 하며 또 눈물을 훔쳤고, 나도 따라 울었다. 함께 휴지를 뽑고, 잠시 동안 말없이 찻잔만 기울였다. 고소한 보이차를 넘기며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일지. 그래서인지 그는 시에서도 미안하단 얘길 참 많이 했었다.
기자: 손녀를 잃어버린 기분이셨을지요.
할머니: 할머니로서 손녀 하나 지키지 못한 거예요. 어른들 책임이지요. 정인이를 한 번만 안아줬으면 원이 없겠는 거예요. 요렇게 예쁘게 안아주고 싶어요. 포근하면 살아날 것 같은. 사진 보며 울고, 얘기하며 울고, 계속 눈물만 나지요.
기자: 설빔 옷도 할머니 마음으로 만들어주신 걸까요.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을 누가 정성 쏟을까 싶어서요. 함부로 화장해서 이렇게 할 것 같아서, 수의처럼 입고 가라고 옷을 만들어준 거지요. 모자랑 버선도 만들고, 가는 길 어두울까 싶어 호롱불도 하나 만들고요. 만들다가 쉬었다가, 그렇게 5일 동안 했어요. 어설프기도 하지요.
기자: 정인이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거예요.
할머니: 그러면 좋겠어요. 우리 애기는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아요. 모습만 사라지고 정신은 살아 있는 거지요. 그 작은 몸이 떠나며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간 거니까요. 젊은 부모들이 '내가 네 엄마다, 아빠다' 다 나서잖아요. 좋은 사람도 많은 거지요.
기자: 정인이에게 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할머니: 다시 세상에 환생해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은 엄마, 아빠에게로. 정인이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 할머니들이 무지하게 많죠. 저는 순위도 안 올 거예요. 다른 할머니들이 더 잘해주지요.
시인도 할머니이기 전에 엄마였다. 아들 둘을 키울 때였다. 스물 다섯에 결혼해 한 해 뒤에 낳았단다. 일하느라 아기들을 떼어놓아야 했고, 맘껏 예뻐하지 못했다. 철이 없었다고 했다. 그게 아픔으로 남았고, 항상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다시 되돌리면 잘해보고 싶다고. 그 새벽, 정인이에게 편지를 쓰며 그 일들을 참회하듯 떠올렸다고 했다.
인생 사는 게 전부 시라며, 아들이 결혼할 때 쓴 시도 있다고 했다. 호텔에 들어가 둘이 있을 때 보라고 했단다. 내게도 보여달라 했더니 쑥스러워하며 가져왔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잎사귀도 시간이 깃들면 저토록 고운 빛갈을 지니듯 둘이 서로 향기롭게 스미는 삶이기를.
그 어느 시간도 한치 소홀함 없는 저녁 노을보다 깊고 참한 나날이기를.
이 세상 가장 양지바른 자리에 꽃처럼 두고 싶은 나의 기도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 며늘아.
심 할머니, 그리고 시인의 삶을 이토록 곱게 지탱해 온 가치는 뭘까. 그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착하게 살아야지요. 세상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돼요. 남을 잠깐 속여도 자기를 절대 속일 수 없지요. 착하게 사는 게 훨씬 쉬운 거예요. 나쁘게 살려면 머릴 얼마나 굴리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제일 쉬운 방법으로 사는 거예요, 저도."
정인이의 설빔 때때옷
아가야
할머니가 미안해
친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아빠 다
어디들 있는게냐?
한 번도 소리내어 울어보지 못했을
공포 속에 온몸 다디미질을 당했구나
췌장이 터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아가야
어찌 견디었느냐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푸른하늘 한조각 도려내어
내 손녀 설빔 한 벌 지어줄게!
구름 한줌 떠다가
모자도 만들고
정인이 눈을 닮은 초승달
꽃신 만들어
새벽별 따다가
호롱불 밝혀주리니
손 시려 발 시려
온 몸이 얼었구나
할머니 품에
언 몸 녹으면
따뜻한 죽
한 그릇 먹고 가거라
지리산 호랑이도
새끼를 잃으면
할머니 울음을 울겠지
아가야 아가야
세상이 원망스러워도
뒤돌아 손 한 번
저어주고 가려므나
걸어서 저 별까지 가려면
밤새 지은 할미
천사 옷 입고 가야지
천사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제
정인이 왔어요
라고
큰 소리로 외치거라
부서진 몸
몰라볼 수 있으니
또박 또박
정인이라고…
아가야!
너를 보낸 이 핼미는
눈물에 밥을 말았다
2020년 1월 17일 일요일
과천에서 할미(심현옥 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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