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차례상은 잘못됐다고?

강은경 기자 2021. 2. 12.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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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의 퇴계 이황종가에서는 설 차례상에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음식을 올린다.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설 차례상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설은 세배와 차례 문화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금지돼 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4인까지만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설 연휴에는 객지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모여 세배를 주고받는 광경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자연스럽게 차례음식의 가짓수와 양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술 한 잔, 차 한 잔, 제철 과일 한 쟁반'


한국국학진흥원이 2017년부터 제례문화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서(禮書)와 종가, 일반가정의 설 차례상 음식을 조사한 결과 예서와 종가에 비해 일반가정의 차례 음식이 평균 5~6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안동의 퇴계 이황종가에서는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음식을 차린다. 과일 쟁반에는 대추 3개·밤 5개·배 1개·감 1개·사과 1개·귤 1개를 담았다.

일반가정에서는 차례상에 어류와 육류, 삼색 채소, 각종 유과 등을 포함해 평균 25~30가지의 음식을 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는 모습. /뉴스1
반면 일반가정의 차례상에는 평균 25~30가지의 음식이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일은 종류별로 별도의 제기에 각각 담아내고 그 외 어류와 육류, 삼색 채소, 각종 유과 등을 차례상에 올린다.
제례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에 따르면 설날은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간단한 음식을 차려두고 인사를 드리는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설 차례상의 경우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도 한번만 올리며 축문(조상에게 올리는 글)도 읽지 않는다.

이같은 이유로 설날과 추석에는 '제사(祭祀)를 지낸다'고 하지 않고 '차례(茶禮)를 올린다'고 표현한다. 

한국국학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전통 격식을 지키는 종가의 설차례상 역시 '주자가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황종가의 경우 '주자가례'의 지침에서 차를 생략하고 떡국과 전, 북어포가 추가한 정도로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차례상을 올렸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전통과 달라진 현대 차례 문화에 대해 차례 음식은 원래 간소하게 구성됐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유통구조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종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도한 차례 상차림… 올해는 줄어들까


명절과 기일에 행하는 차례와 제례는 조상을 기억하기 위한 문화적 관습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기간 지속된 전통이다. 다만 과도한 차례상 차림으로 인해 가족 사이의 갈등이 야기돼 여러 사회문제를 초래한다면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설은 코로나19 재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보내는 '비대면 명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2021년 설 승차권 온라인 예매가 시작된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역 예매창구가 한산한 모습. /사진=뉴스1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올해 설 연휴엔 가족들이 모이지 못해 집집마다 차례음식을 줄인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에 사는 50대 주부 이정원씨는 딸이 수능을 보던 해 이후 올해 처음으로 설 연휴 동안 시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 모든 가족들이 올해는 시댁에 가지 않고 각자 연휴를 보내는 것에 동의했다. 이씨는 "지난해 추석부터 큰집이 차례를 단촐하게 지내기로 했다"며 "매번 수도권에 거주하는 네 가구가 모였지만 시댁 마을에 어르신도 많고 가족들 안전도 고려해 미리 결정했다"고 밝혔다.

20대 미혼 류환희씨(서울 거주)는 "올 설 연휴는 비대면으로 보내는 게 당연하다"며 "큰집에서 먼저 오지 말라고 하더라. 대신 부모님과 4일 동안 연휴를 즐길 예정"이라고 반겼다.

수원에 사는 20대 미혼 신유원씨도 "덜 만나고 덜 고생하는 명절이라 좋을 것 같다"며 "설 연휴를 마음의 짐으로 느끼는 사람한테는 부담을 더는 연휴가 될 것 같다"고 이번 비대면 명절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바쁜 현대인… 달라지고 있는 차례 풍경


코로나19 장기화로 '집밥족'이 늘면서 간편식 매출도 급증했다. 사진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시민들이 간편식품 코너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종가집처럼 술 한 잔, 과일 한 접시는 아니더라도 이미 차례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9년 냉동 가정 간편식 시장규모는 1조1666억원으로 2016년도 9247억원 대비 26.2% 증가했다. 이마트가 2019년 설 직전 일주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 '간편식 차례음식' 매출은 2년 전인 2017년보다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절에 간편식 및 즉석조리식품 매출이 증가하는 이유는 가족 구성원이 줄고 맞벌이 비중이 높아져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식품업계와 유통사들은 명절 기간 홀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한 '1인 한상차림' 아이템을 내놓거나 가정간편식 제수용품 물량을 늘리고 있다.
최근 한 유통업체는 가정간편식 자체브랜드의 제수용품 물량을 20% 확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업체는 코로나19로 많은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만큼 명절음식을 대량으로 만들기보다 한 가족이나 개인이 먹을만큼만 준비하는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판단한다. 

한국국학진흥원도 올해 설 연휴에는 코로나19 방역으로 가족들이 모이지 못해 집집마다 차례음식을 줄일 것으로 예상한다. 진흥원 관계자는 "주자가례와 종가에서 하는 것처럼 술과 떡국, 과일 한 쟁반을 기본으로 차리되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 약간씩 추가해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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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경 기자 eunkyung5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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