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기반 없으면 위기 때 탄식" 車반도체·마스크 공급난의 교훈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2021. 2. 1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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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동차 업계, 반도체 부족에 '비상'
올 3분기까지 부족 사태 지속될 듯
각국 부랴부랴 반도체 생산 기반 구축 나서
마스크 부족 당시에도 생산기반 없는 유럽 다수국 애 먹어
핵심 제조업, 과도한 외국 의존 안돼..자국 생태계 조성해야
지난 8일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을 절반만 가동하기로 한 한국GM 부평공장의 적막한 풍경. /연합뉴스
[서울경제]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악몽에서 벗어나 회복을 꿈꾸던 자동차 업계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올해 백신이 도입되면 자동차 수요가 다소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 라인을 중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다소 줄어든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야 나겠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아주 큰 산업입니다. 자동차 산업에는 완성차 업체를 정점으로 수많은 부품업체가 존재하고 수만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반도체 하나가 없어 차량을 못 만들면 영세한 부품업체들이 도산하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실제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반도체 부족 탓에 직원의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휴직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까지 멈추면 그 경제적 파장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북미 지역 3개 공장의 감산 조치를 다음달 중순까지 연장키로 했습니다. 미국 캔자스주 페어팩스, 캐나다 온타리오주 잉거솔, 멕시코 산루이스포토시 등 북미 지역 3개 공장에서 최소한 다음달 중순까지 감산을 이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감산 연장의 영향을 받는 차량은 쉐보레 말리부, 캐딜락 XT4, 쉐보레 이쿼녹스, GMC 터레인 등입니다. GM은 미국 미주리주 웬츠빌과 멕시코 라모스아리스페 공장의 가동률도 이미 낮춘 상태입니다.

포드도 아직 조립을 끝내지 못한 차량 일부를 그냥 세워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드는 올 1분기 차량 생산이 10∼2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도 올 1분기 중국 5만 대를 비롯해 총 10만 대가량의 생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우디는 1만여 명이 휴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1월 승용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7% 감소했고 특히 재고량이 20.2% 줄었습니다. HS마킷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은 올해 1분기에만 67만 대 분량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반도체 공급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한대에는 200~3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입니다. 그런데 MCU는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전세계 공급량의 7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는 수익성이 낮은 반면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을 요구하고 결함 발생과 안전사고 시 리콜 등의 추가적인 부담까지 져야 해 신규 업체 진입이 쉽지 않습니다. 다른 파운드리 업체로부터 공급을 받으려 해도 반도체 재설계, 시제품 안정성 확인 등에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최소 올해 3분기까지는 공급 차질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완성차 업체들은 아직은 버틸만 합니다. 우선 국내 자동차 판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차·기아는 2개월치 재고를 확보한 상태라고 합니다. 르노삼성과 쌍용차는 아시다시피 반도체 부족은 문제가 아닌 회사들입니다. 르노삼성은 최근 판매량이 급전직하하고 있고 법정관리를 앞둔 쌍용차는 아예 공장이 멎춰 서 있습니다. 한국 GM이 반도체 부족으로 부평 2공장의 가동률을 절반으로 낮췄지만, 이는 본사의 정책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반도체 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현대차·기아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로 각국은 핵심 부품의 외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도 “우선 대만에 반도체 공급 확대를 요청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 팹리스와 파운드리, 완성차 업체간 차량용 반도체 수급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에서 생산되는 작은 부품 하나로 국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된 것을 기억하시죠? 유럽에서는 코로나 19 초기 자국 내에 마스크 생산 기반이 없는 국가들이 마스크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마스크 생산 기반을 가진 국가들은 우선 자국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수출은 당연히 뒷전이지요. 위기 상황에서는 우방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명품 패션 브랜드 ‘버버리’로 유명한 영국은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구하지 못해 비닐봉지를 쓰고 환자를 돌보는 코미디를 연출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버버리는 상표만 영국일뿐 실제 생산은 포르투갈 등 인건비가 싼 다른 나라에서 이뤄집니다.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를 보유했지만 자국 내 제조업 기반이 없다보니 정작 위기 때 방호복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불쌍한 나라로 전락한 것입니다.

결국 국내 제조업 기반이 없다면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부족 사태와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가 일깨워준 것입니다.

우리 정부도 핵심 제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국내 생태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상시에 다른 나라에 손벌리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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