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IN여의도] 최기상 "법관 탄핵, 민주주의 한 단계 발전 계기"

송주원 2021. 2. 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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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지난 제21대 총선에서는 법조인이 총 46명 당선됐다. 어느 때보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등 중요한 법조 이슈가 많아 이들의 입법부에서 활동이 주목된다. <더팩트>는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에게 법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 <법조IN여의도>를 마련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이어 판사 출신인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본다.<편집자주>

21년 법관 생활 뒤 국회 둥지 1년…"법관 인사에 국민 참여해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탄핵 소추를 걱정하는 분들은 '헌정사상 초유'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법원에 있을 때 늘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보통 시민들이 법원에 재판하러 오시는 것도 인생 초유의 일입니다. 우리나라 입법·사법 시스템이 법관 탄핵 문제를 논의하고 국민께 과정을 보여드린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민주주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화두인 '법관 탄핵'을 놓고 이같이 전망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인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이 곧 민주공화국의 핵심 주축을 떠받들 지지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20년 8개월의 법관 생활을 뒤로하고 여의도 국회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1년. 법대에서 정제된 법률 용어만 쓰던 때에 비해 자유로운 국회 생활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판사나 국회의원이나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는 건 똑같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는 최 의원을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최 의원은 정계에 입문한 이유로 '변화무쌍한 외부 환경에도 철옹성처럼 바뀌지 않는 법원 내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라고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지내는 등 법원 안에서도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러모로 한계를 느껴 법원을 나오게 됐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괄목할 만한 자정 작용이 없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제가 판사로 20년 8개월을 일했어요. 바깥 사회는 변화무쌍하고 국민의 어려움과 힘듦은 깊어지고 많아졌는데 판사의 재판은 그런 내용을 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드러났고 그 충격은 법원 내부와 국민 모두에게 엄청났어요. 그런데도 법원 내부의 자정 작용은 잘 이뤄지지 못했죠. 저도 내부에서 그런 일들(자정 작용)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여러 현실적 어려움을 느껴 법원을 나와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입법을 통해 사법 개혁을 이뤄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국회 입성 1년을 맞은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대에서 정제된 법률 용어만 쓰던 때에 비해 자유로운 국회 생활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판사나 국회의원이나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는 건 똑같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최 의원은 '국민 중심 재판'에 가장 갈증을 느꼈다. 최 의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국민께 재판 당사자로서 재판이 정말 좋아졌다고 느끼시는지 여쭤보면 좋은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 같다"라며 "법원행정처 폐지나 대법원장 인사권 최소화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됐지만, 사태 이후 만 4년이 다 돼 가는 지금 국민 중심 재판이라는 사법개혁의 핵심에 다다른 개혁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국민과 재판의 거리가 멀어지는 요인 중 하나는 '엘리트 의식'에 빠진 법관의 특권화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법조 경력자 사이에서 법관을 뽑는 '경력 법관 제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이른바 '스카이'(SKY) 캐슬에 갇혀 있다. 최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19년 임용된 669명의 법관 중 515명이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졸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서울대 출신 법관이 50.4%로 절반을 넘겼다. 상위 계층의 환경만 경험한 법관이 많은 현상은 보통의 시민이 갖는 법 감정과 동떨어진 재판 진행·판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번진다.

"법원에 있을 때부터 고민이 많았던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명문대 출신 판·검사가 많긴 했지만, 그분들이 어린 시절 겪은 환경은 다양했거든요. 그러나 최근에는 서울의 특정 고등학교, 지방으로 내려가도 그 지방의 요지에 위치한 특정 고등학교 출신에만 편중돼 있어요. 국민이 판사도 나와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웃 중 한 명이니 판사의 판단 기준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기대와 믿음이 깨져버리니 사법 신뢰의 근본이 흔들리는 거죠. 법원의 신뢰 회복을 위한 궁극적 방안은 국민 구성이 다양한 것처럼 법관도 다양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 의원은 법관 인사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의원은 "재판에 관한 권한은 오롯이 법원에 있지만 재판 바깥의 영역, 사법행정의 영역은 법원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견해도 꽤 많다"며 "법원에 오롯이 맡겨두기보다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게 민주주의 공화국 정신에 맞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 의원은 대법원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수를 기존 11명에서 21명으로 늘리고 새로 늘어난 인원은 국민참여재판법상 배심원 자격을 가진 사람을 무작위 추출방식으로 선정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관 3명 △검사 2명 △변호사 2명 △법학 교수 2명 △비법조인 2명 등 11명으로 꾸려지는 현행 법관 인사위와 비교했을 때 '보통의 시민'이 법관 인사에 대폭 참여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이런 취지의 개정안은 무엇보다 법관 재임용 절차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 최 의원의 기대다. 헌법상 판사의 임기는 10년으로 정해져 있고 법원조직법에 따라 임기가 끝난 판사는 법관 인사위 심의와 대법관회의 동의를 거쳐 연임된다. 개정안대로 법관 인사위 심의에 국민이 참여한다면 법관이 10년 동안 재판을 어떻게 진행해왔고 앞으로도 재판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국민이 직접 검토할 길이 열린다는 설명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10년의 재판 과정과 결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재임용 절차입니다. 법관은 국회의원, 대통령과 달리 선출되지 않고 법원 내부 선발로 뽑힙니다. 법관은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는 독립된 상태에서 재판을 하기 때문에 잘못된 재판을 하더라도 법관이 책임지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 관한 부분은 헌법상 재판 독립 원칙 때문에 관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법관의 재판 수행 과정을 평가하고 간접적 책임을 묻기 위한 절차는 분명 필요하고, (법관 인사위 구성원 확대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인신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형사재판에 대한 고민도 깊다. 형사재판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례는 검찰권 남용과 직결돼 있다. 최 의원은 "헌법상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압수수색과 구속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사의 시작은 압수수색이고 정점은 구속영장 청구, 결말은 기소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라며 "이는 국민 중심의 형사재판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검찰권 남용을 견제해 인권을 지킬 최후의 보루는 법원이다. 국민이 검사와 동등한 지위에서 재판받기 위해서는 법관의 지휘와 판단이 중요하다. 최 의원은 "법원이 검찰의 권한을 견제할 수단은 결국 재판"이라며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 명백하다면 과감히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 한다. 검찰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기기 위해 피고인의 열람·등사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재판부가 나서서 정확히 지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장전담 법관 수 확대도 과제 중 하나다. 구속은 사람의 인신을 가둔다는 점, 압수수색은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무엇보다 엄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최 의원은 "압수수색과 구속은 최후화·최소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며 "특히 휴대전화와 컴퓨터, 이메일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디지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생활의 본질적 침해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압수수색 요건을 강화하고 영장전담 법관 수를 늘려 헌법에 맞는 판단이 도출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가운데, 사무실에 놓인 칠판에 '사법개혁', '검찰개혁'과 관련한 메모가 적혀 있다. /남윤호 기자

인터뷰가 진행된 4일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법관 중 한 명인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날이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법관 탄핵안이 가결된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헌법상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의 탄핵안 가결에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치권력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반대로 '법관'이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5년 일선 재판에 개입해 판결 내용을 수정하도록 지시하는 등 법관 독립을 침해한 혐의를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을 다룬 기사를 써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1심 재판, 2015년 쌍용차 집회와 관련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에 대한 체포치상 사건 등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은 잘못을 저지르면 재판을 통해 그 대가를 치른다. 법관 역시 잘못했다면, 그 잘못이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면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져야 한다. 사법개혁을 과업으로 삼은 법제사법위원, 그리고 약 21년 경력의 법관 출신으로서 최 의원이 법관 탄핵이라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문제 되는 사안은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의혹입니다. 재판의 독립은 법치주의·민주주의 핵심입니다.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은 형사책임이든 징계 절차든, 이번에 논의되는 탄핵 절차든 민주공화국의 핵심 주축인 법치와 민주를 지키는 일입니다. 탄핵 소추에 관해 걱정하는 분들은 '헌정사상 초유'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저는 법원에 있을 때 늘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보통의 시민들이 법원에 재판하러 오시는 것은 인생 초유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입법·사법 시스템이 법관 탄핵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국민께 그 과정을 보여드린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민주주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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