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국면 접어든 LG-SK '배터리 전쟁'.. 합의금 얼마나 나올까?

김경준 2021. 2. 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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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3조원 vs SK 8000억원 이견 커
LG "징벌적 손해배상시 최대 6조원 이상" 주장
'미래 예상 피해' 산정 어렵고, 역대 벌금과도 차이 커
SK "합리적 조건 하에서 협상 임할 것"
11일 서울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연합뉴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만 바라보며 평행선을 달렸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관련 합의 협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미국 ITC가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 '10년간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양사가 제시한 합의금 규모는 LG가 3조원, SK가 최대 8,000억원 수준으로 간극이 크다. ITC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낯 부끄럽다",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양사의 합의를 촉구했지만, 논의가 진척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번 ITC 결정으로 폭스바겐은 2년, 포드는 4년의 수입금지 유예시간 밖에 얻어내지 못한 SK로서는 항소 등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만약 이번에도 합의가 불발되면,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과까지 봐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배터리 제품을 확인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제공

LG, SK에 "진정성 있게 협상 임하라"… 징벌적 손해배상시 최대 6조원 이상

LG가 협상에서 요구하는 부분은 '진정성'이다.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합의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ITC 최종 결정과 관련된 컨퍼런스콜에서 합의 조건에 대해 밝혔다.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총괄 전무는 "그간 협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협상에 임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합의금 규모 및 지급 방식과 관련 "우리는 줄곧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에 따라 기준을 가지고 협상해왔다"며 "지급 방식 등의 각론에 앞서 우선 총액이 어느 정도 눈높이가 근접해야 추가 논의가 가능한데, 최종 판결이 나온 만큼 총액 수준의 눈높이가 맞으면 지급 방법에 대해서는 쉽게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LG가 주장하는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DTSA)에 따르면 손해 입증·산정은 △원고가 실제 입은 피해 △피해자가 취한 부당이득 △미래 예상 피해 등을 고려한다. 특히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어 가해자가 고의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한 경우 처벌 및 재발 방지 목적의 금액을 추가한다. 따라서 LG는 델라웨어 연방법원의 민사 소송까지 진행될 경우 최대 배상금은 6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에서 연구원들이 배터리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최대 벌금 소송도 2850억원에 합의… SK "합리적 합의금 찾자"

만약 SK가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LG측 주장대로 '진정성' 있게 합의에 임한다 하더라도, SK는 합의금 규모에 대한 LG의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ITC 판결문을 받아든 날, 임수길 SK이노베이션 밸류크리에이션 센터장은 "합리적 조건 하에서라면 언제든 합의를 위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큰 쟁점이 되는 부분은 전기차 배터리의 미래 사업 가치에 따른 피해 산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3사의 전기차용 전지 영업이익은 연간 500억원에서 마이너스 4,000억원 수준이다. 신영증권은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이익을 510억원으로 추정했고, 교보증권은 삼성SDI가 1,0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손실은 4,265억원이다. 이처럼 전기차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업체들은 여전히 향후 수년간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며, 화재 등에 대비해 피해 충당금을 미리 마련해 놔야 하기 때문에 미래 사업가치를 예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SK는 또 지금까지 미국에서 진행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나온 상위 10개 소송 결과 벌금액이 평균 2,509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근거로, LG가 요구하는 3조원의 합의금은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영업비밀 침해로 나온 벌금 중 가장 큰 규모는 2011년 듀폰과 코오롱이 첨단 섬유소재인 아라미드를 둘러싸고 벌인 소송으로, 버지니아 연방법원은 약 1조139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 역시 파기 환송 과정을 거쳐 2015년 약 2,850억원에 합의했다.

합의금 규모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일각에서는 전문가로 구성된 중재인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차호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합의금은 과대배상도, 과소배상도 곤란하다"며 "9명 이상의 중재인단을 구성, 집중 심리를 통해 1개월 이내에 신속하게 완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LG는 중재인단 구성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웅재 LG에너지솔루션 법무실장 전무는 이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 이 사건에 대해 잘 아는 기관은 미국 ITC와 법원"이라며 "객관적인 기구를 두고 제3의 중재 절차를 밟는 것은 그동안 진행한 절차에 들인 시간과 비용을 이중으로 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의가 이뤄진다면 당사자 간에 이뤄져야지 제3자나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개입하면 합의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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