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물의 제왕' 美 언론인 래리 플린트 별세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2021. 2. 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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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성인물 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임과 동시에 미국 사회에 화주를 던졌던 언론인 래리 플린트가 78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연합뉴스


성인물 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았던 래리 플린트가 향년 78세 나이로 사망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래리 플린트는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동생 지미 플린트가 형의 사망 소식을 확인했으며 구체적 사안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래리 플린트는 하드코어 포르노잡지 ‘허슬러’의 창간자이자 수많은 성인 잡지와 비디오를 발행한 언론인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외설이냐, 표현의 자유냐’라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문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창간한 ‘허슬러’는 ‘미국인의 성생활을 그대로 보여드린다’는 슬로건을 갖고 정사신을 그대로 노출했다. 노골적 내용으로 외설죄로 수차례 법정에 서기도 했다. 당시 보수적인 미국 사회 분위기 속에 각계 각층으로부터 비판 받았지만 래리 플린트는 노골적인 풍자를 잡지에 실으며 응수했다.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그는 1978년 백인우월주의자의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를 주제로 한 영화 ‘래리 플린트’(한국명). 이 영화는 1997년 한국에도 개봉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특히 그는 미국 기독교 원리주의자 제리 폴웰 목사와 설전과 풍자를 주고받다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1988년)까지 당하며 더욱더 유명세를 탔다. 당시 그는 미국 수정헌법 1조를 들며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다.

연방대법원까지 간 이 소송은 ‘언론이 공인을 두고 풍자와 비판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란 주제를 사회적 화두에 올리기까지 했다. 패색이 짙었던 래리 플린트는 결국 승소해 미국 사회를 뒤집어 놨다.

이후 높아진 저명도를 발판으로 래리 플린트는 캘리포니아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도 도전하는 등 정치계 문을 두드렸다.

미국 사회에 여러 화두를 던진 인물인 만큼 그를 주제로 한 영화 ‘더 피플 대 래리 플린트’가 1996년 개봉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97년 제47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돼 황금곰상의 영광을 얻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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