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시대, 미등록 이주 아동에 손 내민 청년 예술인들

손가영 기자 2021. 2. 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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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조차 박탈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 고민, 예술로 "코로나 시대 격리·거리 속 서로 연결돼보자"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공연장 인적이 끊긴 지 1년이 다 된 지난 1월, 한 청년 예술인 집단이 서울 녹색병원에 작은 후원금을 냈다. 녹색병원은 사회보장제도 사각지대에 처한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내국인에 준하는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국 유일의 의료기관이다.

후원금은 지난해 이들이 준비한 쇼케이스 수익이다. 12월31일까지 13일 동안 열린 공연 '엠마의 집' 관객들의 기부금 210여만원이다. 청년 예술인들은 “'코로나 시대' 격리와 거리 속에서도 지지와 연결을 고민하고 싶다”며 '집'이란 주제를 정해 창작물을 내놨다. 사람을 넘어 사회와의 연결도 고민하면서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를 공부했다.

▲다리팀의 한 구성원이 프로젝트에 활용된 포춘쿠키 속 종이를 들고 있다. 사진=다리팀
▲미등록 이주 아동을 언급한 포춘쿠키 속 메모지들.

예술 집단의 이름은 '프로젝트 다리(DARI)'로, '한 다리 건너 한 다리'란 표현의 준말이다. 각자가 다리처럼 연결돼 여럿이 되면 더 나은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악·무용·글·건축·영상·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11명이 모였다. 공연 '엠마의 집'은 엠마누엘 이름에서 따왔다.

왜 미등록 이주아동을 고민했을까. 프로듀서 손소영씨는 “프로젝트에서 펀딩을 맡으며, 지금 누구에게 가장 지지와 연결이 필요할까를 생각했다. 당면 이슈는 많았지만 '미등록' 체류 외국인에 관한 이슈는 나의 친구와 지인들로부터 듣고 겪으며 오랫동안 분통을 쌓아온 이야기였다”며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불법체류'로 만들어버리는 법의 문제를 보진 않고, '불법'이라는 딱지는 현재 불공평한 법을 합리화시켰다”며 배경을 밝혔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부모가 한국에 체류하는 난민 또는 미등록 이주민으로, 한국 정부에 출생 등록이 되지 않은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말한다. 이들은 '등록 번호'가 필요한 모든 사회적 활동과 기본권 보장에서 배제된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휴대폰 개통부터 인터넷 쇼핑, 통장 개설 등도 할 수 없다. 배나 비행기를 타지 못해 제주도도 가지 못한다. 성인이 된 후엔 대학을 가려 해도 체류 자격이 없어 대부분 포기한다. 법무부는 최근 실태조사에서 이들 규모를 최대 1만3000여명으로 추산했으나 유관 단체들은 등록 자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이주민인 엠마누엘에게도 미등록 이주아동은 가까운 존재였다. 그는 친구 한 명을 떠올리며 말했다. “'불법체류자'가 된 친구에게 6살 난 아이가 있다. 한국에서 낳았다. 그런데 아파도 병원을 못 간다. 가벼운 병치레는 끙끙 앓으면서 견디고, 정 힘들면 약국에 간다. 얼마 전 아이 피부가 곪아 피까지 나서 병원을 갔더니 진찰료, 약값 다 포함해 70만원이 나왔다. 분명 한국에서 태어난 인간이고 아동이다. 단지 문서(비자)로 등록되지 않았다.”

▲프로젝트 '엠마의 집' 설계도 및 내부 전경.
▲프로젝트 다리팀의 포스터.

쇼케이스 컨셉 '집'은 프로듀서 유현진씨가 제안했다. 유씨는 “엠마누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뿌리내린 공간이다. 국적, 국경이 아닌 지금 여기에 함께 산다는 의미'라며 '가족들은 먼 부르키나파소에 있지만, 아플 때 1시간 안에 내게 달려와 줄 이들이 있는 여기가 집이 있는 곳'이라 말했다”며 “이 말에 착안해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일단 반겨줄 수 있는 집,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누군가 이야기할 땐 경청해 줄 수 있는 공간, 한국인이냐 아니냐는 문제로 집이 없는 사람들의 집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창작자들도 각자 역할로 집에서 만나 '아 이런 이슈가 있었어?'라며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는 집”이라고 덧붙였다.

참가한 11명 예술인들은 취지에 공감하며 각자 재능을 기부했다. 엠마누엘과 무용가 이선시·박용일·김예은씨는 각자 집과 일상에 관한 춤을 공연했다. 음악가 이향하·김홍식씨는 낮과 밤, 집 안과 밖의 주제가 담긴 곡을 만들어 발표했다. 목공·죽공예 등 수공예 예술을 하는 구름씨는 실크 스크린 캠페인 가방을 만들었고 관객이 구매해 생긴 수익을 모두 기부했다. 영상제작자 김소라씨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영상을, 건축가 이중용씨는 '엠마의 집'을 디자인했다.

전시장은 거실, 화장실, 서재, 부엌 등으로 구획이 나뉘었다. 구획마다 컨셉에 맞게 실내를 디자인하고 창작물 등을 전시했다. '서로의 일상이 만나는 곳'이란 주제의 거실엔 관객들이 읽을 수 있도록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를 다룬 인터뷰·기획기사를 일일이 뽑아 책상에 올려놨다. 옆 바구니엔 포춘쿠키를 놔뒀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의 작은 행운'이라는 의미를 담아 미등록 이주 아동에 관한 기사 한 줄씩 과자 속에 넣었다. 아래와 같은 기사에서 의미있는 글귀를 뽑았다.

“비자가 없다는 것, 제가 미등록 청소년이라는 것에 가장 불편한 것은 친구들은 다 하고 있는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없고 게임을 좋아하는데 회원가입도 할 수 없고 제 이름으로 통장개설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기사 “초등학교 4학년, 제가 한국에 미등록된 걸 알게 됐습니다”)

“만약 비자가 있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 뭘 하고 있지는 않아도 적어도 지금보다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뭐든 다 할 수 있다' 이런 포부가 있었지만, 상황이 안 좋아도 배울 수 있으니까 배우고, 힘들어도 아무 생각 없는 게 아니라 '이거 해야지' 하는 설렘을 갖고 살았던 것 같아요. (중략) 지금은 당장 사는 게 급하니까 하고 싶은 것 다 무시하고 일단 살아남자 이것만 생각하게 되죠.” (프레시안 기사 “꿈, 버릴 수도 가질 수도...한국서 태어난 '미등록' 청년 린나 이야기”)

▲무용가·안무가들은 각자 창작한 춤을 공연했다. 사진은 프로젝트에 함께 한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

관객들도 공감으로 답했다. 법무부에서 난민 지위를 심사하는 한 익명의 공무원은 공연장에 “미등록 이주민과 어린이들의 사연을 매일 접하며 직접 다가가지 못한 점이 죄책감으로 남았는데, 다리 프로젝트를 통해 다가갈 수 있었다”는 메모를 남겼다. 이 프로젝트를 접한 부산의 어느 자영업자는 미등록 이주 아동에 전해달라며 마스크 2만장을 후원했다. 프로젝트팀은 이를 서울 성동구, 경기 의정부 등의 이주민지원센터, 파주 및 이태원 거주 미등록 이주민 공동체 등에 전달했다.

예술의 확장은 안무가 엠마누엘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23년째 무용가로 활동하는 그는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가치를 예술로 구현하려 하고, 무용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방법도 꾸준히 고민한다. 2017년부터 시작한 노들장애인야학의 춤 수업은 그가 소중히 생각하는 시간 중 하나다. 엠마누엘은 '이주민'인 자신과 친구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계속 해나갈 거라고 말했다.

다리 프로젝트는 매년 다른 창작자들과 다른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기획자와 창작자와 관객의 참여가 후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유지된다. 다리팀은 “태어난 곳에서 말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좋아하고, 꿈을 키워온 미등록 이주 아동들에게 '집'은 과연 어디일까? 20년의 삶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그들의 '본국'은 과연 어디일까?”라 물으며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한 다리 건너 한 다리' 연결된 이 세계 속에서 '여기가 당신의 집이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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