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상무 출신 4년차 공무원 "빅데이터 능력, 민간이 100점이면 정부는.."
“회의실에 가서 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동료들이 깜짝 놀라 하더군요. 알고 보니 국장님, 과장님 자리가 다 정해져 있더라고요.”
국장·과장 회의를 하는데 떡하니 혼자 자리에 앉아있는 ‘눈치 없는’ 초짜 공무원. 이제는 4년 차 공무원이 된 윤지숙(55) 통계청 빅데이터 과장이 기억하는 출근 첫날이다. “확실히 회의 풍경도 달랐어요. 여태껏 회의에 수첩을 가져간 적이 없었는데, (상사가 하는 말을) 받아적으려고 준비부터 하는 분도 있더군요.”
윤 과장은 이력이 독특한 공무원이다. 서울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민간 기업에 다녔다. SAS코리아, 유니보스, 씨티은행 등에서 일했다. 글로벌 IT기업인 IBM에서 상무로 일하기도 했다.
약 20년간 민간에서 경험을 쌓다가 지난 2017년 인사혁신처 헤드헌터로부터 “공무원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고 공직 사회로 입문했다. 처음에 연락 왔을 때는 ‘스팸 메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직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설득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3년간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과장으로 일했다. 마이크로데이터는 학자 등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데 쓸 수 있는 일종의 ‘원석’이다. 지금은 빅데이터통계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간은 처음부터 ‘투자 대비 수익’ 따지는데…”
그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 민간 기업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능력이 100점이라면, 정부는 몇 점 정도 되느냐고. 윤 과장은 “30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우리나라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서다.
윤 과장은 “인적 역량 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무원 조직은 순환 인사를 한다. 빅데이터에 대한 전문성이 조금 쌓이면 금세 다른 업무로 옮긴다. 우리나라 통계청의 빅데이터통계과는 2015년에 새로 생긴 조직이다. 윤 과장은 “빅데이터 전문 인력을 키울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직 사회 특유의 경직된 문화도 원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 과장은 " 민간에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ROI(투자 대비 수익)를 따진다”면서 “그런데 공직에서는 보고된 일정대로 일을 마무리하는 게 성과인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는 “통계청 고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1980~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통계청이 IT 활용 능력에서 가장 앞서가는 조직이었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지금 사회가 엄청나게 빨리 바뀌는데 공직 사회는 그걸 발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공급자 중심’의 마인드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목했다. 그는 “기업에서는 고객이 최대 관심인데, 공직에서는 이용자들의 생각이 관심 밖인 경우가 많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마이크로데이터 ‘세일즈맨’을 자처했을 때 “어? 공무원 맞으세요?”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고 한다.
◇”’늘공'과 ‘어공’이 공정한 경쟁 했으면”
우리나라는 윤 과장처럼 민간 전문성을 살린 공무원을 늘리기 위해 ‘개방형 직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를 채용해 지금까지 쌓아온 전문성에 맞는 직위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개방형 공무원은 보통 3년, 길어도 5년까지 일하기 때문이다. 윤 과장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무원으로) 뽑혀서 온 건데도, 3년 이후에는 ‘넥스트’가 없다”고 했다.
또 ‘늘공’ 동료 과장은 다른 업무를 맡는 과장이 되고 국장으로 승진하는 동안, 개방형 공무원은 특정 업무에 붙박이로 남는다. 그는 “한 조직에서 같이 어울려 지내다 보면 정체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정부가 ‘늘공’과 민간 전문가 출신의 ‘어공’ 사이에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발 빠른 통계 기대해주세요”
지난해 12월 28일, 통계청은 ‘소상공인 실태조사(잠정)’ 자료를 내놨다. 그러나 그 자료로 코로나 사태에 따라 소상공인들이 어떻게 타격을 입었을지 등을 볼 순 없었다. 통계 작성 시점이 ’2019년 말'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통계가 2020년 연말에서야 나온 것이다.
윤 과장은 “기존 통계청 조사는 대부분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공표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리 빨라도 조사 후 공표까지 1~2개월은 걸려야 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통계과가 하는 일은 ‘발 빠른 통계’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 통계청 자료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아’다. 예컨대 유통업체 등을 설문조사 하는 대신, 온라인 몰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해 물가를 조사해볼 수 있다. 실제 통계청은 마스크 물가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조사해 발표하기도 했다.
빅데이터통계과의 또 다른 작품은 SK텔레콤과 협업해 인구 이동 데이터를 만든 것이다. 기지국 정보를 기반으로 위치를 추적해, 인구가 얼마만큼 이동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윤 과장은 “빅데이터를 사용할 때 대표성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신 주(週) 단위로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지금 윤 과장이 추진하고 있는 과제는 교통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역 경제의 활성화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를 만드는 것이다. 윤 과장은 “미국 투자회사 가운데서는 월마트 트럭 동향을 통해 경기를 측정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연봉도 깎이고, 때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게 공직 사회에 입문한 보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여태껏 쌓은 지식·역량을 특정 회사 물건을 파는 대신,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쓴다는 보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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