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사커킥' 여중생은 왜 걷어차여야 했을까
■ "여기 병원이잖아요. 조용히 좀…."
지난달 29일 늦은 오후, 전북 부안군 어느 병원 복도에서 난 소란에 15살 여중생 최 모 양은 잠시 끼어들었습니다. 마냥 당하고만 있는 식당 아주머니가 딱했을뿐더러, 아주머니를 벽까지 몰아붙이는 술 취한 아저씨의 행패가 도저히 시끄러워서였습니다. "여기 병원인데, 좀 조용히 해주세요." 최 양은 말했고, 그때부터 공포가 시작됐습니다.
얼굴, 배 가릴 것 없이 주먹과 발이 날아들었습니다. 최 양은 겨우 얼굴만 가렸을 뿐, 남성은 광분의 주먹질을 해대며 저항할 틈도 주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다쳐 입원 치료를 받던 터라 최 양은 재빠르게 달아나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을 병문안 온 동네 동생도 남성이 쏟아내는 끔찍한 폭행을 그대로 당해야 했습니다.
최 양은 뇌진탕 진단을 받았습니다. 최 양의 병문안을 왔다가 함께 봉변을 당한 13살 김 모 양은 당장 정신적 불안을 말합니다.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남성처럼 키 작은 사람만 봐도 공포를 떠올린다는 호소입니다. 최 양은 무서울 겨를마저 없었다고 말합니다. 대신 이상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해달라" 한 마디가 그렇게 '광분'할 일인가, 제게 자꾸 되물었습니다.
■ 세 번째 '묻지 마' 폭행…"정신질환 있다"
붙잡힌 40대 남성은 '순간 욱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더 조사해보니 '욱해서' 저질렀다는 남성의 폭행이 처음이 아닙니다. 길 가던 사람과 괜한 시비가 붙어 주먹을 휘두른 게 벌써 세 번째였습니다. 그리고 남성은 한 가지 더 털어놨는데, 정신질환이 있어 치료를 받아왔다는 진술입니다.
경찰은 곧바로 이 남성을 3일짜리 응급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3일이 다 지나기 전, 전문의 진단을 구해 기간을 14일 더 연장했습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입원 유형을 최대 3개월까지 가능한 행정입원으로 돌리기로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강제입원 조치입니다. 대부분의 자유는 박탈되고 감시 속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퇴원을 원해도 타해의 위험이 계속 있다고 진단되면, 할 수 없습니다. 심사를 통해 기간을 또 연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경찰, '매뉴얼' 자랑했는데…뒤늦은 '강제입원' 조치
사건을 맡은 부안경찰서는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 듯합니다. 아쉬운 건 이전에 난 사건의 처리입니다. 앞서 쓴 것처럼 정신질환이 있는 이 남성은 최근에만 두 번 더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곧바로 풀려났습니다. 한 번은 단순 폭행으로 처리됐고, 또 한 번은 합의를 이유로 입건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故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이 난 2018년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사가 스러지자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고, 경찰은 스스로 이를 다루는 매뉴얼을 꼼꼼하게 다잡았다고 자랑했습니다. 강력범죄 우려가 큰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이 적극적으로 강제입원을 시키는 시스템을 꾸렸다는 겁니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붙잡힌 당사자가 정신질환으로 남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의심되면, 객관적 체크리스트로 위험도를 진단하게끔 했습니다. 이때, 현장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환각 증세 같은 건 보조자료로만 활용토록 하고, 대신 과거 정신병력, 난동을 부려 112에 신고된 이력, 형사 처분 전력을 주된 판단 기준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요건들을 만족하면 현장 경찰관은 강제입원에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에서의 40대 남성은 앞서 다른 폭행 사건으로 붙잡혔을 때 이 매뉴얼이 적용됐어야 옳습니다. 이유가 불분명한 폭행 시비를 연달아 벌였고, 경찰 스스로 내세운 객관적 판단 조건과도 사례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덜 꼼꼼했던 탓에 세 번째 '묻지마 폭행'이 벌어지고 나서야 정신질환 범죄를 막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신질환자를 두고 언젠가 강력범죄를 저지를 사람처럼 취급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질환 범죄가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이를 예방하고자 하는 건 당연한 노력입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도 필요한 매뉴얼을 손봐 정리해 놓은 것이겠지요. 다만 허울만 그럴싸한 매뉴얼은 의미가 없습니다. 혹,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경찰은 어서 보완해야겠습니다.
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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