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살인사건' 5년 만의 1심 판결..그동안의 이야기들

전현진 기자 2021. 2. 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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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5년 태국 방콕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김모씨(37)는 ‘파타야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재판정에 섰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양철한)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 대해 징역 17년을 선고하고 10년 동안 위치추적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김씨는 태국에서 한 폭행·상해·마약 복용 등 11개 혐의에 대해 징역 4년6월형이 이미 확정된 상태였다. 모두 합하면 징역 21년6월이다.

사건 발생부터 1심 선고까지 5년이 훌쩍 넘었다. 김씨가 사건 직후 베트남으로 도피한 뒤 경찰에 체포돼 송환된 지도 3년 가까이 흘렀다. 사건의 발생, 체포, 송환, 그리고 재판 과정에 동안 취재한 태국과 한국에서 수사·판결 자료, 수사 담당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기초로 지난 시간을 정리했다.

■힐링캠프와 마피아

김씨와 윤모씨(38), 그리고 피해자 고 임모씨(사망 당시 25세). 세 사람은 태국 방콕에서 만났다. 김씨와 윤씨는 2013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윤씨 형이 김씨를 ‘성남국제마피아’의 조직원이라고 소개시켜준 게 계기가 됐다. 윤씨는 태국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거나 자동차 담보 대부사업을 했다. 어느날 베트남에 있던 김씨가 태국에 있는 윤씨에게 전화를 했다. 태국에서 도박사이트를 운영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김씨는 2015년 3월부터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 태국 방콕의 수쿰빗이라는 곳에 오피스텔 여러 채를 빌려 도박사이트 사무실을 차렸다. 사이트 이름은 ‘힐링캠프’였다. 김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국인 후배들을 부하처럼 거느렸다. 윤씨는 처음엔 도박 사이트 운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이후 함께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를 고용했다. 프로그래머는 도박사이트를 구축하고 승률과 배당률을 조작하는 작업에 투입된다. 그렇게 고용된게 임씨였다. 임씨는 2015년 6월 고용돼 9월 태국 방콕에 왔다. 임씨 외에도 다른 프로그래머 A씨가 있었다. 김씨는 이들을 폭행했고, 태국에 있는 동안 계속됐다. 일이 서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다. 김씨는 후배를 시켜 “도망치면 태국 경찰을 매수해 출국할 수 없도록 하겠다”며 겁을 줬다. 폭행이 심해지자 임씨와 A씨는 한 차례 도망을 시도했다. 하지만 방콕의 스완나폼공항에서 김씨의 후배에게 붙잡혔다. A씨는 다시 도망쳐 한국으로 도피했지만, 임씨는 벗어나지 못했다.

A씨가 도피하자 방콕의 민부리라는 지역에 있던 윤씨의 거처로 사무실을 옮겼다. 사무실 위치가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김씨는 임씨가 도박사이트의 수익금을 횡령한다고 생각했고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임씨는 제대로된 치료는 받지 못했다.

2015년 11월19일, 김씨는 임씨가 도박사이트의 정보를 경찰에 넘기려했다고 의심하며 그를 폭행했다. 김씨는 한국에 있는 후배를 시켜 임씨가 쓰던 컴퓨터에 접속하게 했다. 거기서 임씨가 자신이 폭행 당하는 상황을 녹음한 자료도 찾아냈다. 사무실 위치가 노출됐으니 다른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했다. 화가 난 윤씨도 임씨를 폭행했다. 이날 밤 이들은 짐을 싸고 파타야로 향한다. 윤씨는 자신이 타던 검은색 혼다 CR-V 차량 운전석에 앉았다. 이 차엔 김씨와 임씨 두 사람이 탔다. 도박사이트를 함께 운영하던 김씨의 후배들은 다른 차에 탔다. 임씨가 엘레베이터에 타고 차에 오르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그가 사망하기 전 생존했던 마지막 모습이다.

이날 밤, 방콕의 본거지를 떠난 그들은 다음 날인 11월20일 오전까지 파타야로 향했다. 차로 2시간쯤 가면 도착할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중간중간 차량이 멈춰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차를 타고 가면서 그를 계속 때리고 전기 충격기로 공격했으며 길가에서 내린 뒤 다시 임씨를 때렸다. 김씨에 대한 살인 혐의는 그가 파타야로 가는 동안 임씨를 야구방망이나 목검과 같은 길고 단단한 물체로 머리 부위 등을 때려 숨지게 한 뒤 파타야의 한 리조트 주차장에 방치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파타야의 한 호텔에 먼저 차를 세웠다. 호텔 체크인을 했지만, 외부에 노출된 환경 탓인지 곧 그곳을 떠났다. 평소 알고 지낸 한국인 가이드 이모씨에게 리조트 소개를 부탁했다. 임씨를 차에 그대로 방치한 채였다. 리조트의 방 안에서 마약을 복용한 이들. 결국 모두 도망쳤다. 김씨는 베트남으로, 윤씨는 사건 직후 도망갈 것을 고민하다 결국 태국 경찰에 자수한다. 태국 경찰 조사에서 윤씨는 김씨가 임씨를 폭행했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태국 파타야주 법원은 그의 티셔츠에서 임씨의 혈흔이 발견됐다는 점과 운전을 하면서 김씨를 충분히 말리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그가 살인 사건의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윤씨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 10월부터 태국 방콕 클렁쁘렘 중앙교도소에 수감됐다.

고 임동준씨는 태국에 고수익의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갔다가 잔혹한 폭행으로 사망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임씨 사망 뒤에도 “배고프다”한 그들

당시 태국 수사기관이 조사한 자료와 윤씨 등 관련자들의 법정 진술 내용 등 기록을 보면 임씨가 숨을 거두던 11월 19~20일의 상황을 재연해볼 수 있다. 한국의 법정에서 김씨는 윤씨가 자신에게 죄를 덮어 씌우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5년 11월19일 오후 10시48분 사망자(임씨), 피고인(윤씨), 김씨, 그리고 다른 한국인 2명(김씨의 후배)이 방콕의 한 아파트를 나와 검은색 혼다 CR-V 차량에 타는 것을 확인하였다. 피고인이 운전자였고, 임씨는 뒷좌석에 앉았다. 김씨는 조수석에 앉았다. 다른 한국인들은 흰색 도요타 캠리 차량에 탔다.” (수사 담당 태국 경찰의 증언)

“피고인(윤씨)이 운전하는 도중에 김씨가 사망자(임씨)를 주먹으로 치는 것을 보았고, 사망자는 길을 가는 내내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 말했으나 김씨는 사망자를 계속 주먹으로 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태국 검찰의 윤씨에 대한 기소내용 중)

“김씨는 쇠몽둥이와 전기충격기를 이용하고 주먹을 이용해 임씨를 때렸습니다. (…) 어두운 길가에 들렀습니다. 임씨를 차에서 데리고 나와 김씨가 20분 가량 폭행했습니다. 그 뒤 차를 운전해 파타야로 들어왔다가 한 호텔에 들렀습니다. 호텔에 쉬려고 결심했으나 임씨 상태가 심각해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두려웠습니다. 파타야를 벗어나 날이 밝을 때까지 운전했습니다. 가는 길가에 김씨가 임씨의 심폐소생술 하는 것을 보았고 시간이 지나 (임씨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씨(한국인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묵을 만한 숙소를 예약해달라고 했습니다. (…) 본인(윤씨)과 김씨는 시체를 원래 차에 버려두고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김씨가 아이스 마약(필로폰)을 가지고 와 복용하고 본인도 복용했습니다. (윤씨와 김씨, 김씨의 후배) 3인은 대사관에 이를 알려야 좋을지 도주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했으나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 김씨와 사건이 일어난 게 누구 책임인지 다투었습니다.” (2015년 11월24일 윤씨에 대한 태국 경찰의 피고인 진술 조사 중)

“파타야에 도착하기 전 피해자를 폭행하기 위해 여러 곳에 정차를 했고, 한 번은 피해자가 야구방망이를 사용하여 피해자의 머리 주변에 부상을 입게 하고 피해자가 의식이 흐려지는 증상이 생기도록 피해자의 신체를 강하게 폭행했습니다…증인과 피고가 함께 피해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였습니다. 증인은 손을 사용해서 심장이 뛰도록 피해자의 가슴 주변을 눌렀고, 피고는 입에 바람을 불어서 피해자에게 인공호흡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직 살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횡설수설하였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이후)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윤씨 태국 법정 진술)

태국 경찰은 2015년 11월20일 오전 윤씨의 연락을 받고 리조트 예약을 도와준 한국인 가이드 이씨의 진술도 들었다. 임씨가 사망한 당일 직후였다. 이씨는 리조트에서 김씨와 윤씨 등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의 모습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숙박 대금을 지불한 뒤) 윤씨는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남성 2인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윤씨가 2명과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담배와 생수를 사러가자. 배고프다’고 (대화)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차 안에는 임씨가 이미 숨진 상황이었고, 이 리조트 주차장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태국의 국립경찰병원 법의학과의 부검 내용을 보면 임씨가 발견된 상태는 참혹했다. 양쪽 눈 부위의 멍, 상반신에 퍼진 상처들, 입술, 귀, 후두부, 머리 우측의 찢긴 상처, 성기 부근의 작은 화상, 발톱의 찢긴 상처와 빠져나간 오른쪽 약지 손톱. 두개골은 정상이었지만 뇌는 창백하게 부어있었고, 오른쪽 2·3·6·7번과 왼쪽 7·8·10번 갈비뼈는 부러져 있었다.

윤씨가 자수하기 전 김씨는 자신의 후배와 베트남으로 도피했다. 그는 태국을 떠나면서 대사관에서 전화를 걸었다. “임씨의 죽은 윤씨의 폭행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베트남으로 사라진 그의 행방은 2년 넘게 파악되지 않았다.

2018년 4월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로 송환된 김씨(가운데)가 경찰 수사관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씨의 소재를 알고 있습니다”

2018년 3월 13일 오후 6시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5대 사무실에 걸려온 제보 전화는 구체적이었다. “김씨의 소재를 알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사는 교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제보자는 김씨가 베트남 남부의 부온마투엇이라는 소도시에 현지 여성과 함께 살고 있으며, 3일 전까지도 그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청춘의 덫- 파타야 살인사건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임씨의 사망을 둘러싼 이야기가 방송된 뒤 김씨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제보가 19건 정도 경찰에 접수됐었다. 경찰은 그동안 제보 내용을 하나씩 검토하며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속초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제보도 전부 확인을 거쳤다. 김씨가 베트남의 한 카지노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이른바 ‘꽁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제보자의 갑작스런 전화에 신빙성을 갖게 된 건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당 수사관은 경찰청 인터폴계와 정보를 공유했다. 인터폴계는 베트남 공안부(경찰청)에 있는 한국인 관련 사건을 담당인 ‘코리안데스크’와 주베트남대사관의 경찰영사에게 관련 첩보를 전달했다. 현지인인 코리안데스크와 경찰영사는 베트남 호치민공안과 함께 체포 계획을 세우고 모두 8명이 호치민시에서 차량 2대를 나눠타고 400㎞쯤 떨어진 김씨의 거주지를 다음날 급습했다. 해외 사법당국이 다른 나라의 범인 검거 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흔치 않다. 당시 경찰 고위 관계자는 “베트남 경찰이 우리 경찰의 요구에 적극 협조한 건 마침 베트남 공안부 차관이 한국을 방문하던 중이어서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가 현지에서 체포된 뒤 한 달쯤 지난 4월5일 한국으로 송환됐다. 김씨를 태운 대한항공 KE682편이 당시 개장된 지 3개월쯤 지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9시 1분쯤이었는데, 입국 절차 등을 마치고 김씨가 출국장을 빠져난 간 게 오후 9시 40분쯤이었다. 김씨는 검은 모자와 검은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포승줄과 수갑에 몸이 결박된 상태였다. 경찰이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했다.

베트남 공안은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그를 호송해 우리 경찰에 인계했다. 김씨 호송을 위해 4명의 경찰관이 현지에 파견됐다. 한국 경찰관은 대한민국 영토로 분류되는 국적기에서 김씨를 인계받고 곧 그에게 수갑을 채운 뒤 체포 영장을 집행했다. 영장 기재 범죄 혐의는 ‘살인’이었다. 김씨는 한국 경찰이 1순위로 꼽는 중요도피사범이었다. 김씨는 태국에서 벌인 살인 혐의로 베트남으로 도주한 상태였기에 여권이 무효화됐었다. 경찰은 여권이 없는 김씨의 입국을 위해 신원부적격자에 대한 여행증명서를 따로 발급하고, 입국 과정에서 별도의 심사를 받도록 했다.

비행기 안에서 김씨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그에게도 기내식이 제공됐는데 음식은 평소와 다른 샌드위치였다. 범죄자 송환 시에는 범죄 예방을 위해 쇠로 된 나이프나 포크 대신 플라스틱 재질로 된 것을 준비하는데, 김씨에게는 자해 등 돌발행동을 막기 위해 샌드위치로 바꿨다. 김씨는 비행기 왼편의 가장 뒷 부분에 좌석이 배정됐다. 김씨를 가운데 두고 양옆과 뒤에 경찰이 둘러싸 앉았다. 앞줄에는 송환에 동행한 베트남 공안 3명이 탔다. 이들은 향후 수사 공조와 체포 상황 등을 설명해주기 위해 한국에 함께 입국했다.

공항에 도착한 김씨를 맡아 수사하는 건 사건 담당인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5대였다. 국제범죄수사5대는 11명의 수사관과 2대의 차량을 준비해 김씨를 호송하기로 했다. 김씨가 도착하기 1~2시간 전부터 공항 주변에서 호송상황을 체크했다.

늦은 시간이기 때문인지 당시 취재진이 많이 몰리진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취재진 몇몇은 서로 모여 김씨가 출국장을 나서면 어떤 질문을 할 지 의논했다. 이 광경을 보던 경찰 관계자는 “혐의 인정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할 것”이라며 “어떻게 죽인 거냐고 물어봐야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거 같다”고 했다. 결국 조언대로 질문을 수정하자 김씨는 실제로 반응했다.

“피해자 어떻게 죽였나요.” “아니 제가 죽인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니 모르면 XX 찍지를 말던가 뭐하는거야 이씨.” “살해 혐의 인정 안하시나요” “예 안해요” “유가족들한테 할말 없어요?” “…” “할 말 없으세요?” “조사받으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경찰: “가시겠습니다.”)

■진실공방

김씨를 송환했지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을 받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하려면 증거, 진술 등이 갖춰져야 하는데 대부분 태국에 있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5월 그를 공동감금 등의 혐의로 우선 재판에 넘겼다. 김씨는 한국에 있는 후배를 동원해 A씨를 협박하고 임씨가 사용했던 컴퓨터를 가져가기도 했다. 이런 범행과 함께 태국에서 임씨를 때리고 감금한 일과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것, 필로폰 등을 복용한 혐의 등으로 검찰은 김씨를 먼저 기소한 것이다다.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긴 건 2018년 10월이었다. 태국에서의 자료를 넘겨 받은 뒤 기소했기 때문이다.

김씨에 대한 재판은 2년 넘게 진행됐다. 증인이 출석한 건 8차례로 많지는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가장 중요한 증인인 윤씨가 태국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신문하려면 한국으로 송환해 법정에 세워야 하지만 태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를 한국으로 부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의 진술을 듣는 건 이 재판에서 필수적인 일이다. 주요 증거 대부분이 그의 진술을 담은 태국의 수사·재판 기록이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법정에서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해서다.

검찰은 국제형사사법공조로 우선 태국에 있는 윤씨를 증인 자격으로 국내로 부를 수 있을지 타진했다. 코로나19 등 여러 이유로 윤씨를 한국으로 불러들이기 어려웠다. 윤씨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 등 신문 사항을 적어보내 태국의 법정에서 신문을 진행하는 방안이 의논됐다. 검찰 측 증인인 윤씨를 신문하려면 검찰의 주신문과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 등의 절차를 갖춰야 한다. 김씨 측은 윤씨를 한국의 법정에 불러야 한다며 신문사항을 적어 보내 태국에서 증인 신문 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자칫 서면으로라도 반대 신문의 기회를 뺏길 수 있다는 판단에 일단 질문을 적어 태국에 보냈다.

태국의 법원에서 진행한 공범 윤씨의 증인 신문조서의 번역본. 국제형사사법공조를 통해 확보된 뒤 번역을 거쳐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3월과 7월 태국의 법원에서 윤씨에 대한 검찰 측 신문이 이뤄졌고, 김씨 측의 반대 신문은 통역 문제로 8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태국에서 한 증인 신문은 번역을 거쳐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됐다. 태국의 법정에서 한 이 증인 신문 내용이 담긴 진술 조서를 증거로 채택할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씨 측은 신빙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윤씨의 진술을 증거로 삼아선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의 법정에서 법관이 그의 답변 태도 등을 지켜보며 판단해야 하고, 김씨 측도 윤씨의 답변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검증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 했다는 뜻이다.

김씨의 살인 혐의 재판은 윤씨와 김씨의 진실공방 양상으로 흘러왔다. 김씨는 윤씨 등 증인들이 죄를 덮어 씌우려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다고 했다. 윤씨는 태국에서 수감 생활을 마치면 다시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가 아직 유효하고 체포영장도 발부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씨가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이 임씨를 때려 숨지게 했음에도 김씨에게 덮어 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검찰은 김씨가 윤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임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해온 것이 김씨이고 윤씨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1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재판부는 태국에서 한 조사의 증거능력을 일단 인정하기로 하고, 그 내용을 검토하기로 했다. 증거능력을 최종적으로 부여할 지는 판결을 선고할 때 판단하기로 했다. 법관은 증거 능력이 없는 증거를 살펴볼 수 없다. 증거로 채택할 지 여부를 놓고 법정 공방이 자주 벌어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법정에서 유죄 여부는 증거를 근거로 결정된다. 윤씨가 태국에서 한 진술에 대해 재판부가 들여다 보게 된 건 김씨 측에게 불리한 요소다.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에게 마지막 의견을 물었다. 김씨에 대해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김씨 측은 무죄를 주장했다. 임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건 윤씨이고, 일부 폭행 사실은 인정하지만 공소사실에 기재된 ‘야구방망이’와 같은 물건으로 그를 때려 숨지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양측 항소

지난 8일 김씨는 긴장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증인석에 서 재판장의 판결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 대해 징역 17년을 선고하고 10년 동안 위치추적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김씨와 윤씨가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과정에 대해 판단하면서 임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건 김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방콕에서 파타야로 이동하던 차에는 김씨와 피해자 임씨, 그리고 운전자 윤씨 세 사람만 타고 있었고, 차를 타고 떠나기 전 찍힌 엘레베이터에 살아서 움직이는 임씨의 마지막 모습이 촬영된 점을 들어 임씨의 사망은 결국 김씨와 윤씨 한 사람 혹은 둘 모두의 폭행 탓이라고 봤다. 하지만 운전 중인 윤씨가 임씨를 폭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피해자에 대한 가해 행위의 동기가 김씨에게 더 크다는 점을 거론했다. 재판부는 “윤씨도 태국에서 피해자를 폭행한 것으로 보이고 이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피고인에 비해 피해자와 직접 이해관계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국제형사사법공조를 통해 지난해 태국 법정에서 진행된 윤씨에 대한 증인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윤씨의 태국에서의 법정 진술은 피고인 변호사 측이 제공한 반대 신문을 포함해 이뤄졌고, 윤씨가 선서한 뒤 통역이 참여한 상태로 태국의 판사 앞에서 진술했기에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피고인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범행 후 시체를 유기한 채 수년 간 도망했고 그 책임을 전부 공범에게 미루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윤씨의 경우 자신이 직접 실해하지 않았지만 태국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윤씨보다 책임이 커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다만 “범행의 잔임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확정적 고의로 범행(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진 않고, 이 사건과 함께 진행된 다른 사건에서 징역 4년6개월이 이미 확정된 점을 고려해 구체적 형기를 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검찰과 김씨는 모두 항소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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