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아닌 두번째, 트럼프 탄핵심판 쟁점과 전망
[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9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연방상원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임기 중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2차례 통과된 유일한 대통령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해 2019년 11월 하원에서 통과된 탄핵안은 이듬해 2월 상원에서 기각되면서 면죄부를 받았다. 이번에는 지난달 6일 그가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의 의회 난입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탄핵안이 통과됐다. 1차 탄핵과 2차 탄핵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가 이미 임기를 마무리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퇴임한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것도 처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미 현직에서 물러난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을 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는데다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당은 퇴임한 공직자를 탄핵한 전례가 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선동 책임을 물음으로써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탄핵심판 쟁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내용과 절차적 요건 등 두가지 측면에서 쟁점이 형성돼 있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13일 하원에서 통과된 탄핵소추안은 그가 내란을 선동했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기 위한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선거사기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의회가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승인해선 안된다고 주장했고,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사태가 발생한 지난달 6일에도 직접 시위대를 선동했다는 것이다. 탄핵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 합동회의 개회 직전 백악관 앞 집회 연설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이라면서 의회에 대한 불법적 행위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내란죄는 미국 헌법이 규정한 탄핵 사유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아주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조지아주 대선 결과를 뒤집을 것을 압박한 사실도 탄핵 사유로 지적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상원에 제출한 변론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누구에게도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도록 직접 지시한 적이 없고 선거사기가 있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은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의회 난입을 주도한 세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전부터 의회 난입을 계획했다는 증거가 있고, 의회 난입한 사람 중에는 반트럼프 성향의 인물도 있다는 점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시위대의 의회 난입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한다고 변호인들은 주장했다.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능한가도 쟁점이다. 탄핵안은 지난달 13일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7일 뒤인 지난달 20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미국 헌법은 퇴임한 공직자가 임기 중 저지른 비행에 대해 탄핵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탄핵 제도는 부정한 공직자의 직무 박탈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퇴임해 박탈할 직무가 없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선동 혐의가 뚜렷한만큼 그가 퇴임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포기하는 것은 정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 시절이던 1876년 윌리엄 벨크냅 전쟁장관이 수뢰 혐의를 받자 사임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된 전례도 있다.
미 상원은 9일 본격적인 탄핵심판이 전초적으로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토론과 표결을 벌였다. 표결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진행이 합헌이라는 의견이 56표, 헌법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44표였다. 민주당 상원의원 50명 전원과 공화당 상원의원 50명 가운데 6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진행이 합헌이라고 봤다.
앞서 상원은 지난달 26일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이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위헌이라면서 기각시켜야 한다고 제출한 안을 표결로 부결시켰다.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5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위헌이 아니라는 쪽에 표를 던졌다. 공화당에서 이탈자가 한명 더 늘어난 것이다.
■ 탄핵심판은 어떻게 진행되나?
상원의 탄핵심판은 기본적으로 형사 사건 재판과 유사하지만 훨씬 유연하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재판이기 때문에 상원이 세부적인 절차와 형식을 정하기 나름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핵소추위원으로 임명한 민주당 하원의원 9명은 검사 역할을 맡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방어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원의원 100명은 배심원 역할을 맡는다. 상원의원의 3분의 2인 67명이 유죄라고 판단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정된다.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재판장 역할은 최다선 상원의원인 민주당 패트릭 레이히 의원이 맡는다.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은 연방대법원장이 맡는 것이 관례다. 실제로 지난해 진행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심판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았다. 하지만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라는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상원에서 자체 진행키로 했다.
■ 결론은 언제 나오나?
지난해 1차 탄핵심판은 약 3주가 걸렸다. 탄핵소추위원들이 지난해 1월 22일부터 사흘에 걸쳐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를 설명했고, 변호인단 역시 사흘간 변론을 펼쳤다. 이어 사흘간 질의응답을 포한한 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민주당은 증인 심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은 하원에서 이미 충분한 심문이 있었다면서 민주당이 요청을 기각했다. 표결은 2월 5일 실시됐다. 공화당 상원의원 53명 전원이 의회 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고, 52명이 권력 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밋 롬니 상원의원이 공화당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권력 남용 혐의가 유죄라고 봤다.
2차 탄핵심판은 1차에 비해 훨씬 짧게 진행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합의한 탄핵심판 의사일정에 따르면 대략 일주일 안에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상원은 9일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적법한지를 둘러싼 토론과 표결을 진행키로 했다. 본격적인 탄핵심판은 10일부터 시작된다. 탄핵소추위원을 맡은 민주당 하원의원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각각 이틀 이내, 16시간 동안 각자의 주장을 펼친다. 최장 4일, 32시간 동안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후 양당 의원들은 각각 2시간씩 질의응답을 한다. 탄핵소추위원들의 증인심문 가능성도 있지만 공화당은 증인 소환에 부정적이며, 민주당도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증인심문이 없을 경우 양측은 최후 변론 기회가 각각 4시간 이내에서 주어진다. 워싱턴포스트는 주말인 14일, 늦어도 다음주 초에는 표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처럼 속전속결로 탄핵심판을 진행키로 한 것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탄핵심판이 늘어질수록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코로나19 경기부양책 같은 정책 현안이 묻힐 것을 우려하고, 공화당도 논란 많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시위대 의회 난동 사태라는 껄끄러운 사안에 이목이 오랫동안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 미국인들의 여론은 어떤가?
상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근소하게 앞선다. 미국 ABC방송과 입소스가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론조사에 응한 미국인의 56%가 그를 탄핵해 향후 공직에 나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43%는 그를 탄핵하는 것에 반대했다. 민주당원의 90% 이상이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공화당원의 80% 이상은 반대했다. 정당 성향에 따라 확연히 엇갈린 것이다.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나온 대중의 이같은 여론은 1년 전과 반대 양상이다. 지난해 1월 상원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시점에서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의 탄핵에 찬성한 응답자가 47%인 반면 49%는 반대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떤 입장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해 그의 행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도 의회가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탄핵심판이 임박할수록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8일 언론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일정 및 의사를 볼 때 그가 탄핵심리 절차를 지켜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이번 주 일정이 꽉 차 있고 우리는 그를 꽤 바쁘게 하고 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국립보건원(NIH)과 국방부 방문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탄핵심판에 크게 신경을 쓸 여력도 없고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말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코로나19 경기부양안을 내놓고 의회가 통과시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상원에서 가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탄핵심판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경우 중요 정책에 대한 관심과 동력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트럼프는 탄핵될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원 탄핵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탄핵안에 대한 상원의 의결 정족수는 3분의 2 찬성이다.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최소 67명이 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원 의석분포는 민주당이 50명, 공화당이 50명이다. 민주당 상원의원 전원이 뚤똘 뭉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고 전제할 경우 공화당에서 최소 17명이 이에 동조해야 한다. 9일 진행된 퇴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진행의 합헌 여부를 묻는 표결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6명이 민주당 의견에 동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위가 탄핵 사유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는 공화당 상원의원 최대치가 6명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록 대선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열성적인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핵에 동조한 공화당 의원들을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키기 위해 ‘저격’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으름장을 높고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로서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두 차례나 탄핵안이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두 차례 모두 상원에서 면죄부를 받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 탄핵안 부결 이후 시나리오는?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옥죌 수 있는 수단은 남아 있다. 공직자가 폭동이나 반란에 관여했을 경우 공직에 취임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 3항을 이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직 취임을 봉쇄할 수 있다. 이 조치는 상원의원 과반 찬성으로 내릴 수 있다. 민주당이 차지한 50석에 상원의장을 맡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를 동원하면 민주당으로서는 그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봉쇄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들을 박탈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와서 증언하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상원이 해결하도록 놔두자”고 말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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