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경쟁과 불평등의 이데올로기

김우재 보통과학자 2021. 2. 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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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 과학계의 무한경쟁에 대하여

과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발을 딛은 이는, 과학자들이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연구에 골몰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한 편이라도 더 많은 논문과 조금이라도 더 영향력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걸 최종목표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비밀을 파헤치는 구도자라는 과학자의 이미지는, 논문출판경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논문출판을 위해 두 눈을 가리고 질주하는 경주마로 바뀐다. 과학자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많은 수의 영향력 있는 논문을 출판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영향력이 높은 학술지의 지면은 제한되어 있고, 대학의 상업화로 인해 쏟아져 나온 박사학위자들의 폭증으로 논문출판경쟁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현대사회의 과학자는 비글호를 타고 여행을 떠난 다윈이나 우주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던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선구자들의 시대와는 완벽하게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계는 더이상 낭만적인 연구자를 위한 생태계가 아니다. 

과학계의 논문출판경쟁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있다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 그들 대부분은 이 무한경쟁의 승리자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태의 사회구조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집단이 그 사회의 기득권이자 보수적인 세력이 되듯이, 논문출판경쟁의 승리자인 과학자들이 현재의 시스템을 찬양하고 정당화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논문출판 방식은 이미 400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시스템이며, 지금처럼 디지털 출판과 사회연결망 서비스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대에 개발된 것이다. 이런 방식의 논문출판을 고수하며 거기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은 과학계를 위한 논문출판의 새로운 혁신을 고민하지 않는 셈이며 따라서 과학계와 사회의 공익보다 과학자 개인의 사리사욕과 자리보전을 위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처럼 극심한 경쟁이 과연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혹은 이런 경쟁으로 출판되는 논문들이 과연 사회의 공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과학계는 약탈적 학술지나 논문조작과 같은 일들로부터 결코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논문출판경쟁의 결과는 과학연구비경쟁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현대사회의 과학연구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할당하는 연구비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있으며 이 연구비의 평가체계에서 논문출판여부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논문 그 자체의 내용과 수준이 아니라 그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영향력지수로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이상한 관습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바로 그 덕분에 논문출판에서 나타나는 불공정의 문제가 연구비 수주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생태계를 창조해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연구비공황을 겪고 있으며, 연구비가 제대로 효율적으로 과학의 발전과 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논문출판경쟁으로 인해 나타나는 평가의 불공정성이 연구비 수주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체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과, 과학계의 연구비 생태계에도 양극화가 나타나는 원인은 동일하다. 능력주의의 신화 속에, 결코 공정하지 않은 평가체계가 생태계의 구성원 모두의 무의식 속에서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5. 불평등은 이념이 되어 과학계에 스며들어 있다.

경쟁의 정당화는 어떻게 과학계의 무의식을 지배하는가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불평등과 이데올로기: 능력, 경쟁, 확산의 담론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문에서 능력주의가 지배적 정치 이데올로기로 수용되는 생태계에선 중요한 사회정치적 변화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런 변화는 세 종류로 축약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능력이 우월한 사람들이 상위계층을 차지하고 하위계층의 대표는 사라진다. 기업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뿐 아니라 노동자 를 대변하는 진보 정당에도 명문 대학을 졸업한 변호사 등 성공한 사람이 지도부를 장악한다. 둘째, 개인의 업적을 내세우는 상위계층은 정당성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높은 보상을 당연하게 간주한다. 대기업의 천문학적 연봉은 부러움을 받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셋째, 부유층 의 자녀는 다시 부유층이 되고 빈곤층의 자녀는 다시 빈곤층이 되는 부와 빈곤의 세습이 발생한다. 부모 덕택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부와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승자독식사회가 세대를 통해 전승된다. 결과적으로 능력주의 명제는 능력의 차이가 마치 개인의 내재적 특성인 것처럼 간주되면서 사회계급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세 가지 변화중에서 엘리트의 지배가 정당화되는 현상은 노벨상이라는 권위를 중심으로 각종 상들과 출판한 논문의 학술지 랭킹으로 서열을 만드는 과학계에서도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또한 과학계는 노벨상 수상자나 랭킹이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발표한 과학자가 높은 보상을 받는걸 당연하게 간주한다. 즉, 과학계에는 능력주의로 인한 사회정치적 변화의 두번째 특성 또한 자리잡았다. 마지막으로 과학계에는 과연 부와 빈곤의 세습 같은 현상이 존재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의사나 변호사와는 다르게 과학계에서 직업이 세습되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과학자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그다지 부와 명예에 가까이 다가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계 내부에서 도제관계를 통한 세습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경력으로 들고 있는 연구자들 가운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노벨상 수상자 실험실 출신이 우선권을 갖는 일은 아주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계에는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부의 세습은 존재하지 않지만, 도제관계와 이너써클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자본의 세습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과학계는 이미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생태계로 진화했고, 그 진화의 부산물 중 하나가 무한경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인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19세기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적자생존’을 내세우며 국가간의 약육강식 논리를 정당화했다면, 20세기에 등장한 능력주의는 사회 속 개인 간의 적자생존을 정당화하며 경쟁담론을 만들어냈다. 이런 경쟁담론은 경쟁의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그 경쟁의 악순환은 우리 생활세계에 중요한 세 가지 문화심리적 변화를 발생시킨다. 그 첫번째는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태도다.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역사적 뿌리로 삼는 자기계발은 지나친 경쟁과 불평등한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생활인들에게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회사원들이 자기계발에서 탐닉하는 현상과, 현대사회의 과학자들이 연구능력보다 네트워킹과 연구를 남들에게 잘 발표하는 법에 탐닉하는 행동은, 같은 심리적 기제에서 출발한 생존전략이다. 

두번째 변화는 무한경쟁의 생태계 구성원들이 사회구조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개인의 긍정적 태도를 찬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긍정심리학 같은 학문의 번창으로 이어지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이들은 불평불만론자로 매도되어 경쟁담론에서 도태된 이들로 묘사된다. 과학계 또한 논문출판의 문제와 연구비 분배의 불공정성을 비판하는 과학자들을 무능한 사람들로 매도하고, 이 불공정하고 터무니없는 논문출판의 구조를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영웅시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변화가 바로 힐링과 멘토링이라는 개인화된 심리적 장치가 유행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과학계에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선배 과학자들이 후배과학자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하고, 학술지의 온라인판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방법과 살아남는 방법을 계몽하는 현상이 유행하고 있다. 이제 대부분의 학회는 선배 과학자와 후배 과학자들을 만나게 하는 멘토링 테이블을 운영하며, 멘토링과 힐링은 한국 회사원들에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과학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문화현상이 되었다. 

김윤태 교수는 논문에서 “사회정치적, 심리적, 경제적 차원에서 대중을 설득하는 능력, 경쟁, 확산의 담론은 개인주의적 자유주 의와 자유시장 만능주의와 결합하여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과학계에 대입해보면, 과학계 또한 어느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잠식되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경쟁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경쟁은,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긍정적인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구조적으로 벌어지는 경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입시경쟁이 바로 그런 구조적 경쟁의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사이언스, 셀의 한정된 지면을 두고 경쟁하는 과학자들의 논문출판 경쟁도 구조적 경쟁의 사례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경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장기적으로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공교육을 완전히 무너뜨린 한국의 사교육 경쟁처럼, 모두가 학원에 다니게 되는 순간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사라지고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것이다. 과학자 사회는 이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무한경쟁의 수레바퀴를 멈출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참고자료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것의 어려움 :  학위 공장’  인용글은 다음 번역글에서 재인용하였음.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odoo6&logNo=5019140952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원문 Cyranoski, D., Gilbert, N., Ledford, H., Nayar, A., & Yahia, M. (2011). Education: the PhD factory. Nature news, 472(7343), 276-279.

-과학계의 논문출판경쟁은 갈 수록 구조화되고 악화되는 중이다. https://walkingscienceshoes.wordpress.com/2020/02/05/publish-or-perish-is-it-that-simple/

-[김우재의 보통과학자]에 실린 다른 글들을 참고할 것. [김우재의 보통과학자]과학 논문도 변해야 한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출판의 급진적 변화를 위해 등

-제도권으로 스며든 가짜 학문, 가짜 학회 실태! http://www.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2&seq_800=10339181 이 방송의 근거가 되는 글은 뉴스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우재, 사주팔자로 노동자 스트레스 분석한 박사학위 논문도 있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3

-연구비공황과 연구비 수주경쟁의 대안에 대해서는 [김우재의 보통과학자]의 다른 글도 참고할 것.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연구비 공황과 보통과학자의 위기;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연구비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 '기본연구비'

-김윤태. (2018). 불평등과 이데올로기: 능력, 경쟁, 확산의 담론에 대한 비판. 한국학연구, 67, 33-72.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김우재 보통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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