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두 오빠의 억울한 죽음..제보 간곡히 부탁"

박임근 2021. 2. 1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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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한루비씨, 정치깡패들에 의한 폭행 의혹 제기
1970년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형제 한종호(왼쪽)씨와 보만씨의 학생때 사진.

“전주시민 여러분, 고인의 동문 여러분, 그리고 과거 신민당과 현재 민주당원 여러분에게 호소드립니다. 고 한종호·한보만 두 형제의 죽음에 관한 진실규명을 위해 관심과 제보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2일 오전 11시20분께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는 1970년대 전주지역 과거사 진실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한루비(53)씨는 두 오빠를 억울하게 잃었다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1970년대에는 어린 아이였던 한씨는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에서 활동하던 두 오빠가 억울하게 숨졌지만, 세상이 무서워서 지금까지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루비씨가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한 큰오빠 의문의 죽음에 대한 청원서.

그는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대에 정치 보복이 두려워 가족 어느 누구도 수십 년간 그때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다가 최근에야 부모님과 언니들로부터 그때의 사건을 들었다”며 뒤늦게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큰오빠 종호씨는 1971년 5월에, 작은오빠 보만씨는 3년 뒤인 1974년 1월에 각각 숨졌다. 1969년부터 고교생(전주 숭실고등공민학교) 신분으로 신민당에서 일을 거들던 큰오빠는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신민당)이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서자 벽보를 붙이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홍보를 도왔다. 사건은 1971년 4월27일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당선된 직후인 4월29일 발생했다.

한루비(맨오른쪽)씨 등 가족이 지난 2일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들 의문사의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루비씨는 “4월29일 밤 9시께 마을 지인이 허겁지겁 집으로 찾아왔다. ‘큰오빠가 3~4명의 괴한한테 맞고 있으니 얼른 가보라’고 했다. 큰오빠보다 3살 위였던 큰언니(당시 21)와 둘째언니(당시 11) 등이 현장에 도착해 소리지르자 괴한들이 도망갔다”고 했다. 괴한들로부터 머리를 벽돌로 맞는 등 무차별 폭행을 당한 큰오빠는 20여일간 고통속에 사경을 헤매다 숨졌다.

그는 “몸상태가 악화하자 당시 유청 국회의원 등 신민당 관계자들이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 그리고 입원 중 괴한들이 찾아와 큰오빠에게 ‘사건에 대해 함구하라’, ‘신민당 활동을 그만두라’는 등의 협박을 했다. 큰오빠는 사망 직전에 ‘진실을 묻겠다’며 자신이 갖고 있던 문서 등을 모두 태워버려 부모님이 울며 말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74년 1월, 큰오빠와 함께 신민당 활동을 하면서 고교 2학년이었던 작은오빠 보만씨도 고향인 전북 임실군 운암면의 한 냇가 빙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보만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주영생고를 다닐 때까지 줄곧 장학생을 놓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루비씨는 두 오빠가 숨진 현장에는 경찰관들이 나타났으나, 전혀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두 오빠는 정치깡패의 무차별 폭행에 따른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된 것 같다. 누군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당시 민주공화당 소속의 괴한들에 의해 발생한 25건의 폭행사건을 알게 됐고, 이 가운데 8건은 가해자들의 유죄가 확정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오빠들의 모교를 포함해 경찰서, 병원, 국가기록원 등에 여러차례 자료를 요청했지만 모두 자료가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루비씨가 ‘당시 폭행을 목격한 첫째언니와 둘째언니는 오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이 문제 해결을 유언으로 남겨서 수년 전부터 진실규명에 나섰다’고 말했다”며 “이런 사건처럼 정치적 활동으로 유사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면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형제의 사망과정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063-278-9331)로 연락하면 된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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